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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일기] 봉정암 가는길_20231025등산일기 Hiker_deer 2023. 10. 27. 00:14반응형
두괄식으로 결론부터 먼저 쓰고 보자면
봉정암 가는 길은 너무나도 아름답고 수월했다.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어? 싶을 만큼 시간이 쓱싹 흘러가 버리는 봉정암 가는 길!
하지만 문제는...지리산 종주를 마치고 다음날 스쿼시를 하러 갔는데 내 발목이 코끼리발목이었다.
종아리와 거의 같은 두께가 되어버린 발목을 보고 어제 무리를 했나 보다 했는데,
그다음 날도 또 다음날도, 그리고 리커버리산행을 하기로 한 오늘까지도 발목의 부기가 가라앉지 않았다.
봉정암에 가기 위해 만나기로 했던 이른 아침 5시 반,
뽀오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녀의 발목도 그렇다고 한다.
천왕봉에서 중산리까지 구르듯 2시간 만에 하산을 한 우리의 발목은 그렇게 코끼리가... 통나무가 되어버렸다.
발목도 상태가 별로였고 오늘 하루는 진짜 느긋하게 소풍 나온 듯 걷자며 약속했었고
이 약속의 든든한 지원군으로 심뀨가 함께하기로 했다.
올봄, 산에 가서 발목을 다친 심뀨는 내내 등산을 쉬다가 가을의 부름에, 단풍의 손짓에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고 부상 이후 처음으로 산행을 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아직 다친 발목이 완벽하게 낫지 않은 심뀨
성중종주로 인해 발목이 통나무가 된 뽀오와 나,
느린 산행, 소풍 같은 하루를 보내기에 완벽한 멤버가 구성되었다.
집 근처에서 심뀨를 태우고 뽀오까지 태운 후 백담사로 달렸다.
6시도 되기 전인 이른 아침인데도 고속도로에는 차가 가득하고 정체구간도 종종 나타난다.
다들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우리처럼 놀러 가는 것이었음 좋겠다~ 모두가 즐거운 인생이었으면 좋겠다
싶다가도
아... 다들 일하는 날 나만 놀아야 하는데!!
라는 놀부심보가 오락가락하며 백담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거센 바람과 비, 그리고 이른 첫눈에 단풍이 빠르게 인사를 고한다는 설악산 가을의 끝자락을 붙잡기 위해 우리가 선택한 코스는 봉정암 코스였다.
봉정암에 가려면 백담사 주차장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백담사로 이동하여 등산을 시작해야 한다.
버스는 오전 7시부터 운행, 약 30분에 한대가 기준이지만 승객이 다 차야 출발한다고 한다.
우리는 기다리고 있던 몇 자리 안 남은 버스에 올라탔고 거의 바로 출발할 수 있었다.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경치가 이미 마음을 설레게 했다.
가을을 가득 품은 이 길을 걸어갔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버스에 내려 바로 백담사 탐방지원센터인 들머리로 갈 수도 있지만 우리는 잠시 백담사에 들렀다.
실은 길치에 방향치인 내가 무조건 백담사를 통해야 들머리로 갈 수 있는지 알고 그리로 이끌었다.화사한 꽃다발 같은 단풍이 가득한 산을 등지고 있는 백담사의 고즈넉한 풍경이 눈길을, 마음을 완전 사로집았다.
오늘의 산행은 이미 백담사에서 성공해 버렸다.
끝이 안 보일 것 같이 늘어선 누군가의 바람과 소망을 가득 진 돌탑의 사이로 낙엽이 내려앉았다.흰 돌과 가을을 머금었다 연하게 바랜 잎들이 어우러져 차분한 색감을 뽐냈다.
낙엽이 떨어졌다고 이렇게 느낌이 다를 일인가 싶었는데 낙엽의 색이 더해지자 돌탑이 한결 명랑해 보였다.
그들에게 투영된 소원들이 이미 다 이루어져서 행복을 만끽하고 있는 듯 보였다.그렇게 우리는 올라오는 버스안에서 한번, 백담사에서 또 한 번, 훅 다가오는 가을을 한껏 품었다.
날씨가 좋았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산타기 딱 좋은 날씨였다.
주말에 우박과 눈, 강풍에 시달렸다는 것이 거짓말 같을 정도로 날씨도 좋고, 떨어지기 전 더 힘을 내 노랗게 빨갛게 빛을 내는 단풍도 좋았다.진하고 선명한 색감이 사진에 안담겼다.
길은 매우 완만했다.
- 이런 길만 걸어서 진짜 그 높은 봉정암에 갈 수 있는 거 맞아!? 평지처럼 느껴져도 고도가 조금씩 높아지고 있는 거겠지?
이미 한번 다녀왔음에도 너무나 미심쩍을 정도의 평지가 쭉 이어졌다.이런길이라면 100km라도 걸을 수 있겠다고 기쁨에 찬 목소리로 뽀오가 말했고 우리는 적극 동의했다.
