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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산일기] 덕유산 육구종주 도전기
    등산일기 Hiker_deer 2023. 9. 3.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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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우.유.감.

    덕유산을 매우 좋아한다.
    덕유산 영구종주 두 번, 그 외 덕유산 갈 때마다 꽤 긴 산행을 해서 길치 방향치인 내가 덕유산은 곳곳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을 정도이다.
    그래서 늘 덕유산을 모두 아우르는 육구종주를 해보고 싶었다.

    때마침 가입된 산악회에서 덕유산 육구종주 계획이 떴고 동무들과 함께 신청하고 오랫동안 기다린 끝에 드디어 그날이 왔다.
    모임 인원만으로도 무려 버스 두대가 다 찼다.
    어쩐지 모임에 대한 자부심이 한 움큼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친목으로 똘똘 뭉쳐 원칙이 사라져 버린 모임에 대한 불신만 남게 되었다.
    소통이 잘 안 되어서 미안하다는 사과는 받았지만 이것은 소통불통이 아닌 원칙이 사라진 무원칙 주먹구구가 친목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돼 버린 결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덕유산을 걸었고
    그렇게 좋아하는 덕유산을 오래오래 걸었고
    거의 나의 첫 산동무와 다름없는 장비벌레 선생님과 정말 오랜만에 함께한 산행이었으니 마음을 다잡고 남겨보기로 한다.
    우당탕탕 덕유산 종주일기.

    백두대간 육십령.
    육구종주의 출발지에 도착했다.
    개인정비를 하고 60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단체 사진을 찍었다.
    여러 번 공지가 되었다.
    서봉까지는 조별로 나누어 함께 이동한다고 했다.
    오늘 종주에 함께한 두 명의 산동무와 다른 조가 되었다.
    -언니, 조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우리는 따로 이동한다고 할까요?
    아니, 우리는 신입회원이니까 웬만하면 모임 지침에 따라주자. 그러니 서봉에서 만나!
    누군가 정해주는 지침이 있다면 되도록이면 그것을 따라주자는 주의다.

    하지만 임뀨의 말을 들을 것을 그랬다.
    우선 우리는 이 모임의 종주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모른다. 게다가 임뀨와 나는 초반 스퍼트가 좋은 편이 아니다. 우리는 지구력 하나는 대단하다~ 싶을 정도지만 초반에는 좀 비실대는 편이다.

    그런 임뀨와 나, 그리고 또 한 명의 산동무 이선생이 완전 공복으로 어마어마한 산꾼들 사이에 껴서 산을 오르게 된 것이다.

    출발 50분 만에 할미봉에 도착했다.
    다들 경쟁하듯 속도를 냈다.
    그래도 할미봉까지는 괜찮았다.
    덕유산 육구종주를 한 사람이라면 모두들 혀를 내두르는 서봉 가는 길.
    밧줄을 잡고 오르고 내리고, 두 손 두 발을 다 써야 하는 험한 길이 이어졌고 난 배고픔에 지치고 어지럼증이 시작됐다.
    그러다 사람들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다들 휴게소에서 쉴 때 식사를 하고 에너지젤이나 파워업 약제를 먹었다는 것이다.

    난 보통 종주를 할 때 산을 오르다가 배고프면 조금씩 요기를 하고 오르기 때문에 미리 먹어야 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다.
    다들 나와 같은 공복상태로 이렇게 어마어마한 파워를 뽐내며 산을 오르고 있었구나 싶었는데 나만 완전공복으로 허덕이며 힘겹게 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사전에 물어보지 못한 내 불찰이기도 했지만 산행을 이렇게 강제로 끌려가듯이 하고 있자니 현타가 왔다.

