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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린이의 등산일기] 드디어, 설악산
    등산일기 Hiker_deer 2021. 10. 31.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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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걷는다.
    따릉이 탄다.
    아니면 자차다.

    이런식으로 최대한 대중교통 이용을 피하던 내게
    고터란..
    먹거나 쇼핑하라고 있는 곳인줄만 알았지.
    버스타는 곳이라는걸 새삼 깨닫게 되는 오늘.
    속초행 버스를 탔다.

    설악산에는 어쩐지 "드디어"를 붙여줘야할 것 같지.
    2월에 산행을 시작하여..
    월 1회씩 산에가자고 했던 산꼬맹이가
    4월 월출산에 갔다가 산에 홀딱빠져 거의매주 산으로 뛰쳐나가는 생활을 했고 드디어 설악산, 거기다 공룡능선!!!까지 가게되었다~정도? ㅋ

    황매산 이후 수면부족으로 인해 매일매일이 우주를 부유하는 먼지가 된 느낌이었다.
    그나마 설악산 전날 일찌감치 잠에들어 피곤이 쪼오끔 풀리긴 했지만 뭔가 마음이 불안했다.
    업무가 바빠 짐을 출발전에 챙긴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매번 산행때 최소 2일전부터 짐을 챙기고 점검하고 또 챙기고 또 돌아봤었는데 이번에는 간신히 짬을내 챙길 수 있었고... (역시나 옷 몇가지를 챙기지 못했음)
    가스불 쓰는 요리는 잘 하지도 않으면서 큰 산에 가기전엔 늘 엄마표 만두로 끓인 만둣국을 먹었던지라 자연스럽게 만두를 꺼내 국을 끓였는데....
    양양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가스불을 끄고나왔나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오래되고 낡은 가스렌지는 불을 꺼도 가끔 잔불로 바뀌어 안꺼질때가 있다 ㅠㅠ)
    엄마에게 톡을 보내 아침에 눈뜨자마자 집에가서 확인좀 해달라고 부탁드린후...
    어쩐지 불안한 마음으로 설악산에 도착했다.

    양양터미널은 버스가 다니는 동안은 오픈되어 있으며 문닫고 안에 있으니 약 1시간 정도는 따뜻하게 시간을 보낼만 했다.
    간단히 요기를 한후, 예약해둔 택시를 타고 설악산 한계령탐방지원센터에 도착했다.

    오늘의 목표는
    한계령휴게소 - 한계령삼거리 - 끝청 - 중청봉 - 대청봉 - 소청봉 - 무너미고개 - 신선대 - 1275봉 - 큰새봉 - 나한봉 - 마등령 - 비선대 - 소공원
    요래요래한 코스를 깨부수는 것!!


    태어나서 이렇게 사람이 바글바글 모여있는 탐방지원센터는 처음본다.
    게다가 새벽 2시반에!!!!
    세상에 이게 웬일이야....
    버스는 끝없이 들어오고 사람들이 켜켜이 쌓여갔다.
    다들 옹기종기 모여 설악산 출입이 허가되는 3시를 기다리고 있다.
    (10월까지 하계시즌으로 오전 3시 개방, 이후엔 오전 4시 개방)

    백두대간 오색령. 블랙야크 백두대간 인증 완료!

    몸을 풀고 미리 에너지젤도 하나 쭉쭉 짜넣어 몸을 좀 깨워본다.
    탐방지원센터 앞은 마치 축제가 벌어진것 마냥 웅성웅성 들썩들썩 폭발할 것 에너지로 가득차 있었다. 신기했다.
    마침내 3시, 출입이 허가되었다.
    문이열리자 사람들이 긴 줄을 이루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정말..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장관이었다.

    어둠속에서 헤드랜턴을 켠 사람들이 줄지어 산을 올랐다.
    멀리 보이는 불빛들이 산을 둘러 띠를 이루는 모습이 봉화를 올리는 것 같았다.

    설악산 곰돌이. 출똥~~~!!! 나도간다 눈누난나

    인파가 좀 줄어들었을 무렵 우리도 산을 오르기로 했다.
    이쯤 됐으면 우리 속도로 마음껏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해 대장님께 올라가자고 한것이었는데
    -금방 따라잡을껄
    이라고 했던 대장형님 말씀대로.. 우리는 금세 길게 늘어선 줄의 한 부분이 되고 말았다.

    느리지만 꾸준한 걸음이 시작됐다.
    속도가 느리니 쉬지 않아도 지치지 않았고 아무생각 없이 계속 걸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한계령삼거리에 다다라서야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그 많던 인파가 흩어지기 시작했다.

