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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산일기] 지리산 성중종주
    등산일기 Hiker_deer 2023. 10. 22.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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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 10. 21.


    무릇 종주라 함은
    하나의 산을 오롯이 내 두 발로 걸으며 느끼고 즐기는 것이 아니겠는가.
    처음 내가 했던 종주들은 그러했다.
    개별차량으로 가서 느긋하게 시간제한 없이 산을 누비고 끝나고 나서는 현지에서 1박을 하고 왔으니
    사진도 왕창 찍고 쉬고 싶을 때는 마음껏 쉬었다.
    그러다가 버스를 타고 종주를 다니게 되니 이것은 이런 고행이 없었다.

    오롯이 내 두 발로 걷긴 하지만
    느끼고 즐길 시간이 없다.
    그냥 무조건 빨리빨리 걸어야 한다.
    이 산 곳곳에 내 발도장을 남기는 것이 목표인 것처럼 되어버린 종주.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산에서 오래도록 걸을 수 있다는 매력에 번번이 종주를 하고 할 때마다 다시는 안 하겠다고 후회하지만... 하룻밤만 지나면 또 마음이 몽골몽골 해져 담에는 또 어느 산 갈까 즐거운 고민을 하게 된다.
    이쯤 되면 나는 진짜 산치광이가 맞는 것 같다.

    종주를 여러 번 하다 보니 딱히 준비물을 챙기는 것도 어렵지 않고 긴장도 거의 안 하지만 이번엔 일기예보가 심상치 않아 옷 위주로 잘 챙겨보았다.


    지리산 성중종주 준비물

    1. 음식
    - 출발 전 : 삼각김밥 1개
    - 토끼봉 : 삼각김밥 1개
    - 연하천 대피소 아침 : 맘스터치 싸이버거
    - 세석대피소 점심 : 서브웨이 햄치즈 샌드위치
    - 그 외 에너지바, 약과, 물 0.5l 두 개, 포지타노 레몬캔디 등을 준비해 갔는데 이번에는 사탕조차 먹지 않았다. 물만 실컷 잘 마심. 매번 잔뜩 싸가지만 어쩐지 종주에는 필요 없는 것 같은 행동식🫠
    2. 옷 : 태풍급의 강풍이 예보됐었다.
    - 상의 : 캐필린 데일린 반팔, R1 에어 하프집업, 스쿼미시, 토렌쉘(을 챙기려고 했는데 못 챙겨서 버스에서 입으려던 아디다스 바람막이를 가져갈 수밖에 없었다. 무겁지만... 뭐라도 챙겨가길 잘함), 나노에어 경량패딩
    - 하의 : 피엘라벤 켑 트라우저
    - 몽골에서 온 낙타양말
    - 코오롱 트라이포드 미드
    3. 레키 스틱, 헤드랜턴, 무릎보호대, 손수건, 티슈, 물티슈, 안대(무박 버스 취침용)


    다음매일산악회 안내버스를 처음 이용해 보았다.
    나 스스로 신청하고 입금해서 타는 안내버스는 처음!
    이번 종주를 기획한 모임의 분들이 대부분 무박종주가 아닌 대피소에서 1박을 하는 종주를 하는 분들이고 무박종주는 처음이거나 오랜만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런지 타임라인을 짜는 것이 도저히 내가 따라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혼자 떨어질 것 같은 불안이 가득 찼다(장터목 대피소 12시 도착인 타임라인은 내 몸뚱이가 못 따라간다 ㅠㅠ)
    그리하여 혼자 할까 하다가 나와 함께 걸을 산동무로 뽀오를 섭외했다.

    블로그에 함산 하고 싶다는 댓글을 달아주어 산동무가 된 뽀오는 동네 뒷산이나 서울산만 주로 다닌 숨은 능력자로 지리산을 처음 가보는데 무려 종주로 가게 되었다.

