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여행 1일차] 제암산-사자산-일림산, 제사일 철쭉종주
2025. 5. 3.
긴 연휴.
2박 3일 산행의 시작.
2박 3일은 산행 시작했던 그 해,
마니산, 삼악산을 다녀오고 이제 산 좀 다녀도 될까나 싶던 시기에 모임에 올라왔던 2박 3일 공지를 보고 덜컥 신청해서 따라간 이 후 처음이다. 그 때, 월출산을 만나고 낯선 이들이 산동무가 되어 지금 이때까지도 산에 빠져 떠돌아다니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 산행의 첫 숙소가 제암산 자연휴양림이었고(무장애 데크길 걷고 잠만 잤던 그때, 언젠가는 제암산도 올라봐야지 했는데 드디어!) 이번 산행의 첫 산행이 제암산이다.
어쩐지 운명의 데스티니.

였는데...
끝끝내 비예보는 사라지지 않았고
4시 반쯤 도착한 제암산휴양림 주차장에서 잠시 눈을 붙이기로 했다.
빗소리가 차를 때린다.
심란하네...

6시가 될 때쯤 다들 눈을 떴고 빗소리인 줄 알았던 계곡물소리가 우렁찬 휴양림에서 비몽사몽 준비를 마치고 기계적으로 출발했다.
등산하러 왔으니 무지성으로 출발이다.

추웠다.
빗방울도 조금씩 떨어졌다.
제암산 정상까지 올라가 비가 많이 오면 그냥 하산하고 날씨가 괜찮아지면 일정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제암산 정상까지 2.2km.
비가 흩날림에도 시야가 좋았다.

오히려 물을 머금은 짙은 녹음이 싱그러워 보였다.

잠이 깨나 안깨나 싶게 어영부영 올라오다가 만난 쉼터는 세상 귀엽게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보성군에서 준비한 촘촘하고 꼼꼼한 산행지도를 보며 오늘 가야 할 길을 가늠해 본다.

산불 조심하라는 곰돌이.. 넘나 귀엽고요!

흩뿌리던 비가 그치자 더욱 싱그러워진 초록초록.
철쭉은 드문드문 피어있었는데 오늘 산행의 마지막 산인 일림산이 제암산보다 철쭉이 빨리 핀다며 제암산이 이 정도면 일림산은 철쭉 만개일 것이라 말씀하시는 산천재 리딩형님!
(산행 내내 해박함에 놀라고 또 놀람)

제암산 정상까지 오르는 동안 완만한 길/가파른 길의 갈림길 알림판을 세 번 볼 수 있는데 두 번째에서만 완만한 길을 택했고 돌아가는 모퉁이에서 뻥 트인 뷰를 볼 수 있었다.

완만하고 수월한데 멋진 풍경까지 선물해 주다니! 다음 길도 완만한 길인가? 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며~


하늘은 흐린데 봄의 연두는 죽지 않지.
해가 반짝 나지 않아도 연두연두 빛나는 푸른 잎들.

오늘 비 온다 그래서 잔뜩 쫄았는데 이 정도 풍경을 선사해 주다니 너무 좋잖아!
바다를 바로 끼고 있는 산은 나를 미치게 하고 바다가 멀리 보이는 산은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저 멀리 보이는 바다와 그 바다에 이르는 산줄기들이 모든 것이 완벽하게 구성되고 배치되어 있는 완전무결한 설계도를 보는 느낌이다.
자연이 그려낸 완벽함.

좋아하는 것만 잔뜩 모아둔 것 같은 연두 가득한 사이에 오롯이 난 오솔길에 가슴이 설레고 그 사이 빼꼼 얼굴을 내민 분홍(철쭉은 핑크가 아니다. 분홍이다!) 철쭉에 내 마음도 분홍분홍 말랑해진다.

가야 할 곳을 바라보고
-돌격 앞으로!
파워당당 사진 찍고 싶었건만 돌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절벽뷰에 움찔하고 몸을 흔드는 거센 바람에 두 다리가 달달 떨리던 쫄보.

출발한 지 한 시간 반, 다들 배가 고팠다.
바람을 조금 피해 갈 수 곳을 찾아 주섬주섬 준비해 온 것들을 꺼냈다.
빵순이를 위한 빵파티도 아니고 이게 웬 횡재!

