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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산일기] 2024 영남알프스 은화원정대-가지산&운문산
    등산일기 Hiker_deer 2024. 3. 16.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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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 토요일 밤에 출발하는 버스는 토요일 하루종일 쉬다가 일요일 새벽 산행을 하니 좋았지만.... 월요일 출근부터 한주 내내 피곤하였고
    이번주, 근무를 마치고 타야 하는 금요일밤의 무박버스는 퇴근하는 순간부터 피로곰이 내 어깨에 올라탔다

    퇴근하는데 피곤해
    미리 땡겨쓰는 피곤

    하지만 일요일인 내일 하루종일 집에서 굴러다니며 행복하리라!

    퇴근하고 고양이 깔개로 밑에 깔려주고
    저녁 먹고 씻고
    준비하고
    시간이 영 애매하여 그냥 좀 일찍 나가 버스에서 자야겠다며 10시 반, 집을 나섰는데
    지하철 역에 다 와서야 워치를 놓고 온 것을 깨달았다.
    아...뿔...싸아아아아!!

    겁나 달려 집으로 갔다
    엘베 앞에서 대기 중이던 동생에게 워치를 받아 들고 또 겁나 달려 역으로 갔다.
    나의 달리기는 이렇게나 쓸모가 있다.

    그깟 워치 없으면 어떻냐며 그냥 가라는 동생.
    넌... 기록집착증 환자의 마음을 몰라

    그렇게 또, 술 취한 사람 반, 등산객 반으로 가득한 사당역에서 알레버스를 탔다.

    지난주와 같은 구성인 간식, 하지만 받을 때마다 신이 나는 하이커 사슴씨.

    달리고 달려 휴게소에서 잠시 쉬어가요.
    원래 들머리에 화장실이 있으면 깨지도 않고 잘 자는데 가지산 들머리인 석문터널에 화장실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일기에도 기록이 없다 ㅠㅠ
    검색해 보니 석문터널 들머리엔 화장실이 없단다.
    그래서 둔하디 둔한 잠귀를 애써 예민하게 열어두고 휴게소에서 화장실에 다녀왔다.

    그런데 말입니돠.
    석문터널 들머리에 화장실 있슴돠.
    여자화장실은 무려 세 칸이나 되고요, 문명의 최고봉 비누도 있어요.
    산쟁이라면 이해하는 화장실의 소듕함. 비누의 값어치.

    그리하여 버스에서 하차에 화장실에 들르고 손도 깨끗이 씻고 산에 오를 준비를 했다. 기분이 매우 산뜻하다. 화장실 없었음 세상 찝찝했을 듯.
    화장실 얘기만 몇 문장이냐며 ㅋㅋㅋㅋㅋ

    알레버스가 주는 시간은 우리에게 차고 넘치게 넉넉함을 알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준비했고 몸도 삐걱삐걱 풀어준다.
    마음은 느긋하고 여유로운데 가지산은 그렇지 못하지.
    초반에 비인체공학적 설계로 가학성을 잔뜩 뿜어대는 계단이 끝날 것 같지 않게 이어지는 가지산.
    몸을 아무리 풀어줘도 삐걱거리는 새벽, 무릎을 한껏 들어 올려야만 한 계단 오를 수 있는 가지산의 계단이 매우 버겁긴 하지만 덕분에 초반에 고도를 확 높일 수 있다.

    주 5일 동안의 삶이 괴로워질수록 산에게는 세상 더할 나위 없이 너그러워진다.
    우쭈쭈쭈 우리 가지산찡! 계단으로 더 빨리 만나러 가영. 아이고 좋아요!

    이쯤 되면 산도라이.

    영축산에서 신불산 가는 구간의 빙판길보다는 얼음 두께가 덜 했지만 자비 없이 꽁꽁 얼어버린 내리막 구간에서는 거의 기다시피 이동했다.
    짙은 어둠 속, 헤드랜턴의 여린 불빛에만 의존해 걷던 중 마주친 빙판은 공포 그 자체였다(응, 나 쫄보)
    종종걸음에도 못 미치는 발 질질 끌기 신공으로 조금씩 몸을 움직이며 신생아 기는 속도보다 느리게 기어 얼음코스를 빠져나왔다.

    작년엔 중봉에서 일출을 봤는데...
    오늘 우리 느긋하게 올라가자고 하며 오르는데도 정상에서도 일출을 못 볼 것 같다.
    중봉즈음 갔는데 뒤쪽이 엄청 어수선하다.
    돌아보니 반짝이는 불빛군단이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어둠 속에서 빛을 내며 산을 오르는 산객을 보면 늘 뭉클하다.
    산이 주는 기운에 더해 좋아하는 것을 하고 사는 사람들이 주는 에너지를 왕창 받아가는 기분이다.
    (아.. 물론 운문산이서 힘들어 죽겠다고 짜증 내시는 분 여럿 봤지만 말입니다 ㅋㅋㅋㅋㅋㅋ🤣🤣🤣)

    정상에 거의 다다라 가는데 여전히 어두웠고 천고지를 지나자 기막히게 칼바람이 불어왔다.
    3월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차디찬, 두꺼운 살에 꽁꽁 감춰둔 내 뼈를 찾아 사정없이 할퀴는 듯한 바람이었다.

