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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일기] 금성에서 온 소백산등산일기 Hiker_deer 2025. 4. 26. 20:27반응형
궁금해서 세 봤다.
2021년 여름 첫 소백산을 방문하며 사랑에 빠진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연서로 대신했었다.
https://jinnia.tistory.com/m/636[산린이의 등산일기] 소백산, 너에게 보내는 연서戀書(210816)
너무 벅차서.. 첫 문장을 무엇으로 시작해야할까. 지리산 만큼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온 산이었다. 지리산은 우연히 보게된 정상석의 문구에 심장이 쿵 떨어지며 마음속에 품게 되었고 소백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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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번이 다섯 번째.
갈 때마다 좋았던, 단어를 말하기보다 외마디 감탄사가 방언처럼 터지는 시간이 더 많았던 소백산.
소백산을 엄청 좋아해 소백산을 주로 다니던 블로거분이 있었는데 그분이 종종 죽어종주를 하곤 했었다.
맘에 드는 이름에 꽂히면 끝끝내 그 이름의 매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나는 죽어종주에 꽂혔다.
죽어종주라니!!!!!
죽도록 사랑하는 소백산을 가기에 이보다 더 적합한 이름이 어딨어!
죽령에서 어의곡까지, 죽어종주.
그러다 알레버스에서 무박으로 떠나는 소백산행을 발견한다.
죽령에서 어의곡이 아닌 천동계곡으로 내려가는 코스였다.
거리도 난이도도 크게 다를 것 없지만 못내 아쉽게 죽어종주가 아니네.
그래도, 소백산을 오래 걸을 수 있으니 무조건 가는 거닷!사당역에 만개한 겹벚꽃 죽령분소에 도착한 알레버스는 산행이 가능해지는 시간까지 불을 켜지 않고 쉬게 해 주었다. 세상 맘에 드는 시스템.
지리산 종주할 때도 국립공원 산행 가능시간은 3시였는데... 아직 동절기 타임이 적용되는 건지 4시부터 산행이 가능하다고 했다.
덕분에 모자란 잠을 더 보충했고 3시 반, 버스에 불이 켜졌다.
어차피 산행은 4시부터라는데 성격 급한 산객들은 불이 켜지자마자 버스를 박차고 나갔다.
나는 나의 알레버스 루틴대로 여유 있게 선크림을 바르고 모자를 쓰고 헤드랜턴을 장착하고 신발끈을 힘껏 당겨 묶었다.
그리고 역시나 버스에서 제일 마지막에 내렸다.
이웃집 임뀨도 나의 느림에 동참.하늘에 별이 가득하다
반짝반짝 빛난다.
노출을 10초로 늘려서 숨을 멈추고 찍어본다.
하지만 실물 못 담음 주의!
별도 좋고, 임도라 발밑 신경 안 쓰고 편하게 걷는 것도 좋은데 너어어어어어무 춥다.
진짜 너무 춥다.
얇은 크롭브라탑에 반팔셔츠, 스쿼미시, 토렌쉘을 입고 나왔다가 칼바람에 기겁을 했다.
설마 입을 일이 있겠어 하며 챙겨 온 몽벨 경량패딩을 껴입고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것도 잠시... 너무 춥다.
그래도 별수 있나. 몸에 열이 오르길 기대하며 쉬지 않고 걷는다.
죽령부터 제2연화봉대피소까지는 임도다그리고 이 구간이 오늘의 산행 중 가장 어려운 구간이었다. 그나마 객관적 난이도로 평가하면 약간어려움이라고..
알레버스가 약간 어렵다고 했는데 나는 왜 이리 힘들어.
격한 난이도는 올해 산행에서 지겹게 했는데, 그렇게 급경사도 아닌 임도 5km가 어찌나 힘든지...
느릿느릿 올라갔다.올라가다 힘들었나 보지?
임뀨가 가리킨 혜성을 본다.