식사를 마치고 조금만 더 올라가자 제암산 옛 정상석이 나온다.
돌찔이는 차마 오를 수 없는 곳에 있었던 제암산 옛 정상석.
아니 대체 저런 무서운 곳에 정상석을 왜...
돌찔이 판별 산이었나?
돌찔이 멕이는 거야? 여기까지 힘들게 올라왔지? 그치만 더는 안돼. 여기까지야~~

라는 느낌이 물씬 나던 차마 범접할 수 없던 정상석에 거침없이 올라가는 나의 대단한 산동무들.

스스로를 너무 잘 파악하게 된지라 도전조차 하지 않고 아래서 구경한 나.

올라가지 않아도, 아래쪽에 있어도 얼마나 멋진데요~~


어쩐지 하늘이 슬슬 어두워지는 것 같지만 그래도 여전히 멋진 풍경 감상 가능한 곳에서 동무님들 정상석 찍고 올 때까지 돌찔이들은 별도 모임을 진행한다.

위험한 데 있던 정상석 대신 안전한 곳에 다시 세워졌다던 정상석 도착!
이때부터 비가 오기 시작해서 정상석은 대~~~충 찍고 계속 길을 걸었다.
올라오기 전 비가 오면 제암산만 찍고 내려오자던 말은 이미 우리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이렇게 예쁜 산을 어찌 걷다 말아!
가는거야~~~~~


이렇게 예쁜 길을 흥 많고 즐거운 사람들과 함께 걸었다.

봄꽃이 살랑이는 길을 걷는다. 비가 많이 오지는 않아 다행이다.
그래도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가방까지 야무지게 방수커버를 씌웠다.
클라터뮤젠 델링에는 방수커버가 없어서 나의 첫 등산가방이던 노스페이스 가방에 있던 방수커버를 챙겼었다.
같은 20리터이니 잘 맞겠거니...라는 생각으로!

그리고 제법 찰떡같이 씌워지던 방수커버.
덕분에 살았다.
궂은 일기에 나름 준비를 철저히 했던 산행이었다.
짬바 미쳤다(비 오던 와중에 폭발하던 자기애)

제암산에서 1.6km 왔고 사자산까지 2.3km.
철쭉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꽃길만 걸으라는 듯 펼쳐진 철쭉무리.

초록과 분홍은 이렇게나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이름마저 철쭉평원이던 이곳에서 가야 할 길을 바라보니 철쭉이 지천에 깔렸다.
꽃길만 걸으라고 하는 덕담. 이즈음의 산에 오면 실현되는 꿈이다!

비는 오락가락했다.
많지 않은 비가 흩뿌리다 철쭉평원에서는 그쳤기 때문에 여유롭게 꽃길을 즐길 수 있었다.


'멀리간 김에' 시리즈로 산행을 진행하는 대장님은 정말 체력도 엄청나고 산에 대한 지식과 경험도 엄청난 분인데 늘 동행인들의 속도에 맞춰 산행을 한다.
그래서 산행하며 사진도 많이 찍고 수다도 떨고 죽도록 힘들잖아~~라는 느낌이 나지 않도록 잘 이끌어 주신다.
볼 때마다 존경과 경외심이 차곡차곡 쌓이며 다음, 그다음 산행을 기대하게 한다.

사자산 정상으로 가는 길.
흐린 하늘에도 불구하고 눈을 뗄 수 없었던 풍경들.
공기 가득한 수분감 덕분에 모든 색에 생동감이 더해졌고 봄에만 가능한 원색이 더해져, 오히려 땅에서의 화사함이 우중충한 하늘을 살리고 있었다.

마주하자마자
-뭐야!!!! 어쩜 이리 귀여워!!!
돌고래 소환하던 사자산의 정상석.
우쭈쭈쭈! 사랑을 가득 담아 바라보고요.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한 길을 걸어가요.
비는 하루 종일 오락가락하는 중이라 비가 내린다고 그 어떤 투덜거림도 나오지 않았다.
비가 오면 모자를 쓰거나 하드쉘을 꺼내 입고 우산을 꺼내 들면 된다.

비가 와도 어여쁜 산.
비가 와서 더 생동감 넘치던 산.
연두가 묻어날 것 같은 싱그러운 길을 계속 걸을 수 있어 참 좋았다.