    지리산 종주버스는 다른 무박산행 버스와는 다르게 이른 10시에 출발한다.
    그래서 퇴근하고 시간이 빠듯했다.
    꼭 챙기려던 토렌쉘을 챙기지 못해, 오가는 버스 안에서 입으려던-예쁘려고만 입는 아디다스 바람막이를 산에 가져가야 했다.(무거운 데다 방수도 거의 안 되는 녀석 ㅠㅠ)

    그래도 이거라도 입고 온 게 어디냐며 셀프 위로를 한껏 건네고 버스를 탔다.
    사당역 10번 출구 앞을 닌자처럼 서성이던 등산장비를 잔뜩 이고 진 사람들은 모두 지리산 안내버스를 탈 사람들이었다.

    오늘 다음 매일산악회에서 배정된 지리산 종주버스만 3대.
    맨바닥에서는 못 자도 약간의 쿠션만 있다면 꿀잠 자는 내게 무박버스는 꽤나 편안한 취침처이다.
    오늘도 버스에 타자마자 안대를 하고 눈을 감았는데 정신 차려보니 중간쉼터 휴게소.
    잠시 나갔다 오는데 기온이 심상찮다.
    이... 이 정도로 추울 시즌은 아니잖아요

    다시 버스에 누워 기절.
    오전 2시. 화엄사에서 화대종주 하시는 분들이 내렸다.
    성중보다 무려 12km가 더 긴데 시간은 1시간 반 더 주어진다.
    당신들은 정녕.... 진짜 대단하다는 말 밖에 안 나오던 화대 종주 떠나시던 분들의 뒷모습.


    성삼재 도착.
    2시 반.
    3시에 출발해야라는지라 편의점 옆 공간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있었다.
    나도 그곳에 한자리 잡고 후딱 삼각김밥을 하나 먹었다.

    바람이 거셌다.
    그래도 걷기 시작하면 나아지겠지 라는 생각으로
    캐필린과 R1 에어 위에 아디다스 바막을 입고 출발했다.
    정확시 3시 7분 성삼재 탐방지원센터의 차단막을 통과했다.

    노고단 화장실에 도착한 시간이 3시 42분.
    이곳에서 바람막이를 가방에 넣고 스쿼미시를 꺼내 입었다.
    세석을 지나 우박과 비가 휘몰아치기 전까지는 이 복장으로 운행했다.

    노고단 대피소 하늘에 별이 쏟아질 듯 반짝였다.
    꽤 유명한 별자리인듯한 별무리들이 보였지만 나는 별맹이라 그런 것은 모른다오.

    오늘 성중 멤버는 7명.
    노고단까지 함께 걷고 여기서부터는 각자의 속도로 가기로 했다.
    다들 속도가 너무 달라 한번에 이동하기는 무리였다.
    중간에 속도가 엄청 느려지는 나는 뽀오와 함께 먼저 출발했다.

    노고단 고개를 오전 4시에 지나간다.
    지리산이 처음인 뽀오에게 초반 완만한 길은 빨리 가야 한다고 이끌었다.
    거침없이 걷던 우리는 하늘이 트이는 곳이 나오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별이 눈이 아리게 반짝였다.

    피아골 삼거리를 지난 시간 오전 4시 50분.
    다음 종주를 위해 이번에는 시간 체크를 확실히 해보기로 했다.

    다음 매일산악회 대장님이 나누어준 시간표를 소중히 간직하며 가는 중간중간 체크를 했다.

    사람들이 왕창 모여있던 임걸령샘.
    화대종주 인증지라고 한다.

    오전 4시 58분에 지났다.
    오늘 인증을 위한 사진은 하나도 찍지 않기로 했다.
    이미 지리산 종주 세 번째라 대부분의 인증은 끝낸상태.
    인증에 연연하지 않는 뽀오는 사진도 거의 찍지 않았다.

    5시 45분 삼도봉 도착.

    저 멀리 동이 터오고 있다.
    도시의 불빛과 산너머로 붉게 타오르는 하늘이 멋졌다.
    바람이 꽤 세서 그런지 하늘이 깨끗했다.
    맑은 날이 될 것 같아.