    그래도 서봉만 가면 배정된 조원들과 별도로 산행을 이어갈 수 있으니 서봉까지만 버티자고 이를 악물었다.
    그런데 서봉까지 7km나 되는 줄 몰랐다.
    그렇게 긴 거리를 쫓기듯 목줄매여 끌려가듯 가야 하는지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나의 동무인 임뀨와 이선생의 조는 상당히 뒤쪽에 있어서 서봉에 도착하더라도 30분 이상을 기다려야 할 텐데 이렇게 빨리 가야 하나 짜증이 올라오기도 했다.
    모임에 익숙한 사람들은 자기 페이스에 맞춰 조에서 빠지기도 하는 모습을 올라가면서 보았지만 그렇게 친목의 반기(?)를 들기에 나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불만을 제기할 성격도 못되니 얼른 서봉에 도착하기만 바랄 뿐이었다.

    하늘이 맑았다.
    오늘 흐리고 비가 올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날이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가 생겼다.

    이 어두운 밤, 헤드랜턴 불빛에 의존해 길을 걷는 사람들.
    해뜨기 전 새벽, 산을 오를 때마다 줄지어 늘어선 불빛을 보면 늘 마음이 뭉클하다.
    좋아하는 것을 하는 사람들의 열정에 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스스로를 하얗게 태워버렸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길고 어려운 공복유산소를 끝냈다.
    5시 25분. 7km에 달하는 산행을 마치고 드디어 서봉에 도착했다.
    기꺼운 마음으로 조원들을 보내고 싸늘한 새벽바람을 맞으며 임뀨와 이선생을 기다렸다.

    30여분 정도를 기다려 우리는 완전체가 되었다.
    오늘 컨디션이 안 좋았던 임뀨는 너덜너덜 진이 다 빠져있었다.
    사냥개한테 몰린 토끼마냥 넋이 나가있는 임뀨와 이선생을 보니 미안해졌다.
    우리 페이스대로 올랐어도, 오르며 간단히 요기를 했어도 많이 늦어지지 않을 산행이었다.

    그런데 정해진 원칙이니 따르자-라는 순진한 생각에 우리의 컨디션은 엉망이 되었고 3시간 동안 망가진 컨디션은 하루종일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공복유산소라고 하기엔 무식할 정도의 운동량을 공복에 해버린 탓에 하루종일 허기를 느껴야 했다.

    셋이 만나 진짜 눈물이라도 흘려야 할 정도로 홀가분함을 느끼며 이제 우리 페이스대로 산행을 하자며 산행을 할 때 지켜져야 할 이 단순한 원칙을 적용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아침식사를 했다.

    서봉에서 남덕유산까지는 1.5km.
    아직도 상태가 좋지 않은 임뀨와 이선생은 천천히 걸었고 나는 앞서 걸었다.

    남덕유산을 이렇게 밝을 때 오른 것은 처음이다.
    영구종주를 하면 남덕유산에 오르면 해가 뜰 즈음이거나 해가 뜬 직후라서 늘 배경이 붉은 하늘이었다.

    멋진 산그리메, 산봉우리 사이를 가득채운 운해! 역시 덕유!

    영각사탐방지원센터에서 남덕유산을 오르는 길, 영구종주의 시작인 코스가 현재는 이용불가였다. 공사 중이라고 막혀있는 남덕유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계단길을 힐끗 바라보고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내 페이스대로 걸어도 됐던 영구종주가 잠시 그리워졌던 순간.

    남덕유산에서 삿갓재대피소까지의 길은 갈 때마다 참 길고 지루하다. 그래서 늘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고
    -덕유산 또 가고 싶어. 덕유산 너무 좋아
    가 돼버리는 매쥑

    동무들은 컨디션에 맞게 오라고 하고 완주를 하고 싶었던 나는 조금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구천동 하산길은 정말 별로라고 생각하지만 육구종주니까 완주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우직하게 삿갓재로 가는 길, 모임 형님 한 분을 주웠다

    삿갓재대피소를 가야 하는데 이정표에 동엽령이 나와있다며 이 길이 맞냐며
    -★★(산악회 이름) 이시죠?
    라고 물었다.

    동엽령은 삿갓재 이후에 나오는 장소이름이고 이 길이 맞다고 했더니 함께 가자고 하셔서 같이 이동하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넷이 되었다.

