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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산일기] 설악산 힐링산행_20230617
    등산일기 Hiker_deer 2023. 6. 19.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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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유산, 소백산이 제일 좋다던 산린이는 작년 공룡능선 다녀온 후로 설악산 덕후가 되었다.
    그러니까 좋아하는 산 순위를 매긴다면 여전히 덕유, 가야, 월출, 소백 등이 엎치락뒤치락하겠지만 설악산은 이 모든 산들의 우위, 어나더 레벨이다.
    무조건 무조건이야~~~ 수준이다.

    그래서 설악산 서북능선 다녀온 지 한 달 만에 또 설악산행을 신청했다.
    솔직히 설악산에서 대청봉이 제일 별로라고 생각했다
    평생 한 번만 가봐도 되는 곳이라 생각했다.
    이번 산행도 대청봉에 가는 산행이어서 망설였지만 참석자들의 체력상황에 따라 공룡까지 갈 수 있다는 공지에 홀려 신청을 했다.

    그리고 따란 따란!
    뚜껑을 열어보니 나만 잘하면 될 멤버가 모였다.
    한 번도 만나본 적 없지만, 대장님이야 두말할 필요 없을 테고
    여자분 한분은 화대종주 완주하신 분
    남자분은 트레일러닝+마라톤 하시는 분.
    나만 잘하면 공룡까지 가겠다 싶었다.

    그래서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초록이 가득한 6월의 공룡은 세상에서 가장 웅장하고 아름답고 신비로우니까!

    금요일 자정을 앞둔 시각, 잠실에서 만나 어색하게 인사를 나눴다.
    세상 어색했지만 딱 네 명이니까 괜찮았다.
    게다가 막내였던 화대종주 에이스 Y님이 서글서글하게 말을 걸어주어 재미나게 갈 수 있었다.
    이 말인즉슨, 우리는 금요일 하루 출근해서 일을 하고 퇴근을 했고 만나서 설악산까지 이동하는 동안 차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밤을 꼴딱 새운 상태에서 등산을 했다는 뜻이 되겠다.

    2시에 목적지 근처에 도착.
    시내 편의점에 가서 간단히 식사를 했다.
    그리고 오색 주차장에 주차했다.
    예전에는 들머리 근처에도 주차장이 있었다는데 주차비가 비싸졌다는 소문만 있고 주차비를 확인할 수 없어 안전하게 아래쪽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남설악탐방지원센터까지 1km 넘는 거리를 걸었다

    - 사람이 생각보다 없네? 다행이다-!!
    했던 것은 큰 오해!
    한계령처럼 줄 서서 올라가지 않겠구나 싶었는데 오색코스도 설악산이었다.

    긴 줄 사이에서 끼어 산에 올랐다.
    내 속도가 아닌 타인의 속도에 맞춰야 했다.
    그런데 오늘의 산동무들은 줄 사이에 껴서 산을 오르면서도 순식간에 줄 앞으로 나가는 놀라운 재주가 있는 분들이었다.
    그래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우리는 거의 선두.
    우리 앞에 사람이 없었다

    초반부터 너무 빠르게 나간 것도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목요일, 스트레칭을 할 때 무리해서 쭉쭉 늘려줬었는데 허벅지 햄스트링에 무리가 왔나 보다.
    등산을 시작한 지 10분도 안되어 햄스트링이 툭 튀어나오는 느낌이었다.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햄스트링이 일어난다(?)라고 표현을 해야 할까.
    허벅지뒤쪽과 엉덩이의 힘으로 오르는데 허벅지 뒤쪽의 햄스트링에 통증이 생기자 허벅지의 힘을 쓸 수 없었다.
    왼다리는 오롯이 무릎의 힘으로만 디뎌야 했다.
    높이 올라가야 하는 걸음은 오른발로 했고 왼발은 디딜 때마다 근육이 찢어지는 것 같은 통증이 수반됐다.

    빠르게 사라져 가는 동무들을 이를 악물고 쫓아가는데 이 몸으로 과연 공룡을 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그러니까 이 몸이어도 대청봉은 뭐가 됐건 가겠다는 의....지....?)
    두 명은 앞서 사라지고 산동무 한분이 내 뒤를 지켜주시며 오르는 내내 가방을 달라고 하셨다. 가방이라도 없으면 근육이 풀어지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아니라고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며 나는 중간에 포기하고 그런 사람이 아니니 부디 당신의 속도로 올라가시라고, 산을 남의 속도에 맞춰 올라가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으니 먼저 가시라고, 많이 늦지 않게 따라가겠다고 해도 끝끝내 내 뒤를 지키셨다.
    힘이 드는 걸음은 오른발을 디뎌야 해서 발이 꼬여 조금이라도 휘청거리면 번개같이 뒤에서 내 배낭을 들어 올려 균형을 잡아주셨다. 감사한데 죄송하고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는 산행을 하게 됐지 뭔가....

