[간병일기] 유방암 수술
입원하던 날 수술 날짜를 물어보니 수술 시작이 7시라고만 했다.
첫 수술이 7시이니 수술 순서를 알고 대략적인 시간을 예측해야 하는데 수술 순서도 당일에나 알 수 있다고..
간병인선생님은 걱정하지 말고 집으로 가라고 했다. 우리는 수술 순서 정해지면 일찍 병원에 오겠다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엄마에게서 주치의쌤이 가족과 함께 아침면담에 들어오란다고 6시 반까지 병원으로 오라는 카톡이 왔다.
남동생은 두고 여동생과 나 둘이 어두운 새벽 병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한 시간이 지나도 면담은 시작될 기미가 안 보이고 입원병동 휴게실에는 수술받는 환자와 보호자만 가득.
7시 반이 넘어 면담에 들어갔다
- 암크기가 작을수록 뭐가 좋을까요?
라는 선생님의 질문을 시작으로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엄마의 암은 사이즈가 큰편이라 최소 2기 이상이라고.
우리도 궁금증을 해소할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모든 것은 수술 끝나고 미국에서 온코검사 결과가 돌아오는 한 달쯤에나 정확히 알 수 있다는 것~~~
약 10분의 상담이 끝나고 엄마의 수술 순서는 두 번째로 정해졌다. 10시나 11시쯤 수술실이 들어갈 것이라는 답을 듣고 엄마는 병실로, 나와 동생은 집으로 돌아왔다.
병원에서 집까지 안양천을 따라 3km 남짓.
버스를 타도 30분, 걸어도 30분.
귀찮아하는 동생을 끌고 안양천 산책로에 들어섰다.

눈이온 다더니 정말 하늘이 흐리다.

아무도 없는 평일 이른 아침 산책로를 걸어 집에 도착해 30분쯤 다시 눈을 붙였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가 첫 수술에 들어가게 되어 9시쯤 수술을 한다고.
부랴부랴 준비를 하고 나서려는데 다시 엄마의 전화.
응급 수술이 생겨 엄마의 수술이 뒤로 미뤄졌단다.
역시… 병원의 환자에게 스케줄이란 무용지물이다.
그래도 울 엄마는 응급이 아니라 얼마나 다행인가. 가족을 응급수술 시켜야 하는 가족들 마음은 얼마나 안 좋을까를 생각하며 긍정과 희망회로를 장착해 본다.
이러나저러나 마음이 안 좋아 결국 병원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요즘은 입원병동에 주보호자 한 명만 들어갈 수 있다. 우리는 간병인님이 주보호자로 병동에 있는 셈이라 2층 수납 접수창구에서 두 시간 넘게 기다렸다.

수술실 올라간다는 간병인쌤 전화를 받고 4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엄마를 만났다. 역시 보호자 한 명만 수술환자용 엘베를 타고 수술실 앞까지 갈 수 있다 하여 동생이 따라가고 우리는 뒤따라 수술실 보호자대기실에 가기로 했다.
수술은 두 시간 반 넘게 이어졌다.
길고 지루한 시간 동안 보호자 대기실에는 내내 우는 사람도 있었다. 그 가족분의 수술이 부디 성공적으로 끝나길… 울 엄마 수술 성공을 기도하며 그쪽에도 살짝 마음을 기울였다.
이대 목동병원 수술 보호자 대기실은 정말…. 아주 많이 예스럽다. 10년 전 아빠 폐암 수술할 때의 서울대병원 대기실보다 심각하게… 옛날스타일이다. 그게 벌써 10년 전인데… 어질어질한 상태였던 이대병원의 보호자 대기실 ㅎㅎㅎ