    우리의 목적지는 대청봉

    악산중의 악산 설악산의 서북능선길은 참 쉽지 않았다.
    친해지려면 정말 오래 걸리겠구나.
    낯가리며 사람을 밀어내고 선을 그어버리는 내가 딱 이모양일까?🙄🙄
    싶은 잡생각도 잠시잠시 해가며 여전히 줄지어선(조금은 짧아졌지만) 사람들의 뒤를 쫒았고 어느순간 인파의 줄이 사라지고 우리만 남았다.

    어둠속에서 크고 험한 바위를 조심조심 걷는다.
    폰을 꺼내 무음모드를 해제한다.
    다시 가스불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ㅠㅜ
    아직까지 전화가 없으니 불이 난건 아니겠지, 엄마 말대로 주택화재보험 가입할껄ㅠㅜ 이라며 오만가지 상상과 걱정을 하며 바위를 넘다 미끄러졌다.
    다행히 엉덩이로 잘 안착했는데 문제는 그 다음.
    또다시 넘어졌는데 무릎을 바위에 찧었다.
    그리고 바로 팔꿈치에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넘어지며 팔꿈치도 같이 찧었는데 하필... 왼쪽 점액낭염으로 알사탕 만한 염증 주머니가 잡혀있던 곳이었다.
    분명 어젯밤까지도 팔꿈치의 알사탕을 확인했는데 그게 사라졌다.
    겁이 덜컥 났다.
    사이즈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서 잘 낫고 있구나. 매일 냉찜질 하는 보람이 있구나 하던 차였는데 그게 갑자기 사라져버리자 무서움이 앞섰다.
    욱씩거리는 아픔은 뒷전이고 점액낭이 터진게 너무 무서워서 정신이 반쯤 나갔다.

    이렇게 한번 다치면.. 자꾸 옛날 생각이 오버랩되서 남들보다 더 겁을 내버리게 된다.
    눕지도 앉지도 서지도 걷지도 못하던 날들.
    근육이 다 빠져버려 앙상하게 남겨진 종아리 뼈가 돌아가시기 전의 아빠 종아리와 똑닮아서 거울을 보며 서럽게 울던 기억.

    우선은 괜찮다고 산동무들을 안심시키며 올라가다가 슬쩍 슬쩍 팔꿈치를 만졌다. 통증이 살짝 있긴했지만 아프지는 않았다. 그래도 계속 신경이 쓰여 만지고 또 만지던걸 눈치빠른 K에게 들켰다.
    나때문에 속도가 느려졌고 원래는 끝청에서 보려던 일출을 서북능선의 어디가에서 아침을 먹으며 맞이하게 됐다.
    그런데 이게 웬일.
    내복에 적당히 도톰한 긴 티를 입고 경량패딩에 이것저것을 껴입었음에도 아침을 먹으러 앉은지 5분도 되지않아 체온이 급격히 떨어지고 온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스로 제어할 수 없을정도로 몸을 떨었다.

    짐 더미 아님.. 나곰이 🐻🐻

    동무들이 내어주는 옷을 하나하나 껴입어도 떨림이 멈추지 않았고 핫팩을 붙이고 손에쥐고 비닐까지 둘렀는데도 추위가 가시지 않았다.
    배는 고팠는데 뭘 먹으면 바로 체할것 같았다.
    결국 K가 내 손을 끌고 일으켰다.
    먼저 출발하자고.
    어차피 무언가를 먹긴 틀렸으니 움직여서 열을 내자고 했다.

    그리고 K는 대청봉에서 내려가자고 했다.
    팔도 걱정이고 이 몸으로 이 마음으로 공룡을 가는 것을 무리라고.
    그러자고 했다.

    혼자가겠다고 고집을 부려봤는데 바늘 하나도 들어갈 틈 없이 철저히 막아서던 K.
    다른 분들이라도 공룡 다녀오시라고 했는데 왜때문에 정신차려보니 다들 대청봉만 찍고 하산을 함께 하겠다고 한다 ㅠㅠ
    고맙기도 했지만 미안한 마음이 너무 커서 맘이 너무 불편해졌다.
    몸은 아프고 속상한데 타인의 소중한 하루를 망쳐버린 것 같아 우울함까지 더해졌다.
    모자란 놈...바보멍충이똥개.
    마음속으로 스스로를 힐난하며 추위에 떠느라 굳어버린 몸을 계속 움직였다.

    남은 일행은 아침을 먹고 K와 나는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K의 판단이 아니었음, 아침 먹기를 기다리는 동안 저체온증이 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걷기 시작하자 굳었던 근육이 풀리고 몸에도 열이 올랐다.

    끝청 도착!

    끝청봉 곰돌이. 백두대간 인증.

    끝청 도착하기 전부터 설악산의 장관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끝청에서 장엄한 설악산의 봉우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다시 정신이 돌아온 곰색히는 드디어 사진에 찍히기(?)를 요청했다.

    귀여운척좀 할께요. 환자라 그런지 쳐맞지않고 넘어갔음 ㅋㅋ
    설악산 곰 두마리. 발견하시거든 먹이를 주세요~ 꼭이요!