    삿갓재까지 가는 긴 길은... 걸어도 걸어도 킬로수가 줄어들지 않는 길이다.
    잔돌이 많아 조금이라도 한눈을 팔면 바로 미끄러진다.
    초반에 털려버린 내 몸은 시간이 지나도 회복되지 않았다.
    동무들보다 조금 나아 그들보다 조금 빨리 걸을 뿐이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산행을 하며 컨디션이 안 좋았던 적은 종종 있었지만 대개는 몇 시간 지나면 돌아오곤 했는데 오늘 이른 새벽의 큰 펀치는 나를 구렁텅이에 처박아 회복불능의 상태가 되어버렸다.

    하늘이 참 예뻤던 삿갓재대피소

    영원히 만날 수 없을 것처럼 걸어도 걸어도 나타나지 않던 삿갓재대피소가 뿅~!하고 눈앞에 나타났다.
    바로 물을 샀다.


    500ml는 1500원, 2리터는 3,000원
    냉장은 아닌 실온에 보관된 생수, 카드 사용 가능
    화장실은 완벽한 수세식 화장실!
    여느 대피소의 거품 보글보글 냄새나는 화장실이 아닌 수세식입니다!!
    삿갓재대피소 찬양


    삿갓재대피소 즈음에서 걸음이 늘어졌기 때문에 오래지 않아 임뀨와 이선생이 도착했다.
    대피소의 꿀잼인 샘터 다녀오기를 위해 가위바위보를 했고 진사람 한 명이 샘터에서 물을 떠 왔다.
    꿀맛 같은 샘터 물 맛.
    비어버린 물통을 가득 채우고 마음이 든든해졌지만 가방도 다시 묵직해졌다.

    삿갓재 대피소에서 향적봉 대피소까지는 10.5km
    삿갓재에서 한참을 놀고 쉰 우리가 출발한 시간은 10시 반.
    버스 출발시간은 오후 5시 반.
    시간이 빠듯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상당히 여유있는 편이었다.

    구천동 하산은 3km 정도가 내리막이고 6km가 임도이자 평지이다.
    경험으로 알고 있는 나의 구천동 하산시간은 3시간여.
    그래서 향적봉에 2시 반까지 도착하면 혼자라도 구천동 하산을 감행하기로 했다.
    완주 욕심은 버렸지만 상황이 되면 완주하는 것으로 마음을 정리했다.

    첫 종주때, 덕유산과 사랑에 빠지게 된 그 풍경!

    시간 여유가 있어 조금 느긋하게 걸으며 풍경을 즐겼다.
    날이 좋았고 하늘이 예뻤다.
    삿갓재까지는 뷰가 전혀 없는 숲길이지만 삿갓재 이후로는 능선길이 많아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덕유의 산그리매는 동글동글 유하고 따스한 매력을 가졌고 산골짜기 고랑들은 물결치듯 펼쳐진다.
    덕유산의 찐 매력은 삿갓재 대피소 이후에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삿갓재 이후부터는 경사가 완만한 능선이고 길도 잘 닦여있어 풍경을 감상하며 걷기 딱 좋다.

    날씨도 좋고 시간도 여유롭고 뷰는 더할나위 없이 아름다웠으니 우리는 참 행복했다
    물론 해가 중천으로 이동하며 뜨거운 공격을 해왔지만, 땡볕을 걷다가 바람골을 만나면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한껏 바람을 마주 안았다.
    그 순간이 또 그렇게 상쾌하고 행복했다.

    무룡산 즈음부터 산악회장으로부터 위치 확인하는 전화가 왔다.
    물론 나와 동무들은 아니고 함께 걷게 된 회원님께 온 전화였다(아마도 이분이 원래 걸음이 느린 분이셨던 것 같다)
    우리 일행과 함께라는 말은 하지 않았고, 본인의 위치를 알리고 계획도 알렸다.
    그 이후로 1시간에 한 번씩 위치 확인과 함께 도착시간에 대한 걱정이 가득한 전화가 와서 옆에 있던 우리는 마음이 급해졌다.