-우와!!! 저거 진짜야?? 저거 누가 들고 가면 어떡해?
-언니, 못 들고 가게 붙여놨겠죠. 그런데 혜성이 원래 이렇게 속이 비었나 봐요?
똑똑 두드리니 텅 빈 소리.
덤 앤 더머 둘이 진지하게 지구에 떨어진 혜성의 조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진짜인 줄 알았는데 길을 가다 보니 화성도 있고 토성도 있더라에잇!!! 예에...ㅁ..ㅂ..ㅕ...ㅇ!!
우롱당한 것 같지만, 혜성에 대해 논하느라 잠시 숨을 돌렸다그러다 동이 터오는 하늘을 본다.
우와... 해가 뜨나 봐. 해 뜨면 좀 따뜻해지겠지? 저기 달도 있다!!!
별생각 없이 걷던 중,
어???? 동녘에 왜 달이 있어? 이 시간에??
다시 돌아가 확인할 엄두는 안 나고 올라가다 또 조망이 보이는 곳이 있으면 다시 확인하기로 한다.
임뀨가 별자리 앱을 꺼낸다.언니!! 저거 금성이래요!!
금성을 보았다.
새벽에 뜨는 별이라 샛별이라고 불리는 금성.
해가 뜰 무렵 동쪽에서 떠서 해가 질 무렵 서쪽에서 발견된다.
지구과학 시간에 배웠던 내용들이 불쑥불쑥 떠올랐다.
나중에 내려와 조금 더 찾아보니 금성은 초승달 모양으로 발견되고 초승달 모양인 이유는 지구의 그림자 때문이란다.
둘이 금성을 보고 신났다.
오늘 산에 온 보람은 금성으로 끝났다고.
금성이 찾아온 소백산에 있었으니 오늘 하루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차고 넘치는 행복게이지가 이미 달성되었다고.드디어 제2 연화봉 대피소에 도착했다.
오늘의 일출시각은 5시 40분경.
일출 전에 도착했으나 너무너무너무너무 추워서 밖에서 일출을 기다릴 엄두가 안 났다.대피소로 후다닥 들어간다.
제2연화봉대피소는 대피소계의 호텔이라더니 진짜 시설이 좋아 보였다.
얼른 실내공간으로 들어간다.
부지런히 일찌감치 출발했던 알레버스 승객들을 다 만난다.
두 팀은 이미 거나하게 고기를 굽고 있고 다른 산객들도 아침 식사 중이다.
우리도 고기팀에서 좀 멀찍이 떨어져 아침 요기를 한다.
실내에 가득한 고기냄새가 너무 싫다 ㅠㅠ
동쪽으로 난 창을 마주 보고 식사를 하던 중 해가 뾰롱! 하고 튀어나온다.
추위를 금세 잊고 밖으로 뛰어나간다.
일출 그까이꺼 이 정도 봤으면 됐지!
라고 허세 부려봤자다.
일출이 시작되면 앞뒤 잴 거 없이 집중!30여 초.. 사진을 찍다가 후다닥 뒤돌아 다시 대피소로 들어온다.
온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춥다.
이제는 그 추위가 잊히지 않는다.
나갈 엄두가 안 난다.
30분을 대피소에서 아침을 먹고 꼼지락꼼지락 망설이다가 출발한다.
어차피 따뜻해지긴 틀렸어ㅠㅜ6시. 제2연화봉대피소에서 출발.
아스라이 보이는 산맥이 너무 멋지다.
어쩌다 그 위에 떠있어? 싶은 백두대간 표지석을 지나
여전히 편안하게 깔린 임도를 따라 걷는다.
제2연화봉대피소에는 소백산강우레이더관측소가 있고 조금 더 가면 소백산천문대가 있어서 임도를 잘 조성해 둔 것 같다.
임도, 편하고 좋지. 땅만 보고 걷지 않아도 넘어질 염려 안 해도 되구.