    얼음이 군데군데 있고 정상에 갈수록 완연한 돌산으로 변하는 가지산인지라 걸음을 빨리하긴 어려웠다.
    버스 안에서의 더위와 일기예보의 숫자만으로 두꺼운 옷을 버스에 두고 내린 뽀오가 고생을 많이 했다.
    역시 산으른들의 말은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산에는 늘, 4계절이 공존한다

    가지산 정상에 도착!
    누군가 두고간 가지 장난감(진짜 가지인줄 알았는데 플라스틱 장난감이었다)을 들고 신났다. 가지가지 요리조리 사진을 찍고 하늘을 바라본다.
    일출은 요원해요.
    너무 추워요
    기다릴 수 없어요.
    계다가 랜턴부대가 겁나 빠른 속도로 쫓아오고 있어요.
    미세먼지가 자욱이 내려앉아 멋진 일출은 아닐 것 같았다.

    붉게 타오르기 시작하는 하늘을 뒤로하고 빠르게 발걸음을 옮긴다.
    이른 새벽부터 가지산장은 불을 켜고 영업 중이었지만.. 아무리 따뜻한 라면이라도 칼바람 부는 야외테이블에서는 먹을 엄두가 안나 미련 없이 지나친다.

    가지산장을 넘어서면 바로 보이는 영알의 공룡능선!
    완벽한 공룡의 등이다. 볼 때마다 신나는 공룡능선.

    추워 죽겠는데 잠시 멈추고 떠오르는 해를 찍어본다.

    요래요래 오늘의 태양이 또 올라왔다.
    사진 찍는다고 폰을 떨어뜨렸다.
    강화유리가 박살이 났다.
    물론 당연히 내 마음도 박살이 났다.
    등산 다니며 숱하게 폰을 떨어뜨렸음에도 괜찮았던 강화유리가...
    등산 안 다니는 동안 폰이 무겁다고 케이스티파이 케이스를 빼고 슬림케이스를 씌워 다녔었는데 떨어뜨리자마자 바로 케이스티파이의 빈자리가 뼈저리게 다가온다.

    워치 놓고 와서 되돌아가, 폰 떨궈.. 오늘 일진이 심상찮다.
    그런데 앞에 펼쳐진 길이 눈밭을 가로지르는 빙판길이다.
    세상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안 그래도 작은 마음 쫄보는 빙판길에서 사정없이 쪼그라들었다.

    M과 나는 아이젠을 챙겨 오긴 했는데 뽀오가 아이젠이 없다.
    함산은 의리 아니겠어?!!!
    오늘 우리 으리으리하게 의리를 불태워보기로 한다.
    발은 땅바닥에서 떨어지라고 있는 게 아니라는 듯 질질 끌며 조심스레 이동한다.
    완만한 구간은 괜찮은데 가파른 구간이 나올 때마다 아찔했다.
    그래도 우리.... 넘어지지 않고 다들 빙판길을 무사히 통과했다.
    어차피 시간은 너무너무 여유 있어서 느린 속도 따위는 문제 될 게 없었다.

    작년에 잠시 쉬며 아침을 먹고 사진을 찍으며 놀았던 곳을 지나쳤다.
    가지산 정상에서 멀어지는데도 칼바람이 멈추지 않았다.
    사진 찍고 먹고 할 정신이 없었다.
    빙판길에서 움찔하고 칼바람에 휘둘리며 산행을 이어갔다.
    봄...이여 제발 오라!!!

    다들 공복유산소가 너무 길어졌고 해가 하늘높이 떠오르자 바람의 날카로움이 조금 나아졌다.
    자리를 펴고 빠르게 배를 채운다.
    추웡!
    추위와 배고픔 중 하나는 해결해야 했기에 아침으로 싸 온 할당량은 다 먹고 자리를 정리했다.

    가지산에서 운문산에 가려면 마치 산 하나를 다 내려왔다 다시 시작하는 만큼 끝도 없는 하산을 해야 한다.
    1241M의 가지산 정상에서 고도 600M 지점의 아랫재까지 쭉 내려왔다.
    끝도 없이 내려가다 보면 또 언제 올라가나 싶지
    그런데 또 오르다 보면 어느새 정상이고
    이게 등산이지.

    아랫재 산불감시초소에 오니 운문산에 올라간 산객들의 가방이 즐비하다.
    우리도 잠시 고민하다 가방을 두고 가기로 한다
    우리나라 좋은 나라.
    아름다운 등산문화.
    지켜줘요 우리 배낭.