    두 번은 잠깐잠깐 쉬고 대청봉 도착하기 직전 나를 위해 오랜 휴식을 가졌다.
    스틱을 활용해 허벅지 뒤쪽을 계속 눌러주며 마사지를 했다. 산동무님이 챙겨 오신 아미노바이탈도 물에 타서 한 병을 원샷했다(대청봉 산행은 다른 설악산행과 달리 중청봉 대피소의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어 물을 걱정 없이 마셔도 된다)

    그럼에도 나의 햄스트링 통증은 잡히지 않았다.
    밤을 꼬박 새운 동무들은 산을 오르며 졸음과 사투를 벌이는데
    나는 허벅지 통증이 너무 심해 졸음이 침범할 틈이 없었다.

    대청봉을 500미터 앞두고 뒤를 돌아보았다.
    내가 통증에 시달리는 동안 해가 뜨고 주변이 밝아졌으며 설악산의 위용이 나타났다.
    설악은 역시 설악이다!

    천국으로 가는 길이라 해도 믿을 만큼 아름답고 서정적인 대청봉 가는 길.

    자, 그리하여 1265m, 6.36km를 3시간여 만에 도착했다.
    나 때문에 오래 쉬지만 않았어도 두 시간대에 대청봉에 오르셨을 나의 산동무들.
    너무 좋아 정말

    대청봉의 한쪽은 산맥이 힘차게 뻗어있고 군데군데 운해가 깔려있었고

    다른 한쪽엔 동해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와!!!! 난 왜 그동안 설악산 대청봉이 별로라고 생각한 거야?
    (아마 첫 설악산행이 대청봉이었고 그때 오만가지 고생을 해서이리라... 고 짐작은 해본다)

    역광은 예술이지🤣🤣

    정상석 줄을 기다리며 해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동해바다 쪽을 사진에 담아본다.

    재작년 왔을 때보다 대청봉의 붉은기가 빠진 것 같은데, 그냥 느낌인 걸까?

    이변이 일어나리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우려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역시나! 나는 아픈 허벅지로 동무들을 따라 대청봉에 오르고야 말았다.
    장하다!!!! 장해~~~

    대청봉에서 중청대피소에 가기 전, 포토스팟에 들렀다.

    마! 이거시 설악인기라!!


    를 보여주는 사진 아닌가!
    부드러운 산등성이도, 하늘을 찢을 것처럼 뾰족하게 날이 선 산봉우리도 다 가진 설악이!!

    설악산은, 강원도 어디 목장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목가적인 풍경도 가지고 있다. 중청 대피소는 설악산의 다른 대피소들과는 다른 목가적인 평온함을 가지고 있다.
    잠시 들러 간식을 나누고 화장실을 들르고 긴 길을 나설 준비를 했다.
    우리는 아직 공룡을 갈지 안 갈지 결정하지 않았다.
    하산은 허벅지에 힘을 주고 하지 않아도 되니 햄스트링 통증도 덜해서 오르막을 오르면 또 아프더라도 동무들이 가겠다고 하면 그냥 따라나설 생각이었다.

    난, 그만큼 공룡에 진심이다

    중청에서 내려가는 길이 이렇게 멋졌던가!
    지난번 대청봉은 한계령에서 올라왔기에 이 길을 올라가느라고 저 멋진 풍경을 뒤에 두고 올라갔을 것이다.

    설악! 진심으로 사랑한다♥♥♥

    소청대피소와 희운각대피소의 갈림길에 섰다.
    아침식사는 다음에 나오는 대피소에서 하기로 했는데 우리의 루트에 있는 희운각대피소는 파리가 많아서 식사가 조금 불편할 수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소청대피소는 400미터를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야 한다.
    주저 없이 희운각대피소로 가자고 했다.

    다른 때였다면 묵묵히 따라나섰겠지만 오늘은 햄스트링이 존재감알 뿜뿜 뽐내고 있으니 조금이라도 아껴야지. 그래야 만약 공룡을 간다고 해도 잘 따라갈 수 있을 거야.

    희운각대피소까지는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내려가고 또 내려가면서 대청봉까지 우리가 얼마나 많이 올라왔는지를 실감한다.
    빠른 산동무 한 명이 엄청난 속도로 점이 되어 사라졌다.
    희운각대피소에 테이블이 적으니 먼저 가서 테이블을 잡기로 했다.

    저렇게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산을 탈 수 있는 사람이 오르는 내내 내 뒤에서 속도를 맞춰주었다.
    정말 더더더 겸손해져야지. 나도 조금은 더 너그러운 사람이 되어야지 소심하게 다짐해 본다.

