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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산일기] 소백산 일출산행-님아, 그 봉에 가지 마오
    등산일기 Hiker_deer 2023. 9. 23.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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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아, 그 봉에 가지 마오.
    국망봉

    좋아하는 산을 꼽아보라면 늘 주저 없이 자동으로 입에서 튀어나오는 산 중 하나인 소백산.
    등산을 시작하고 꽤 초반에 갔던 산인지라 한때는 원투펀치 안에 들었으나 그 이후 멋진 산들을 만나면서 어쩐지 소박한 산이 되어버린 소백산.
    원래 삶은 이렇게 냉정한 거지.

    한낮의 소백산도 뇌에 눈에 박제하고 싶을 만큼 예쁘지만
    소백산은 일출로도 유명하고
    눈꽃으로도 유명하다.

    여름에도 칼바람이 부는 소백산, 그런 소백산의 겨울을 감히 마주할 자신이 없는 춥찔이는 소백이의 여러 모습 중 일출을 만나고 싶어졌다.
    하지만 소백산 일출산행을 가는 안내산악회는 찾기 힘들었고, 국립공원은 안전하다지만 어두컴컴한 새벽에 혼자 올라갈 엄두가 안 났다.

    그래서 차일피일 미루던 소백이의 일출을 오늘 만나고 왔다.
    산행을 기획해 주고 운전까지 도맡아 해 주신 리딩님께 감사를!!!
    Special thanks to M.

    자정, 대치동에서 만나 출발.
    좀 빠른가 싶었지만 도착해서 눈을 붙이기로 했다.
    2시 반 도착.
    잠시 눈을 감고 쉬었다.
    오전 3시. 주섬주섬 준비를 시작했다.
    꼬물꼬물 몸을 풀어본다.

    실은 어의곡에서 시작해 비로봉까지 5.1km, 애플워치가 거리를 후하게 쳐준다 해도 6km 정도이다.
    어의곡 오르막은 길이 험하지도 않다.
    설악산 오색을 2시간 50분 걸려 올랐다.
    오늘의 일출은 6시 15분.
    아무리 생각해도 계산이 안 맞았다.
    그런데 3시가 되니 주차된 차에서 사람들이 나와 웅성웅성 출발을 했다.
    따라쟁이는 마음이 불안했다.
    그래서.. 우리도 출발하기로 한 것이다.

    밤하늘에 별이 가득했다.
    어두운 밤, 산행을 시작하는 산 중 눈물 나게 별빛이 아름다웠던 산은 늘 덕유산이었다.
    여러 번 가도, 다른 산을 가봐도 덕유산의 별빛이 가장 찬란했다.

    그런데 오늘 소백산의 별은 금세 쏟아져 내릴 듯, 손에 잡힐 듯 밝은 빛을 내며 반짝였다.

    소백이었다.

    오늘 산행은 늘 좋아하던 소백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어서 특별하기도 했지만
    새로운 산동무를 만나는 기회여서 특별하기도 했다.
    블로그 일기를 보고 함께 산행을 하고 싶다고 조심스레 연락 오신 동무님에게 나도 조심스레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끝에 성사된 만남이었다.
    매우 떨리고 부끄러웠다.
    그래서 오늘 어색함을 누르려고 아무말대잔치를 많이 했다.
    돌이켜보니 좀 부끄럽지만 오래 만나게 될 사이이고 인연이라면 오래 만나며 어색함의 가면 속에 가려진 민낯을 마주하고 아무 말 없이 걸어도 편안해질 날이 오겠지.

    그나저나 이분, 산을 오르는 속도나 호흡이 산신령 수준이지 뭔가.
    빠른 속도로 치고 올라가는 뒷모습을 보고 춥찔이는 더럭 걱정이 앞섰다.
    소백산 비로봉의 똥바람 칼바람을 맞으며 일출을 오래 기다려야 하면 어쩌지?
    그래서 나는 걸음을 늦췄다.
    M님과 B님에게 편한 속도로 먼저 가라고 하고 나는 느리게 걸었다.
    이렇게 느리게 산을 올라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요 근래 산행들은 신령급 동무님들과 함께해서 늘 부랴부랴 열심히 따라가야 하는 산행이었다.