이렇게 예쁘고 이렇게 편하고 이렇게 좋은 길!
왜 안 걸어요!빛을 받아 단풍이 더욱 선명했고
단풍의 색감으로 빛은 더욱 신비로웠다.
단풍의 색감으로 따뜻함을 물씬 더한 따사로운 햇살 속을 즐겁게 걸었다.
- 우리 벌써 6km나 걸었어.
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편한 걸음이었다.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는 것도 우리가 그 거리를 걸었다는 것도 모를 정도로 걷고 걷고 또 걸어도 피로가 없는 길이었다.오르막이 나와도 잠깐,
다시 평지가 나타났고
계단도 잠깐, 또다시 완만한 길이었다.
계곡을 걷다가 잠시 쉬며 아침을 먹기로 했다.나는 누구? 여긴 어디? 싶을 만큼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으며 수다를 나눴다.
우리 정말 날짜 잘 잡았다며! 오늘 날씨 최고라고! 설악의 가을은 역시 명불 허전이라고.
오늘 이곳을 걷기로 한 우리 스스로한테 무한한 찬사와 칭찬을 날렸다.봉정암에 세번 오르면 극락왕생을 한다는 이야기를 불자인 후배에게 들었는데, 이런 길이라면 세번이 뭐야 삼십번도 오겠어!
그렇게 완만하던 길이 쌍룡폭포를 기점으로 계단이 연이어 나타났고 지혜샘부터 살짝 오르막이 시작되더니 매우 직설적인 고백을 담은 '깔딱고개' 안내표지 이후로는 정말 가파라졌다.
그래. 이게 설악이지!산의 지명중에 지혜샘이 진짜 지혜를 주는지 사자바위가 진짜 사자처럼 생겼는지 의아할때가 있지만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다.
깔딱 고개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
깔딱 고개라고 불리거나 적혀있으면 진짜 깔딱 고개이다.
500m가 깔딱이라는 저 안내는 거짓부렁이 확실하다. 최소 1km는 깔딱이겠더라.
여기저기서 숨넘어가는 듯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 힘들게 깔딱 고개를 오르며 해탈의 경지에 이르러서야 만날 수 있는 곳이 봉정암이었다.11시반이 봉정암 점심공양시간이라고 들었다.
암자의 공양이 처음인 나는 일반적인 점심시간처럼 약 1시간이나 1시간 반동안 점심공양이 진행되겠구나 싶었다.
12시 25분에 도착하여 점심공양이 아슬아슬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는데 너그러운 봉정암의 점심공양은 내가 생각하는 시스템이 아니었다.11시 반부터 시작이지만 종료시간은 나와있지 않다.
아마도 공양음식이 떨어지는 시간이 끝나는 시간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고기도 멸치도 안 넣었는데 어쩜 이렇게 맛있을 수 있나!
라는 후기를 여러 번 접한 봉정암의 미역국!
드디어 나도 만났다.
평소 밥도 국도 잘 안 먹는 내가 산에 와서 밥과 국을 먹다니, 이 또한 특별한 일이다진짜 미역밖에 안들어 간 듯한 미역국인데 너무 맛있었다.
걸음을 멈추니 찬 바람이 확 느껴졌지만 뜨거운 미역국이 몸을 노곤하게 달래주었다. 달콤 짭조름하게 조미된 단무지도 미역국과 찰떡이었다.
길가는 모든 이에게 베풀어주시는 마음을 감사히 받아 미역국 한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암자에서의 첫 공양, 오래도록 기억해야지.
그 따뜻함과 푸근함, 게다가 맛있기까지 했던 나의 첫 점심공양.
먹은 그릇은 설거지하여 정리하고 사리탑에 올라본다.동무들에게 한껏 자랑했다.
사리탑에서 보는 설악산의 풍경이 얼마나 멋진지를.그렇게 한껏 기대를 가지고 올라왔는데.. 생각보다 시야가 흐렸다.
많이 멀지 않은 곳만을 보고 올라와 날이 청명한 줄 알았는데 저 멀리까지는 깨끗이 보이지가 않았다.
그래도 단단하게 늘어선 설악산 봉우리에 이제 정말 가을과 안녕을 고할 것 같은 끝물의 단풍이 꽃무리인 듯 늘어져 있음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었다.토끼바위 뒷편의 공룡능선을 바라보고
눈아래로 펼쳐지는 설악월드에 다시한번 돌고래를 소환해본다.
사진이 다 담아내지 못한 가을 설악의 색감, 어쩔 수 없다. 나만 봐야지.사리탑에서 내려와 봉정암의 무료커피도 한잔 즐긴다.
봉정암이 베풀어 주는 모든 것을 감사히 누리다 보니 어느새 두시간 가까이 흘렀다.
백담사로 가는 마지막 버스시간인 7시가 우리의 마지노선이었다.
시간은 충분했다.