요정의 숲길을 지나 요정을 만나러 가듯 걷는다.
사자산을 지나면 일림산까지는 오르막 내리막이 서너 번 이어지는데 경사도가 꽤 되는 편이다.
제사일 종주 중, 사자산에서 일림산까지의 길이 제일 힘들다.
헉. 헉. 헉.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그래도 나의 장기는 느리지만 꾸준히 걸을 수 있다는 것.
적게 쉬고 꾸준히 걸으며 동무들과 발을 맞췄다.
그리고 국내 철쭉 단일 군락지로는 가장 넓다는 일림산 철쭉 군락지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비가 와도, 흐린 하늘이어도, 멀리까지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는데 철쭉산행인 오늘의 산행의 하이라이트이던 일림산 철쭉 군락지가 곰탕이었다.
그래서 진한 철쭉의 분홍이 연분홍이 되었다.
그래서 또 그 나름대로 예쁘잖아.
나는 등산을 하면서 꽤 긍정적인 사람이 되었다.
긍정적인 사람으로 변했다.
변화무쌍한 산의 날씨를 받아들이고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산을 이해하고 산이 주는 행복과 고난을 받아들이며 긍정적인 사람이 되었고 유한 사람이 되었고 내가 아닌 세상을 포용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더 어릴 때 산행을 시작했다면 더 빨리 어른이 되었으리라.
그래서 자연을 벗하면 호연지기를 기를 수 있다고 하는 것이리라.

잔뜩 흐린 곰탕이던 일림산 정상에 드디어 도착했다.
제암산에서부터 사자산까지 우리만 품고 있던 산이, 사자산 지나면서 몇 명의 산객과 인사를 나누게 해 주었고, 철쭉이 흐드러진 일림산 인근에서는 산객과 행락객을 뿜어내는 듯했다.
비 오고 날이 흐렸음에도 이리 사람이 많았는데 맑은 날이었으면 어땠을까.
그리하여 지금 이대로도 마냥 좋다며 유쾌하게 걸었다.

용추계곡 주차장으로의 하산길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은 편백나무로 몸의 안과 밖이 모두 치유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비가 오다 말다 습기가 가득한 공기는 더욱 진득하게 피톤치드를 전해주는 듯했다.

찰나의 연두를 남은 계절 내내 음미할 수 있도록 한껏 담았다.
내려갈수록 편백숲이 울창해졌다.

압도적인 편백숲에, 자연이 주는 웅장함에 겸손해진다.
이런 곳이라면 하루정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밤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는 곳.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내가 머물고 감으로써 자연에 필요하지 않은 것을 남기게 될 것 같아 지금 이대로가 딱 좋다는 생각을 하며 역시 난 백팩킹은 안 하겠구나-하고 스스로를 알아간다.

촉촉한 편백나무 숲을 지나 손에 꼽을 만큼 예쁜 날머리를 만난다.

철쭉이 아니더라도 예쁜-벚꽃이 아니더라도 산세가 맘에 쏙 들던 장복산처럼-철쭉 시즌이 아니더라도 다시 찾고 싶을 것 같은 제암산, 사자산, 일림산을 알게 되었다.
아주 좋은 친구를 소개받은 하루였다.
오래도록 알고 싶은 동무를 알게 되었다.
비가 적당히 내려 좋은 산행이었다.
이 정도의 비가 내려 더울 틈을 주지 않고, 비가 왔음에도 멀리 있는 풍경까지 감상할 수 있는 시야가 확보된, 옷도 가방도 신발도 많이 젖지 않아 산행 후 별다른 조치가 필요하지 않았던, 우중산행으로는 최고로 손꼽을 만한 산행이었다.

철쭉문화행사의 첫날, 다녀갑니다.
일림산.
🎯제암산-사자산-일림산 종주🎯
✔️산행거리 : 18.25km
✔️산행시간 : 7시간 22분
✔️산행코스 : 제암산자연휴양림~제암산~사자산~일림산~용추폭포주차장
✔️너어어어어어무 먼 곳에 있는 너어어어어어무 사랑스러운 산
+) 첫날의 숙소는 지리산자연휴양림


지리산자락 600미터 고도에 있는 지리산이 품어주는 휴양림.

600미처 고도에서 부풀어오르던 질소 과자ㅋㅋㅋㅋ

수육을 뚝딱 만들어내는 능력자 산동무들

지리산 자연휴양림 근처 양장피 맛집에서 포장해온 양장피.

오늘 모두, 폭삭 속았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