드디어 수술이 끝나고 회복실로 간 엄마. 그리고 다시 30분 동안 회복실에 있다가 입원실로 올라간다는 문자를 받았고 시간이 되어 엄마의 이름이 호명되며 보호자는 수술실 앞으로 오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마취에서 깬 엄마와 눈을 맞추고 손을 흔들어줬다. 다 잘 됐을 거라고…
대기하는 동안 보니 수술을 끝난 의사가 가족에게 설명을 해주는 건 딱 한번 봤다. 나머지는 그냥 보호자를 호명하고 입원실로 이동하는 듯했다.
아빠의 경우 워낙 큰 수술이어서 수술 끝나고 주치의쌤의 설명이 짧게나마 있었는데.. 이번에는 우리도 다른 환자들과 같이 아무 설명을 듣지 못하고 병실로 갔다.
2시간까지 잠들면 안 되는 엄마에게 한 명씩 돌아가며 들어가 인사를 나눴다.
그 와중에도 간병인쌤 간식 좀 사다주라는 엄마의 지령이 떨어져 셋이 병원 밖으로 나왔다.
우리도 하루종일 굶고 있던 상태.
환자의 저녁으로 죽을 준비하라는 병원의 지침에 따라 병원 앞 죽집에 갔더니 때마침 브레이크타임이란다.
그래서 그 시간에 간단히 토스트를 먹으며 우리 끼니를 해결하고 남동생은 죽을 사러, 여동생과 나는 간병인쌤의 커피와 간식을 사러 길을 나섰고 병원 앞에서 다시 만났다.
간병인쌤과 함께 드시라고 두 종류 죽을 샀고 다양하게 드시라고 소분하여 포장했다. 간식과 식사를 전달하고 이제 집에 가보라는 엄마와 간병인쌤의 말에 따라 집으로 돌아왔다.
안스타 안세현쌤의 얼굴은 새벽면담 이후로는 볼 수 없었다.
원래 수술 다음날 첫 회진 때 결과에 대해 알려주신다고 한다. 워낙 유명한 명의시니 수술하는 날은 수술만 해도 정신없으리라 미루어 짐작해 본다.
간병인을 고용한다는 것은 환자의 들쑥날쑥한 병원 스케줄 모두를 함께하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한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아빠 때는 아빠가 워낙 간병인과 함께하는 것을 거부하셔서 잘 모르기도 했거니와 그 당시 아빠 간호는 엄마가 전담했고 하루종일 병원이 있었으니 이런 일을 겪는 것은 우리도 처음이다.
호스피스 생활이 길어지며 엄마가 점점 지쳐가자 그제야 간병인을 불러달라고 요청했던 아빠. 하지만 호스피스 환자들에게는 딱히 병원스케줄이라고 할 것이 없어 이번 엄마의 경우와 사뭇 다르다.
여하튼 그리하여 의사쌤이 언제 회진을 도는지도 정확히 모르고 집에 온 우리는 엄마에게, 여차하면 나에게 전화를 걸어 함께 듣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하루종일 눈이 오더니 집에 갈 때쯤 잦아든다.
난 걸어가겠다고 했고 두 동생은 차를 타고 이동했다.

걷기 시작할 때는 진눈깨비가 흩날리더니

집 근처에 와서는 맑은 하늘이 드러났다.
좋은 징조라고! 이 또한 행운의 상징이라고 온갖 것에 다 의지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늦은 밤 잠에 들려는데 오만가지 생각이 다 떠오르다.
림프전이 원격전이 항암… 등등등
아빠 때 겪었던 악몽들이 다시 떠오른다.
애써 마음을 추스르며 긍정회로를 주섬주섬 꺼내어 겨우 잠이 들었다.
오늘 아침 엄마의 톡이 왔다.
전이는 없어 항암은 안 해도 될 듯 하지만 온코 검사 결과는 기다려보자.
퇴원은 주말, 방사선은 4-6주 예정.
전이가 없다니, 림프 전이가 없다니!! 눈물이 핑 돈다
거리에 뛰쳐나가 만세라도 부르고 싶은 심정이다.
드디어 마음이 편해졌다.
엄마는 주말에 요양병원으로 옮기기로 했다.
집에 사람이 없으니 돈을 쓰더라도 편히 쉬고 잘 챙겨 먹는 환경을 만드는 걸로!
요즘 들어 많이 드는 생각인데
육아나 육모(….)나 돈이 최고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