    8시가 조금 넘은 시각, 대단한 아침식사가 차려졌다.
    고기를 굽고 라면을 끓여 졸졸졸 흐르는 희운각 대피소 옆의 계곡물소리를 BGM삼아 정말 맛있는 식사를 했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주긴 했지만 예보되었던 대로 더위가 폭염 수준으로 기승을 부리는 날씨여서 바람이 안부는 구간을 지날 때면 금세 진이 빠졌다.

    희운각대피소의 계곡에 자리를 잡고 쉬기로 했다.
    운전을 해서 우리보다 더 피곤한 대장님은 넓고 평평한 바위에서 잠을 청했고 우리도 각자 편한 바위에 앉아 바람을 즐겼다.

    사람이 너무 익숙한 다람쥐는 먼저 와서 먹을 것을 찾았다.
    내어준 아몬드 두 개는 다람쥐의 입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져 양볼을 불룩하게 만들었다.

    작년 산행에서 다람쥐를 발견하고 엄청 좋아하는 나에게
    -다람쥐는 예쁜 옷을 입은 쥐에요
    라며 싫은 티를 내던 산동무덕에 다람쥐의 정체를 깨닫게 됐지만 그래도 너무너무 예쁜걸~!
    다람쥐 좋앙!

    실컷 늘어지게 쉬고 희운각대피소 바로 앞, 천불동과 공룡의 갈림길에 섰다.
    그리고 다들 미련 없이 천불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공룡까지 가기엔 너무 더웠다.
    나 때문인가 싶어 미안함이 밀려오긴 했지만 이렇게 더운데 여기에 더 긴 산행을 보태면 진이 빠질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설악산행은 힐링산행이 되었다.
    대청봉까지는 마치 등산 경기에 나온 선수들 마냥 빠르게 오른 우리는 그 이후에는 한량 같은 산행을 했고 공룡을 가지 않기로 결심한 이후에는 산책같이 느긋한 산행을 했다.
    설악산이 힐링산행이 된다고!!!!????
    싶었는데 이게 되네???

    지난주 두타산에 물이 없어서 천불동계곡도 그러려나 했는데 천불동 계곡의 물은 폭풍 같은 소리를 내며 쏟아져내렸다.
    목요일에 많은 비가 왔단다.
    이 또한 얼마나 행운인가!

    천불동은 하산하는 길 내내 속에서 천불이 난다고도 했고 단풍이 들면 천 개의 촛불이 켜진 것 같다고 해서 천불동이라고 한다는 이런저런 속설을 다 차치하고 오늘부터 천불동은 그냥 미치도록 예쁜, 너무 예뻐! 예뻐! 예뻐를 천 번은 외쳐야 하는 길이었다.

    하산길이 긴 것은 사실이지만 그 긴 길 내내 이렇게 아름답고 예쁘고 우아하고 웅장하고 사랑스러우니 길어서 고맙다고 해야 할 지경이다.

    우리는 내려가는 길에 한번 더 계곡에서 느긋하게 쉬었다.
    누군가는 눈을 붙이고 누군가는 계곡에 발을 담그고 꿈결 같은 시간을 보냈다.

    비선대에 거의 다 와서 마지막으로 설악을 돌아본다.
    다시 올께. 올해 꼭 두 번은 더 올꺼야.
    공룡능선 그리고 봉정암.

    태양은 점점 더 높아지고 내리쬐는 햇살이 뜨거웠다.
    더 더워지기 전에 산행을 마쳐 다행이라고 입을 모았다.

    어렵고 힘들기로 유명한 설악산이 힐링산행이 된다고?
    응! 이게 되네!!!


    이렇게 느긋하고, 여유롭고, 느림의 미학과(!) 여유가 주는 행복감을 가득 안은 채 설악을 걷다니!
    오늘 한 번의 산행으로 공룡능선까지 가고 싶었던 욕심을 내려놓은 대가로 공룡을 걸으며 느꼈을 벅참과 두근거림 대신 느긋함의 감동을 잔뜩 느끼고 간다.

    몇 번이고 다시 찾을 설악산을 한 번쯤은 이렇게 동네 뒷산 마실 나온 듯 다녀가도 좋잖아.

    🎯설악산 대청봉 오르기🎯
    ✔️산행시간 : 10시간
    ✔️ 산행거리 : 20km
    ✔️ 산행코스 : 오색주차장 - 대청봉 - 중청대피소 - 희운각대피소 - 양폭대피소 - 소공원
    ✔️ 주차 : 설악산 오색 주차장(10,000원), 소공원->오색주차장 택시이동(55,800원)
    ✔️ 설악산 힐링산행, 이게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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