    그림자 연극 같은 동틀 무렵

    일출이 멋지겠다.
    하지만 보지 못할 것 같아.
    일출이 중헌게 아녀~

    화개재 도착. 6시 5분.
    대장님 시간표로 3시간 10분 안에 도착했어야 할 화개재.
    우리도 출발 3시간 만에 화개재에 도착.
    완주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생겼다.

    화개재에서부터 급경사인 내리막이 쭉 이어진다.
    어둠 속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과 내리막이 마치 지옥으로 가는 길 같았다.
    대체 이 내리막은 언제 끝나.
    도대체 다시 올라가야 하는 고도가 얼마나 될까.
    지옥 같은 내리막을 빠르게 걸었다.
    산을 타며 내리막길의 쉼이 달갑지 않다면 당신은 이미 산쟁이!!

    토끼봉 도착 6시 41분.
    이전 종주에서는 늘 토끼봉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하지만 오늘은 그냥 지나치기로 했는데.. 내 배는 정말 습관에 너무나 익숙해진 걸까.
    토끼봉을 지나자 배고픔이 심하게 밀려왔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삼각김밥 하나를 더 먹었다.

    휴우.
    이제 연하천 대피소까지 갈 수 있겠어.
    출발부터 강하게 불어오던 바람은 점점 거세졌다.
    하지만 몸이 흔들릴 정도는 아니었던지라 산을 오르는데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땀이 하나도 나지 않았고 덥지 않으니 물이 당기지도 않았다.
    뽀오와 둘이 정말 등산하기 좋은 날씨라고 만족스럽기 웃으며 걸었다.
    캐필린과 R1에어, 스쿼미시는 정말 딱 좋은 착장이었다.

    한 번씩 바람이 세게 불어올 때는 장갑 낀 손이 시릴 정도였지만 계속 움직이니 또 열이 올랐다.

    7시 45분.
    연하천 대피소에 도착했다.
    대장님 타임라인보다 살짝 늦어지기 시작한다.
    그래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14시간 30분이고 대장님 시간표는 11시간 50분 기준이니까 아직까지는 괜찮은 수준이라고 생각해 본다.

    연하천대피소에서 모임 일행 중 두 분을 만나서 아침 식사를 함께했다.

    산에서 하는 식사로 햄버거가 꽤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원래 햄버거를 잘 안 먹는지라 늘 흘려들었다.
    하지만 이번엔 종주니까 어쩐지 든든한 식사가 필요하겠다 싶어 맘스터치 싸이버거를 준비했다.
    (작년에 김밥 두줄을 싸가 포만감 넘치게 잘 먹었지만 날이 추워질 무렵부터는 김밥의 밥이 아주 딱딱하게 굳어 식감은 영 별로였다는 기억도 메뉴 변경에 한 몫 했다)
    차게 식었는데도 짭조름한 치킨이 입맛을 돋웠다.
    세상에!! 앞으로 산도시락으로 싸이버거 완전 찜콩!!!
    맛있게 식사를 마치고 다시 산행에 나설 준비를 했다.

    우리가 먼저 출발해도 중요 지점에서는 비슷한 속도로 만나기를 여러 번. 확실히 남자분들은 속도가 빨랐다.
    그래서 연하천에서도 우리가 먼저 출발하고 벽소령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하지만 연하천을 끝으로 모임분들은 만나지 못했다.
    몸이 안 좋은 분이 두 분 계셔서 모두 함께 하산을 결정했다고 나중에 전해 들었다. 모임규정상 단톡방을 따로 개설할 수 없어 서로 연락하는 것이 어려웠다.
    다들 내려와서야 서로의 소식을 알게 되었다며...;;

    작년 성백종주를 딱 같은 날 했었다.
    10월 20일.
    그때는 가는 걸음걸음 알록달록한 잎을 가득 단 나무들이 반겨주었는데 요 며칠 비가 오고 강풍이 불어 그런지 바닥에는 낙엽이 가득했다.

    앙상한 나무들이 즐비했지만 그래도 바닥에 떨어진 예쁜 색의 낙엽과 따사로운 가을햇살이 운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었다.

    해가 뜨고 처음으로 앞이 뻥 뚫리는 풍경이 나타났다.
    단풍이 다 떨어졌나 싶었는데 멀리 보이는 산에는 아직 단풍이 한창이었다.