그래도 산쟁이들은 임도를 이렇게 오래 걷다 보면...쫌 그래!!
소백산천문대까지 2시간 40여분을 임도를 걸었다.
그리고 천문대를 지나면 비로소 오솔길이 나오며 조금씩 산으로 진입할 준비를 하는 느낌이다.
천문대 근처의 화장실에 한번 들렀다가 산행을 계속한다.
푸세식. 냄새 심함 주의!연화봉 근처에 가서 뒤돌아보니 벌써 천문대와 대피소가 저 멀리 보인다.
살짝 올라갔다 다시 내려와야 하지만 어차피 오늘 시간이 겁나 여유 있을 테니 연화봉을 찍고 가기로 한다.
해가 다 뜬 것 같지만 추위는 여전하다.
오늘 패딩 벗기는 틀렸나 봐.
아까 대피소 나오면서부터는 장갑도 꼈다.
반장갑, 긴 장갑 두 가지를 살뜰하게 챙긴 나샛기. 아주 칭찬해!!!아주 오래도록 임도를 걸었는데 드디어 예쁜 길이 나타났다.
아침 햇살을 잔뜩 받은 세상의 색이 너무 예쁘다.
아침의 색은 만물이 깨어나는 색이다.4월 말, 패딩까지 껴입고서도 떨어야 하는 날씨임에도 소백산에는 야생화들이 꿋꿋하게 피었다.
나무는 여전히 헐벗었어도 풀이 자라고 꽃이 피었다
노란 야생화가 지천에 피어 꽃 카펫이 깔린 것 같은 길을 걷는다.
원래 이 계절에 피기 시작했어야 하는 철쭉이 꽃망울 그대로 얼어있거나 아직 피지 못했다. 군데군데 피어있는 꽃이 더욱 당차 보인다.
소백산의 능선이 쫙 펼쳐진다.
유하고 부드러운 소백산의 능선.
우리나라 대부분의 산들이 유려한 산맥을 자랑하는데 그 산맥들이 전체적으로 둥글둥글한 느낌이다.핫초코 위에 띄운 마시멜로 같은 느낌.
하지만 설악산 만은 뾰족뾰족해서 늘 생경하고 신기하다.
결론적으로는 둘 다 좋다.
금성에서 온 소백산, 화성에서 온 설악산.
이렇게나 다르니 둘 다 얼마나 좋게요!저 능선의 끝을 지나 한 번 더 능선이 나오고 그 끝이 비로봉이다.
오늘도 요정 나리들이 출몰할 것 같은 길이 지천에 널렸다.
어의곡이나 천동계곡 코스로만 소백산을 오갈 때는 이런 길이 없었는데 죽령에서부터 길게 걷다 보니 지리산 느낌이 나는 길들이 많았다(좋아하는 길이 많았다는 의미이다)연하선경 같기도 하고 덕유평전 같기도 한 소백산의 능선, 너~무 좋다!!
긴 능선을 걷고 나면 잠시 숲 속의 오솔길이 나오고 오솔길을 빠져나오면 또 능선이 나타난다.
신났네 신났어. 저 끝이 비로봉. 마지막 능선길이다.
임뀨에게 사진 찍어달라고 하고 신나게 걸어본다.
응.. 완만한 부분만...그리고 이내 지쳤다.
후...우...후....우...
큰 호흡을 천천히 들이쉬고 내쉬며 한 걸음씩 오른다.
칼바람이 매섭다.
소백산 똥바람 어디 가겠냐며.
똥바람 소백선생.
호가 똥바람 같잖아.너무 추워!!!
바람에 휘청휘청. 비로봉 정상석 옆에 주저앉는다.
시간이 이르다 보니 비로봉에 사람이 없다.
이렇게 사람 없는 정상부는 처음이라 평소에는 엄두도 못 내는 돌무더기 옆에서도 사진을 찍어본다.바람은 정말 날카롭고 매웠지만 덕분에 하늘은 청명하기 그지없다.