    풍경 구경이고, 덕유산 능선을 걷는 걸음을 즐기는 것은 뒤로하고 속도를 올렸다. 내가 앞서서 걸었다.
    늦어서 민폐를 주면 안 될 일이고 회장님이 그렇게 걱정을 할 정도이니 다 포기하고 곤도라를 타자고 했다.
    내가 먼저 가서 표를 사겠다고 했다.

    동엽령까지 시속 4~5km 정도의 속도로 빨리 걸었다.
    동엽령에 도착해 안성으로 하산을 할까 고민하는 임뀨와 이선생에게 이후부터의 길도 상승과 하강의 차이가 크지 않고 길이 좋으니 그냥 향적봉까지 가자고 조심스레 말했다.

    그리고 동엽령부터는 거의 달렸다.
    임뀨가 앞서 나갔다.
    우리 둘이 먼저 가서 표를 사자고 했다.
    역시.. 임뀨나 나나 근성은 대단하다.
    지구력의 결정체. 우리 체력의 근본은 지구력. 포기하지 않는 근성.
    이 모든것의 뿌리는 절대 폐를 끼치기 싫어하는 마음이었다.

    주변 둘러볼 시간조차 없었던 덕유평전

    목표는 버스시간 전에 도착해 폐 끼치지 말기.
    옷 갈아입고 버스에 오르기.

    정상석은 사람이 많아 패스

    그래서 향적봉에 2시 50분에 도착했고 설천봉 곤도라탑승장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속도를 올린 서로를 칭찬하며  맥주를 나눠마셨다.

    곤도라를 타고 내려와 택시를 타고 삼공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이 4시였다.
    미리 공지된 종주 완료 시간이 3시 반이었고, 식사 및 뒤풀이 후 버스가 출발하는 시간이 5시 반이었다.
    조금 늦었지만 어차피 뒤풀이는 안 할 생각이었으므로(원래는 뒤풀이할 시간에 하산을 해서 완주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늦은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가 손가락에 꼽을 만큼 빨리 도착한 일행이었다(거의 최초 도착자인듯 했다)
    전화로 우리 위치를 체크하며 여차하면 곤도라를 타겠다고 말했음에도 도착을 제시간에 하겠느냐며 걱정하던 모임회장조차도 우리가 도착하고 나서 1시간 반이 지난 후에야 도착했다.

    어이가 없었다.
    게다가 늦게 도착한 사람들 모두 늦어서 급하거나 미안한 기색이 없이 느긋한 걸음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빨리 걷고 달린 우리의 시간이 허무해졌다.
    그리고 곧이어 버스시간이 예정보다 50 분 늦어진 6시 20분으로 변경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선생은 집이 멀어서 막차가 10시 반이었다. 어이없는 상황에 대한 짜증과는 별개로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우리만 빼고 모두가 이 상황을 알고 세상 느긋하게 산행을 한 것일까?
    바보 같은 우리만 헐레벌떡 하산을 하고 2시간이 넘는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늦어지게 될 일정에 대해 일언반구의 안내도 없었던 것에 울화가 치밀었다.

    원칙보다 친목에서 우러나는 정이 먼저인 모임인 줄 알았더라면 초반에 조를 짜놓고 조끼리 이동하라는 원칙도 지키지 않았어도 됐을 것을.
    그랬다면 우리 모두 컨디션이 바닥인 상태로 산행을 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씁쓸했다.
    결국 원칙을 지키려 노력했고 공지된 내용을 지키고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 우리는 친목 네트워크를 통한 정보공유 시스템에서 배재된 피해자가 된 셈이다.
    많이 좋아하는 덕유산을 이렇게 걷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매.우.유.감.
    덕유산 종주기. 끝-

    🎯덕유산 육설종주🎯
    ✔️산행거리 : 27km
    ✔️산행코스 : 육십령-할미봉-서봉-남덕유산-삿갓재대피소-무룡산-동엽령-백암봉-중봉-향적봉-설천봉곤도라탑승장
    ✔️산행시간 : 12시간 35분
    ✔️안내버스를 탔다면 더 수월했을 텐데... 후회했지 말입니다. 다음에 간다면 안내산악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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