    오늘의 산동무님들, 편하게 내 속도로 늘어질 수 있게 해 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비가 많이 와서 어의곡 탐방로 들머리부터 우회로였다.
    그리고 계곡물소리가 천둥처럼 울렸다.
    천동계곡 탐방로도 아닌데 천둥 같은 물소리네.
    혼자 생각하고 세상 아재 같아서 피식피식 웃었다.

    이정표 상으로 3km를 가면 누구나 쉬어가는(!) 쉼터가 나온다.
    우린 거기에 주저앉았다.
    4시 반이 좀 넘은 시각이었고 비로봉까지는 2.1km가 남았다.
    그리고 쉼터 이후부터는 길이 더더욱 유순해진다.
    30여분을 쉬며 소담 소담 이야기를 나누다가 5시에 다시 출발했다.

    올라가는 길 왼편으로 그림자극이 펼쳐졌다.
    어두운 새벽의 장막을 걷으며 해가 떠오르려 할 때 하늘이 붉게 물들어가고 나무들은 마지막 어둠을 불태우듯 더욱 검게 변한다.
    그 풍경은 볼 때마다 어릴 때 보던 그림자극 같았다.

    어디선가 다그닥다그닥 그림자 말을 탄 기사가 나타날 것만 같다.
    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차 간신히 밝아오는 하늘이 보이던 숲길을 지나 드디어 눈앞이 활짝 열렸다.

    어의곡 삼거리로 가는 데크길의 시작.
    길을 따라 걷다가 뒤를 돌아보니 바다가 펼쳐졌다.

    데크길이 마치 바다를 향해 뻗어가는 것 같았다.
    구름이 이룬 하얀 바다는 파란 바다와 맞먹을 정도로 넓고   광활했다.
    이렇게 끝없이 펼쳐진 운해는 처음이다.
    빈틈없이 가득 매운 구름 위로 솟아오른 봉우리는 바다 위의 섬과 같았다.

    그리고 왼편을 하늘을 보니,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붉은 하늘에 일렁이는 불길과도 같이 제멋대로 솟아오르는 구름이 장관이었다.

    어의곡 삼거리!
    세 개의 방향을 가리키는 안내표지가 있는 곳.
    그곳에서 뒤편의 운해와 왼편의 붉은 하늘을 오래오래 바라보며 많이 많이 감동했다.
    예보에 구름만 잔뜩 있어 별 기대 안 했는데 오늘 일출도 대성공이네!!!
    나, 정말 날씨요정인가 봐

    운해, 미쳤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어라? 설마 오늘 똥바람도 피해 가는 거야?
    -신이나, 신이나, 엣헴엣헴 신이나.

    이렇게 아름다운 운해를 바라보며 오늘 산행의 힘든 부분은 다 끝난 것이라 생각했다.
    보통은 그러하다.
    정상에 오르면 이제 남은 것은 하산뿐이니까.

    바다처럼 넓게 펼쳐지고 솜이불처럼 두텁게 쌓인 구름은 잔잔한 바다처럼 머물다가 어느 부분에서는 폭포가 쏟아지듯 공간으로 쓸려 사라지기도 했다.
    장관이었다.

    산객 중 한 분이 외쳤다.
    15분 남았다. 얼른 가자-

    오!! 우리도 갑시다!
    비로봉으로!!

    사방이 신비한 빛으로, 부드러운 구름으로 휩싸였다.

    적토마가 달리고 모래바람이 일듯
    용 수백 마리가 머리를 들고 승천하듯
    하늘 끝에 피어나는 구름은 보면 볼수록 빠져들었다.

    비로봉에 오르자마자 바람이 온몸을 할퀴었다.
    소프트쉘 위에 경량패딩을 입고 하드쉘을 입어 바람은 거의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었지만 머리칼이 정신을 못 차릴정도로 휘날렸고 얼굴을 때리는 바람이 따가웠다.
    바람에 몸이 휘청였다.
    산에서 칼바람을 맞을 때마다 난 생각하지.
    나의 커다란 몸뚱이도 바람에 휘청일 수 있구나.
    꺅- 날아갈 것 같아!!!!
    가 연약한 귀요미들의 전유물은 아니구나, 라는것