    오전 8시 30분. 아랫재에서 운문산으로 출발.
    운문사는 엄청 가파른 길만 쭈욱 이어져 거리는 짧았던 코스로 기억한다.
    그래서 아랫재부터 갑자기 급경사가 나타나도 놀라지 않지!
    급경사 오르막
    급경사 오르막
    운문산은 난리 부르스.

    다들 몇 걸음 걷다 숨을 돌리며 쉬어가는데 우리는 왜 쉬질 못해.
    뽀오는 발에 모터를 달았고 심장은 터보 엔진인가 봉가.

    그렇게 길고 긴 급경사를 끝내면
    따란!
    잠시 쉬어가요 구간이 나와야 하는데 이때부터가 난리부르스였다.
    뻘밭도 뻘밭도 이런 뻘밭이 없다.
    잠시만 움직임을 멈추면 주르륵 미끄러져버리는 빙판길보다 더한 진흙밭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르는 거야 어찌 오르겠지만 내려올 때 어쩌나.
    미래의 걱정을 가불 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바닥의 상태가 심각했다.

    가방 없이 폰과 스틱만 들고 오르지 않았다면 진짜 힘들었을 길이었다.
    뻘밭과의 사투를 마치고 내 기억엔 넓은 평야로 남아있는, 작년에 간식을 먹었던 곳에 도착했다.
    아이코야!
    평지는커녕. 그냥 계단 억새밭이었고만...

    뻘밭에서 빠져나와 만난 계단이 어찌나 반갑던지!
    등산로의 계단은 늘 은혜롭지만 오늘은 특히나였다.
    게다가 마른땅의 축복까지!!

    미세먼지 때문에 멋진 산세가 작년만큼 위용을 뽐내지 못해 아쉬웠지만 우리는 풍경이 좋으면 좋은 대로 아니면 아닌 대로 그냥 산을 오래도록 걷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산에 있다는 것이 그냥 좋았다.

    운문산에 도착해 영남알프스 5봉 인증을 마친다.

    인증을 하자마자 정상석 인증줄이 길어지고 버스 한 대로 온 동호인들이(40명이라고 했다) 몰려왔다.
    내려가자!!
    얼른 가자!!!

    운문산 정상석에서 계단이 이어지는 구간까지는 상당히 가파른 암릉 구간이다.
    그리고 계단을 만나 빠르게 걸었고
    곧이어 뻘밭을 만나 그대로 멈췄다.
    정말 그대로 멈춰랏!! 수준의 속도로 뻘밭을 찐득하게 느끼며 이동했다.
    영남알프스 등산 3년, 매년 비슷한 시기에 찾았건만, 눈 쌓인 것도 처음 봤고 빙판길도 처음이고 이렇게 심각한 뻘뻘뻘뻘밭도 처음이다.
    기상이변을 온몸으로 겪었다.

    내려오니 10시 20분.
    1시간 50분 동안 고도 600M를 올라갔다 왔다.
    600M를 올라가는데 2km쯤 되는 거리이니 상당히 가파른 구간이다.

    아랫재에서 상양마을 가는 길은 3.5km 정도 되지만 매우 완만하다.
    외려 상양마을에 들어서서 만나는 임도가 더 가파르다고 해야 할 정도이다.

    작년에 운문산 등산을 마치고 샀던 얼음골 사과에 반해 올해도 사과시즌이 시작하자마자 밀양 얼음골 사과를 시켜 먹었고 다시 운문산 가는 날 농장에서 또 주문해야겠다며 사과 공급량(?)을 조절하고 있었는데 문을 연 곳이 하나도 없다.

    사과값이 금값이 되어 이미 다 팔아버리신 건가?
    작년인 그렇게 많던 사과 파는 트럭도 한 대도 없었고 농장 앞에서 사과를 시식하라고 나눠주시는 사장님들도 안 계신다.

    작년과 동일한 시기인데 왜 이래... 하며 작년에 버스시간을 기다리며 머물렀던 카페 사장님께 여쭈어보니 우리가 너무 빨리 내려와서 그렇단다.
    아... 빠른 등산의 폐해네.
    11시 24분, 7시간 14분의 등산을 마쳤다.
    버스 출발은 2시.

    두 번째라고 매우 정겨운 카페 산내랑.

    등산 마친 날머리에서 이렇게 취향저격 메뉴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
    그곳이 운문산이어라!

    🎯영남알프스 가지산&운문산 오르기🎯
    ✔️ 산행시간 : 7시간 14분
    ✔️ 산행거리 : 16.98km
    ✔️ 산행코스 : 석남터널 입구 - 중봉 - 가지산 - 아랫재 - 운문산 - 아랫재 - 상양마을 - 솔향기팬션 앞
    ✔️ 내년에는 마른땅을 내려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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