    노랗고 붉은 단풍이 발아래 가득 펼쳐졌다.

    늘 사진을 찍던 커다란 바위사이도 오늘은 사진 없이 지나갔다.
    여기서 찍은 사진이 이미 여러 개.
    크고 예쁜 산에서 많은 사진을 남길 수 있었던 지난 산행들에, 그리고 그 산행을 이끌어준 대장님께는 이런 점에서는 늘 감사하는 마음이다.

    매번 지나칠때마다 유혹하던 바위사이로 보이던 어여쁜 풍경

    그리고 또 발견한 사진 명소!
    단풍은 아름답고 끝도 없이 펼쳐진 산세는 웅장하다.
    그리고 이 엄청난 풍경들 위에 내가 있음에, 나의 걸음이 매우 보람찼음을!!

    성삼재에서 출발하는 지리산 종주는 벽소령 대피소까지는 크게 어려운 구간 없이 속도를 낼 수 있다.

    벽소령 대피소 도착시간 9시 40분.
    연하천 대피소에서 30분을 보내고 8시 15분에 출발했고 1시간 25분 만에 도착했다.
    대장님이 제시한 시간은 80분. 얼추 맞췄다.

    뽀오는 물을 500ml만 가져와서 대피소 들를 때마다 물을 보충했다.
    오늘 같은 날씨의 지리산 종주라면 500ml 한통으로도 종주가 충분하다.
    벽소령에서는 물보충만 하고 바로 출발했다.

    벽소령을 나서는 데크길을 나는 참 좋아하지.

    오늘도 벽소령씨에게 인생샷에 버금가는 예쁜 사진을 남겨주고 벽소령씨에게 안녕을 고한다.

    벽소령씨 인생샷

    벽소령을 떠나 초반의 완만한 길을 매우 빠르게 걸었다.
    성삼재에는 버스도 많고 사람도 많았는데 어느새 우리 둘만 길을 걷고 있다.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들의 걸음속도도 엄청나다.
    큰 산이 처음인 뽀오는
    - 와아 다들 속도가 엄청 빨라요. 진짜 대단한 사람들만 종주를 하는 건가 봐요.
    라던 뽀오. 이 대단한 산을 처음 오면서 종주로 온 님이 제일 대단한 건 아시는지...

    벽소령에서 세석까지가 참.. 길고 지루하고 힘들다.
    가도 가도 줄지 않는 킬로수.
    그리고 길도 이전과는 다르게 험해진다.
    커다란 바위들이 눈앞에 나타나 기어오르고 타고 내려와야 한다.

    뽀오는 오르막은 엄청 잘 가는데 산경험이 많지 않아 그런지 내리막이 취약하다. 살면서 숨차본 기억이 거의 없단다.
    반면 호흡기 취약자인 나는 산을 타면 늘 호흡이 힘들다. 그래서 오르막은 느리게 내리막은 좀 빠르게 간다.
    그래서 우리 둘은 속도가 딱 맞았다.

    오르막에서는 뽀오가 앞서가고 내리막에서는 내가 따라잡고
    내리막에서 내가 앞서가면 오르막에서 뽀오가 나에게 왔다.

    그렇게 합이 딱 맞는 속도로 우리는 끝이 없을 것 같은 길을 묵묵히 걸었다.
    이 친구가 등산을 많이 해 내리막까지 익숙해진다면.. 난 아마 속도를 못 맞춰 함께 산에 가기는 힘들지 않을까..
    긁지 않은 종주꿈나무 같았던 뽀오의 위력!

    끝나지 않을 것 같이 지루하면서도 사방이 뚫린 곳이 나오면 지금까지의 고행이 싹 잊힐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이 맛에 종주하지!!!
    기나긴 길을 걸어야지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
    이런 애들이 산의 초입에 있으면 종주할 필요가 없지~~ 싶지만... 과연 그렇다고 내가 종주를 안 할까?

    가는 길을 가득 채운 앙상한 나뭇가지들
    가을이 이렇게 빨리 끝날 줄이야.