이 세상 끝까지 산만 있을 것 같은 풍경을 한참 바라본다.
8시 50분.
대피소에서 아침을 먹은 지 3시간 정도 됐는데, 거센 바람에 시달려서 그런지 임뀨는 배가 고팠고 나는 현기증이 났다.
비로봉에서 한단만 내려와도 바람이 자고 있는 공간이 나온다.
그곳에서 또다시 한 끼를 챙겨본다.
30분 가까이 노닥노닥거리다 하산을 시작하기로 한다.
왔던 길로 다시 내려가 천동계곡 방향으로 꺾어져야 한다.
그런데 바람이 정말 너무 강해졌다.
정신을 못 차리고 바람에 떠밀리듯 비로봉을 떠나야 했다.
천동계곡 쪽으로 방향을 틀기 전까지 바람이 어찌나 거센지 말없이 부랴부랴 걸었다. 얼른 이 길에서 벗어나야 했다.방향을 틀자 바람이 잦아졌고 놀랍게도 봄이 나타났다.
바람이 거센 길에서는 나무가 헐벗은 채 겨울을 입고 있었는데 천동계곡으로의 하산길에는 파릇한 봄잎을 바람에 살랑이고 있는 나무들을 만날 수 있었다.
들꽃들도 냉해를 입어 시들시들한 것이 아니고 팽팽한 꽃잎을 자랑했다.얼마 전 비가 온 영향인지 유랑이 많고 유속이 빠른 계곡물이 우렁찬 소리를 내며 흘러갔다.
계곡물소리와 새소리가 가득한 길이었다.누군가 봄산이 어떻냐고 묻는다면 보여주고 싶은 연두잎을 잔뜩 달고 있는 나무들과 봄의 청량함을 가득 담은 계곡이 흐르던 소백산의 하산길.
그렇게 봄의 싱그러움을 한껏 느끼며 산행을 마쳤다.
더 이상 자연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는 소백산 여우와 기념사진으로 마무리!
그리고 천동계곡 주차장까지 가는 길엔 봄이 더더더더더 화사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봄의 한가운데.봄을 걷고
봄을 보고
봄을 들었다.
새벽부터 덜덜 떨며 걸었던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온화한 봄이 찾아온 다리안 관광지.
하루 종일 패딩을 입고 있다 다리안 관광지에 도착할 즈음 벗을 수 있었다.
한겨울 산행을 해도 옷을 두껍게 입으면 땀이 나기 마련인데 오늘은 정말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지켜낸(;;;;;) 산행이었다.
아까운 내땀, 지켜 ㅋㅋㅋㅋㅋㅋ소백산 정상부에는 대부분의 철쭉나무들이 병아리 눈물만 한 꽃눈을 매달고 쓸쓸히 있더니만 이곳에는 꽃도 만발하였더라.
그리하여 우리는 기나긴 겨울을 건너 봄으로 온 것이더라.
🎯소백산 죽-천 종주🎯
✔️산행거리 : 20.50km
✔️산행시간 : 7시간 40분
✔️산행코스 : 죽령 - 제2연화봉 대피소 - 천문대 - 연화봉 - 제1연화봉 - 천동 삼거리 - 비로봉 - 천동 삼거리 - 천동 쉼터 - 천동 탐방지원센터 - 다리안 관광지
✔️종주 중에 가장 수월하더라??
버스가 도착한 오전 3시 반부터 무려 10시간 반의 시간을 주는 알레버스. 너무 일찍 내려와 당황했잖아.
이름은 다리안 관광지인데 갈 곳이 없잖아.방황하던 우리에게 온 꿀 같은 문자.
원래 2시 출발인데 30분 앞당기겠다는 단비 같은 소식!
이 맛에 알레 타지!덕분에 서울로 일찍 돌아와 등산 후의 소울푸드 즉석떡볶이와 얼음잔에 담긴 추임새 절로 나는 생맥주로 오늘을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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