    뾰족뾰족 너무나 날카롭게 솟아있는 용아장성과 공룡능선을 한눈에 담을 수 있었다.
    설악산이구나.
    아무에게나 손을 내밀지 않는, 아무나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설악산이구나.

    공룡을 내려다보니 어쩐지...
    공룡을 안가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산을 열심히 쫓아다니며 늘 마음속에
    지리산 천왕봉, 설악산 공룡능선, 간월재를 마음속에 품고 있었는데 몸이 쭈그리가 되어서인지 공룡이 마음속에서 지워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끝청을 지나 중청대피소에 도착했다.
    반가운 화장실 ㅋㅋㅋ
    산 다니며 화장실의 소중함을 뼈에 새기듯 알게 되었다.

    멋지고 웅장한 설악의 봉우리들을 두르고 있는 중청대피소.
    가을의 색을 한껏 입은 설악속으로 한걸음 내딛어본다.

    그리고는 지체없이 대청봉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대청으로 오르는 능선은 그 어느산의 능선길에 뒤지지 않을만큼 온화하고 부드러웠다.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뾰족하고 날카로운 산봉우리들과는 확연히 다른 능선길을 걸어 대청봉으로 향했다.

    강한 설악의 바람과 함께하는 법을 잘 아는 낮게 자란 나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설악을 걷는다.

    대청봉 오르기전의 포토스팟. 사진을 남긴다.
    이런곳에 서면 포즈를 취하는 것보다 눈에 들어오는 장관에 더 집중하게된다.
    사진따위!
    라는 생각으로 눈앞에 보이는 풍경에 압도되는 느낌.

    멀리 보이는 공룡능선을 보며
    아쉽지 않다
    아쉽지 않다
    웅얼웅얼 주문을 왼다.

    뒤로보이는 중청 대피소가 레고블럭같이 알록달록 귀여워서 괜히 신났다 ㅋ

    피로 쓴 것 같은 붉은 글씨가 어쩐지 좀 무시무시했던.. 사진으로만 봐오던 설악산 대청봉 표지석이 눈앞에 나타났다.
    생각없이 발을 들이는 자, 피눈물을 흘릴지니....
    의 의미로 저렇게 검붉은 색으로 글을 새겼을까?🤣🤣

    설악산 대청봉. 블랙야크 100대명산 서른번째 인증.

    앞을보고 뒤를봐도
    나 설악산이야~~~
    뿜뿜 뿜어내던 압도적인 비경, 절경.
    다시 올일은 없을 것이라고
    어쩐지 공룡앞에서 무너진 내 스스로가 싫어서
    공룡을 다시 찾지도 설악산에 다시 오지도 않을 것이라고 고집을 부려보았지만....

    언젠가는...
    다시 오르겠지?
    원래 애정보다 애증이 더 무서운 법이니까 ㅋ

    오색약수터로 하산하는길.
    산 정상에서는 눈으로만 볼수 있었던 설악산의 아름답고 예쁘던 단풍이 손에 잡힐듯 다가왔다.

    오색약수터로 하산하는 코스는
    잔잔바리한 돌들이 사람을 돌아버리게 할 것 같은..
    아주 약이 바싹 올라 돌무더기를 다 파헤쳐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게하는 진이 다빠지는 코스였지만
    발을 헛디딜라 땅만 바라보며 걷다가 눈을들면 가을이 찾아온 설악이 눈에 보여 욱하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버렸다.

    어쩌다보니 올가을은
    단풍을 피해다니는 산행만 한것 같았다.
    어느곳은 너무 일찍갔고
    어느곳은 너무 늦게갔고
    이런식이었던 것 같은데 설악산의 단풍을만나 비로소,
    온지도 모르게 그냥 지나친 것 같은 나의 가을을 마주하고 인사를 나누었다.

    점점 짧아져 아쉽기만 한 가을을
    매년 이렇게라도 마주하겠다고
    찰나라서 더 눈부시게 아름다운 너를 끝끝내 찾아내고야 말겠다고.

    설악산에서 나는 가을과 인사를 나누고
    올 한해를 뜨겁게 함께해준 나의 산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설악산 오르기🎯
    ✔산행시간 : 10시간 50분(쉬는시간 2시간 40분 포함)
    ✔산행거리 : 13.2km(트랭글 기준)
    ✔산행코스 : 한계령휴게소 - 한계령삼거리 - 끝청 - 중청봉 - 대청봉 - 오색약수터 하산
    ✔공룡 잡으로 간다고 신나게 나섰다가 넘어져서 결국 못만나고 온....나의 공룡. 다시 만나러 갈지.. 간다해도 아주 오랜시간이 흐른 후겠지만 난 늘 그렇듯 망각의 힘을 믿는다. 좀 기다려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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