    세석으로 가는 지루하고 지루한 길에서
    "지리산의 봉우리들을 찾아보세요"
    라는 표지가 있는 곳이 있는데 여기가 성삼재에서 세석까지의 코스에서 가장 예쁜 포토스폿이라고 생각한다.
    알록달록 단풍에 꺄아~ 환호성을 지르며 바쁘게 움직이던 몸을 잠시 멈추었다.

    사진도 한 장씩 찍어본다.

    - 종주 따위 꼭 완주해야 해? 못하면 다음에 오지 뭐~
    라는 생각이 이즈음에서는 늘 들었던 것 같다.
    오늘도 여지없이!!
    뽀오와 이런 얘기를 나누며 깔깔 웃었다.
    - 못하면 마는 거지 뭐~~~~🤣🤣🤣

    또다시 나무에 둘러싸인 길을 묵묵히 걷다가 드디어 세석대피소가 700미터 남았다는 곳에서 시간을 확인했다.
    약간 빠듯한 듯했지만 우린 대피소에서 오랜 시간을 보낼 생각이 아니어서 괜찮았다.

    세석대피소 도착시간 11시 59분.
    20분 동안 간단히 점심을 먹고 정비를 했다.
    먼저 화장실을 다녀온 뽀오가 밖에 비가 온단다.
    -롸?!!!!

    난 오늘 토렌쉘을 챙기지 못해 방수가 되는 옷이 없었다 ㅠㅠ
    그래도 안개가 짙어지며 안개비가 흩날리는 수준이니 우선 걷기로 했다.
    장터목에 도착해서도 궂은 날씨가 계속되면 미련 없이 하산하기로 했다.

    12시23분 출발!

    3.4km.
    장터목으로 향한다.
    작년 성백종주 때, 세석에 도착한 것이 12시 10분이었다.
    시간을 정확히 기억하는 게, 원래 Y 대장님이 짠 타임라인이 12시였고 우리가 10분을 초과해 다들 마음이 조급해졌었다.
    그래서 뇌리에 박힌 숫자.
    그리고 세석을 출발해 장터목까지 숨도 못 돌리고 빠르게 가서 겨우 1시 50분에 장터목이 도착했었다.

    그래서 오늘도 엄청 빠르게 가야 할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사랑하는 세석평전은 세기말 종말 같은 모습.
    사진 못 찍어 아쉽다는 미련이 1도 남지 않을 풍경이었다.

    그 아름다운 연하선경도 자취를 감춘 수준.
    세석을 출발할 때는 그저 시야 방해 수준으로 구름과 안개가 몰려들더니 점점 바람이 거세지고 빗방울이 흩날렸다.

    비에 이어 우박이 싸대기를 후려치듯 쏟아졌다.
    우린 장터목까지만 가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엄청 느리게 걸으며 멤버들에게 전화도 하고 카톡도 보냈다.
    그렇게 천천히 갔음에도 1시 50분, 장터목에 도착했다.
    작년엔 엄청 정신없이 빠르게 달렸던 길 같은데 오늘은 이렇게 느리게 갔음에도 장터목 데드라인인 2시 이전에 도착했다.

    아마도 작년엔 세석에서 물을 끓이고 라면을 먹으며 시간을 오래 보냈던 것 같다.

    장터목 대피소에서 화대종주를 하는 지인들을 만났다.
    응원이 필요하다고 해서 으쌰으쌰 응원을 건네고
    먹을게 부족하다고 하여 남은 행동식을 모두 털어주었다.
    천왕봉 올라가도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한다.
    이런 날 산행하는 것은 극기훈련이나 마찬가지이니 이제 그만하고 같이 내려가자고 했으나 다시는 안 할 것이니 마무리를 짓겠다며 올라가더라.
    우리도 같이 갈까? 했더니 진짜 이런 날 올라가는 건 아니라며 우리에게는 하산할 것을 권했다.