    소백산 비로봉은 "모두의 사진" 성지였는데
    나만의 사진을 찍기가 어려운 곳이었는데 일출 산행을 오니 오롯이 비로봉 정상석과 나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소백산에 한 번이라도 와본 사람들의 입에서는 자연스레 나와 같은 생각이 말이 되어 나왔다.
    - 비로봉에서 이렇게 여유 있게 사진 찍어보는 건 처음이야

    비로봉은 너무 아름답고 떠오르는 태양도 장엄하고 아름다웠지만 너어어어어어어무 추웠다.
    그래서 연화봉 쪽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사진을 후딱 찍고 추위를 피해 대피하기로 했다

    산등성이와 운해가 조화롭다.
    높게 자란 풀이 무심한 듯 바람을 따라 눕는다.
    부럽다.
    그치만 난 추워서 못 눕겠다.
    갈란다.

    나, 간다.
    비로봉!

    어의곡 삼거리로 돌아가는 길이 눈물 나게 아름답다.
    추워 죽겠는데 발걸음이 안 떨어진다.

    사진을 찍고 영상을 찍느라 일행과 떨어졌다.
    어의곡의 데크에서 나 홀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매우 드문 기회였는데.
    크... 아쉽구먼!
    내가 없어서 사진들이 더 예쁜지도 모르겠다.

    어의곡 삼거리에서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던 국망봉 방향으로 들어섰다.
    자고로 국립공원이라 하면 잘 정비된 길, 그리고 잘 정비된 길, 또 잘 정비된 길이 상징 아니겠는가!
    국망봉에 거려는 당신.
    그런 생각을 버려라.

    설악산에서 제일 탐방객이 적은 서북능선의 깊은 숲길 같은 느낌인데 길은 더 너덜너덜한 내리막과 오르막이 이어졌다.
    비로봉에서 강풍에 시달린 여파인지 꽁꽁 언 몸이 아직 녹지 않은 데다 국망봉 가는 길목도 강풍이 계속됐다.
    9월에 패딩과 하드쉘을 입고 산행을 하게 될 줄이야.

    너무 춥고 피곤한데 배가 엄청 고팠다.
    미안함을 무릅쓰고 앞서가는 동무들을 불러 세웠다.
    -배가 너무 고파요. 우리 아침 먹고 가요

    테이블보다 흙바닥에서 더 돋보이는 자연친화적 간식

    참으로 오랜만에 만난 M님의 크림치즈호두 곶감말이.
    비척거리는 나를 벌떡 일으키는 달달함.
    아침을 먹으며 한참 수다를 나눴다.
    추위에 덜덜 떨면서도 멈출 수 없던 수다는 곶감말이만큼 달고 짜릿했다.

    그리고 오늘 하늘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해가 떠올랐는데도 운해가 그대로였다. 촘촘하게 거품을 낸 우유를 잔뜩 얹은 카푸치노 같았던 운해.
    커피 마시고 싶다.

    그렇게 앞으로 다시 갈 일이 없을 것 같은 국망봉에 도착했다.
    그리하여 진짜 오늘 산행의 힘듦이 끝났는지 알았지

    님아, 국망봉에 가지 마오.
    하산길이 폭망이오!

    약 8~9km 정도 되는 긴 하산일이 온통 너덜너덜했다.
    길고 지루하기로 선두권을 다투는 오대산 소금강 하산길, 설악산 천불동 하산길에 소백산 국망봉 하산길을 포함시키겠다.

    너덜길에 더해 비에 불어난 계곡이 돌 위로 올라와 물 위로 빼꼼히 올라온 돌들을 조심스레 밟으며 이동해야 했다.

    건너자 계곡.

    내려가자 너덜길.

    굳이 굳이 국망봉 오시려거든 다시 어의곡삼거리로 가서 어의곡탐방로로 하산을 하는 게 정신건강에 무릎건강에 좋을 것 같았던,
    국망봉 하산길.

    즐거웠다. 다시 보지 말자,
    국망봉 하산길.

    🎯소백산 오르기🎯
    ✔️산행시간 : 7시간 40분
    ✔️산행거리 : 18.2km
    ✔️산행코스 : 어의곡-어의곡삼거리-비로봉-국망봉-늦은맥이재-어의곡
    ✔️님아 그 봉에 가지 마오! 국망봉.
    ✔️똥바람 소백산 일출산행의 성공을 위해서는 출발시간이 중요! 오르는데 소요되는 시간을 2시간 10분 정도로 잡고 가면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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