엄청 느릿느릿 쉬엄쉬엄 올라왔음에도 4시간이 걸렸으니 하산은 금방 하겠지 싶었다.
게다가 내려가는 길은 또 얼마나 예쁘겠어.
올라온 길과 같은 코스이지만 바라보는 방향이 다르니 또 다른 설악을 눈에 담을 수 있을 것이다.잠시 사자바위에도 들러본다.
여전히 내 눈엔 사자가 아닌 하마 같은 사자바위.쌍룡폭포를 지나 나오는 다리 뒷편의 풍경이 눈을 사로잡는다.
3시가 다되어가자 해의 각도가 달라져서 빛의 색이 달라졌다.
중천에서 조금씩 내려오는 태양은 조금 더 노랗고 붉은 기를 담아내고 황혼녁에는 붉게 타오른다.
그래서인지 하산길에 본 설악산을 오를 때 본 것보다 더 따스한 느낌이었다.깔딱고개를 지나고 청룡폭포를 지나자 올라갈때와 마찬가지로 하산길도 매우 평이해졌다.
조금은 빠른 걸음으로 가을의 설악 속을 걸어 나갔다.태양의 고도는 낮아졌고, 눈앞에 펼쳐진 설악은 올라갈때와는 사뭇 다른 색으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태양이 점점 낮아질 수록 노랗고 빨간 단풍이 더욱 색을 짙게 빛냈다.
색이란 것이 어차피 빛이 만들어낸 조화, 빛의 재주 아니겠는가.
빛의 각도와 빛의 색감에 따라 단풍의 색이 찬란하게 변했다.높은 산봉우리 넘어로 꼴깍~하고 넘어가려하는 태양이 만들어난 영시암 뒤로 보이는 풍경은 정말 예쁘고 귀엽게 다듬어진 꽃다발 느낌이었다.
저런 조화로움은 자연만이 만들어낼 수 있다.따스한 기운이 더해져 가는 단풍숲을 걸었는데, 색온도는 올라갔지만 기온은 빠르게 낮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올라갈 때는 시간의 흐름도 거리도 잘 안 느껴지던 길이 내려올 때는 너무나도 길었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었다.
이 정도면 끝나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 워치를 보니 19km다. 아직 5km 이상이 더 남았다니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나에게 늘 하산은 수월했고, 하산할 때의 나는 빨랐다.
애써 그런 것이 아니고 그냥 걷다 보면 그리되었다.
그런데 오늘의 하산은 등산보다 고되었고 속도도 나지 않았다.
빠르게 걷고 있는 것 같은데도 아직 한참이나 남아있던 목적지, 백담사.백담탐방지원센터에서 산행을 마무리 하고 살짝 뒤쳐진 심뀨를 기다렸다.
혹시나 많이 늦어진다면 셔틀버스에 눈물로 호소를 하던지 무슨 방법이라도 생각해봐야겠다 싶어 먼저 내려왔는데 다행히 심뀨도 오래지 않아 산행을 마쳤다.
6시 셔틀버스를 타면서 추위와 기쁨에 몸을 떨었다.
버스에 탈 무렵 이미 사위가 어둑했다.
그리고 배가 고팠다.
주차장에서 후딱 정리를 하고 전날 미리 검색해 두었던 식당으로 향했다.
버스에서 내려오는 내내 저녁메뉴로 정한 순댓국만 떠올랐다.
배고픔에 혼미해진 정신에 식당 이름도 가물가물
- 뽀오. 우리 식당 이름이 쑥덕쑥덕 이었지?
- 언니 ㅋㅋㅋ 들쑥날쑥이요!!!
쑥떡같이 귀에 착 들러붙는 이름을 가진 곳에서 푸짐하고 따스한 저녁을 배불리 먹고 돌아왔다.
오늘 산행은 뭐 하나 빠지는 것 없이 완벽했다.
🐷백담사/인제 맛집🐷✔️ 순살코기와 순대만 넣어주는 순대국밥이 완전 취향저격
✔️야들야들한 수육과 담백한 순대역시 일품
고기와 순대 누린내와 잡내는 이 곳에는 없는 단어이다.
반찬 하나하나 다 맛깔나고 정갈하다.담에 백담사나 인제를 다시 간다면 무조건 처음으로 찾을 집.
그리하여 이렇게 기록해 봄!
🎯봉정암 오르기🎯
✔️ 산행시간 : 8시간 55분
✔️ 산행거리 : 25km
✔️ 산행코스 : 백담사-백담탐방지원센터-쌍룡폭포-봉정암(원점회귀)
✔️ 백담사 주차장 주차비 8천 원(1일), 백담사주차장-백담사 셔틀버스 2,500원.
✔️ 성수기인 가을 셔틀버스 운행시간은 7시부터 19시. 시즌마다 다르니 사전에 꼭 확인하세요!!
✔️ 또 가야지 봉정암❤300x250'등산일기 Hiker_deer'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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