    -그래!! 우린 얼른 내려가서 남는 시간에 거북식당에서 밥먹고 샤워하고 놀쟈!!!!
    라며 수다를 나누는데 그들이 올라가고 얼마 있지 않아 갑자기 시야가 밝아졌다.
    -어라??? 이게 뭐야!!
    했더니 대피소에 앉아있던 산객분들이
    -2시에 걷히고 해가 난다고 했어요
    란다.
    그래서 우리는 순간 눈을 마주쳤고
    -올라가자!
    결심했다.

    오후 2시 4분 천왕봉으로 향하는 계단이 발을 들였다.
    천왕봉 가는 길에 햇빛이 찬란하게 쏟아졌다
    약 2분간!!
    그러더니 다시 한 치 앞도 못 볼 정도로 구름이 몰려왔다.
    망했다.
    게다가 너무너무 힘들었다.
    하아... 정말 천왕봉 가는 길은 늘 1보 3배의 속도이다.
    빗방울이 다시 떨어지고 바람도 세지고 보이는 것이 하나도 없어 다시 내려가고 싶었지만 빠름 빠름 뽀오는 이미 사라졌다 ㅠㅠ
    그래서 선택권이 없었다.
    무조건 올라가야 했다.

    비가 점점 거세지더니 덩어리가 내 뺨을 쳤다.
    우박이야??
    하고 보니 눈이다.
    세상에.... 나 첫눈 맞는다.

    바닥에 눈이 쌓였다.
    바위가 다 젖어 미끄러웠다.
    안전 지지대에 몸을 매달다시피 해서 몸을 끌고 올라야 했다.
    바람이 점점 거세져서 지지대를 잡아도 몸이 휘청거렸다.

    상고대 친척쯤 될법한 애들도 보였다.
    (겨울에 미리가서 극기훈련 하고 온 줄)
    실은 난 사진을 찍지 못했다.
    모든 장기와 손이 다 발쪽으로가서 힘을 보태느라 사진 찍을 여력이 없었는데 함께 오르던 화대종주 지인들에게 사진을 받았다(Thanks a lot!)

    기듯이 돌을 타고 올라 천왕봉 정상석이 있는 곳으로 머리를 삐죽이 먼저 내밀었는데 바람이 머리를 후려친다.
    몸을 다 끌어올리니 강한 돌풍에 몸이 춤을 추듯 휘청거린다.

    후딱 사진만 찍고 내려가자고 폰을 뽀오에게 건넸다.
    건네는 나도 찍는 뽀오도 이것이 동영상인지 몰랐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바람에 날아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을 안고 다시 중산리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2시 58분.

    늘 백무동으로 하산을 해서 중산리 하산길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천왕봉에서 로터리대피소까지 50분, 대피소에서 중산리 하산 완료지점까지 70분. 대장님 타임라인이었다.
    버스 출발시간이 5시 반이니까 우리에게 2시간 반의 시간이 있었다.
    그렇지만 하산길에 대한 정보가 없으니 무조건 빨리 걷기로 했다.
    세상 신기하게 천왕봉 봉우리를 기점으로 중산리 하산길엔 비조차 오지 않았다.

    게다가 하늘은 맑고 청명했다.
    산 날씨는 정말 신비롭고 예측불가다.

    봉우리를 하나 넘으니 이렇게 평온할 일인가!!!
    젖은 길이 없어 하산하면서 덜 위험했다.
    살짝 약 오르긴 했지만 그래도 하산에 큰 도움이 되었고 급하게 하산하면서도 눈은 호강했으니 되었다.

    우리는 중산리 하산길을 거의 구르듯 내려왔다.
    길이 조금이라도 완만하거나 계단이 나오면 무조건 달렸다.
    그렇게 로터리 대피소에 3시 38분에 도착.
    갈림길에서 고민하다가 매일 대장님께 전화를 했다.
    칼바위 쪽으로 하산하라면서 지금 로터리면 시간이 너무 부족한데....
    라며 통화를 종료했다.
    마음이 급해졌다.
    더 빨리 더 급하게 하산을 재촉했다.

    그리고 5시.
    길고 길었던 하산을 완료했다.
    천왕봉에서 중산리 하산, 2시간이면 가능하다는 정보를 축적하며 성중종주를 끝냈다.

    안내버스는 기다리지 않는다
    가 산으른들에게 들어왔던 말이었는데 오늘 보니 안내버스도 10분은 기다려주더라!
    띠용~

    그렇게 하산을 완료하고 버스가 주차된 거북식당 뒤편 주차장으로 가는데.... 오르막이다!!


    오늘 하루 중 가장 힘들었던 순간.
    버스까지 가는 한걸음 한걸음이 천근만근. 거북이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느리게 무겁게 발을 뗐다.
    마지막 복병이 주차장에 도사리고 있을 줄이야!

    버스 출발시간을 30분이나 남기고 성중종주를 마쳤다.
    우리 오늘 정말 멋졌어!
    고생했다!!
    종주는 역시 마무리하고 나면 엄청난 보람이가 찾아온다.
    이 맛에 종주하나?
    종주를 끊을 수 없는 여러 가지 맛 중에 하나의 맛이겠지.


    2022년 성백종주 타임라인

    삼도봉 05:45
    연하천 08:00
    벽소령 09:45
    세석 12:10
    장터목 13:50
    천왕봉 15:00


    2023년 성중종주 타임라인

    노고단고개 4시
    삼도봉 05:45
    화개재 06:05
    토끼봉 06:41
    연하천대피소 07:45
    벽소령대피소 09:42
    세석대피소 11:59
    장터목대피소 13:53
    천왕봉 14:58


    성백종주와 성중종주

    장터목대피소에서 천왕봉에 갔다가 다시 내려와서 백무동으로 하산을 하는 성백종주.
    동서울터미널 가는 버스 막차가 18시까지 있다.
    천왕봉에서 바로 중산리로 하산하는 성중종주. 보통 안내산악회 버스를 이용하고 17:30분이 버스 출발시각이다.

    하산길의 난이도는 비슷하다.
    둘 다 악명 높다 ㅋ
    천왕봉까지 가는 길이 쭉 오르막이 아니고 오르락내리락하기 때문에 천왕봉 갔다가 장터목으로 돌아오는 길이 엄청 버겁다.
    개인적으로!
    성중종주가 더 낫다.



    +) 원래 수요일 휴가라 설악산에 가기로 했었다.
    오색에서 올라가 대청봉 찍고 봉정암을 지나 백담사로 내려오자고.
    마지막 단풍을 즐겨보자고!
    하지만 구를 듯 구를 듯 하산을 하며 당분간 산에 가지 말자고 약속을 했다.
    그런데 하루 자고 일어나니 몸상태가 가뿐하다. 기억이 또 엄청 미화되었다.
    역시 산은 좋은 친구였다.
    그래서 우린 봉정암에 가기로 했다.



    ++)
    실은 오늘의 극기훈련은 미리 예고된 일이었다.
    사전에 윈디 예보를 확인하고 바람이 너무 세서 진짜 갈 거냐고 멤버들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눈비 안 오면 바람정도는 괜찮다며 다들 가겠다고 하여 취소 직전까지 갔던 나도 강행했던 건데..
    눈도 오고 비도 왔지 뭐야.

    궂은 날씨의 산행은 극기훈련이나 다름없다.
    오늘 극기훈련 한 번 빡세게 했다.
    그것도 강풍에 눈까지 맞으며, 미리 혹한기 훈련 한건가.
    미래에서 왔습니다. 극기훈련 하고 왔어요.

    윈디 예보는 과학이라는 생각으로 앞으로도
    "좋은 날씨에만 산행하자"
    라는 나의 신념을 지키며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화뇌동 휩쓸리지 않겠다!!

    🎯 지리산 성중종주
    ✔️ 산행거리 : 36.63km
    ✔️ 산행시간 : 13시간 54분
    ✔️ 산행코스 : 성삼자-중산리(나열 생략)
    ✔️ 교통 : 다음매일산악회
    ✔️날씨 궂은날의 산행은 그저 극기훈련일 뿐!! 그래도 종주 시간의 반정도는 파란 하늘을 실컷 보았으니 꿀 좀 빨다가 흙바닥을 구른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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