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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여행] 안녕, 발리Jinnia_C의 깨알같은 하루하루 2024. 12. 26. 01:50반응형
어제 와인바에서부터 쏟아진 비는 밤새도록 계속됐다.
마지막 조식을 먹었다.
비가 오니 어쩐지 좋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군.
올해 발리의 이례적인 날씨에 여행객들은 난리였다.
수수료를 내더라도 취소하겠다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이 이례적인 날씨가 꽤 좋았다.
쏟아지는 비가 큰돈 들여 여행 와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 같았다아침을 먹고 들어와 침대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샤워를 하고 짐을 쌌다.
마타하리 땅콩만 한가득이네
누가 보면 땅콩장사 하는 줄 알겠어.
엄마와 동생이 짐을 꽤 많이 가져가준 덕분에 공간이 꽤 많았던 캐리어가 땅콩으로 가득 찼다.
체크아웃 시간인 12시까지 숙소에 머물렀다.
비는 그쳤지만 딱히 일정이 없었던지라 최대한 늦게 나가고자 했다.
그리고 오늘은 e-sim 사용기한이 끝나 구글맵 없이 움직여야 한다.
나가자마자 스타벅스나 가야지 생각했다.
오늘 유일한 일정은 5시 누사테라피에서의 마사지였다.
스벅에서 5시간을 죽칠 생각이었는데 디카하우스의 좁은 골목을 빠져나오자마자 펼쳐지는 우붓의 거리가 어쩐지 너무 슬펐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니그래서 그냥 걸었다
원숭이들에게 인사를 할 생각으로 몽키포레스트 쪽으로 걸었는데 날씨가 이래서 인지 원숭이들이 없다.푸르디푸른 원숭이숲, 안녕.
너무나도 친근해진 우붓의 거리도 안녕.
코코마트까지 왔다가 그간 안 가본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길을 걷다 본 조각상의 손끝이 너무 아름답다. 저런 손을 할 수 있는 당신은 분명 대단한 춤꾼이 분명하오!
우붓은, 정말 우붓스러운 우붓만의 정취가 있다.
정처 없이 걷고 또 걸었다.
특색을 가진 카페와 식당들이 즐비하다.
정말 큰 규모의 상점들이 엄청난 인테리어르 선보여 놀라웠던 우붓. 그리고 대부분 야외좌석이 있는데, 바이크와 차가 뿜어대는 매연이 아무리 지독해도 밖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사람들은 여전히 신기해 보였다.
처음 가본 길이었는데 길 끝에 가자 내가 아는 곳이 나왔다.
그래서 또 안 가본 골목을 골라 쭉 걷다 보니 결국 그 끝에는 또 아는 곳이 나온다.
와... 나 정말 우붓을 많이 걸었구나.
길치인 내게 눈이 익는 곳이 많아졌다는 것은 정말 바지런히 돌아다녔다는 뜻.
아무것도 안 한다고 했는데 무언가를 하긴 했네.
동생이 공항으로 가던 길, 차 안에서 본 카페를 언급하며 시간 될 때 가보라고 했었다.
FOLD.이곳 역시 엄청난 규모이다.
실내도 크고 실외도 크다
실외에 나가고 싶었는데 오랜 시간 책을 읽으며 개미와 날벌레를 감당하고 싶지는 않아 에어컨이 시원한 실내에 앉았다(결국 스쿼미시를 꺼내 입은 춥찔이, 그래도 실내가 쾌적)크루아상과 라테.
7천 원이다. 한국인줄.그동안 크루아상을 세 번 먹었는데 매장이 모두 실외인지라 빵이 다 눅눅했었는데 이곳은 빵이 실내에 있어서인지 매우 바삭했다.
겉은 바삭바삭 속은 아낌없이 사용한 버터 덕분에 풍미가 매우 좋았다. 라테도 나이스!
근데 발리에서 이 가격에 맛없으면 어쩌라고?
라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2시간 정도 책을 읽었다.
나도 오래 머문다고 머물었는데 이곳 발리에는 디지털노마드가 정말 많아 노트북이나 아이패드를 올려두고 하염없이 머무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혼자니까 일찍 가더라도 마사지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카페를 나섰다.
바로 마사지샵으로 가지 않고 또다시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길을 따라 한참을 걷다가 마사지 샵으로 갔다.
4시 10분.
밖에서 보니 마사지 체어에 두 명만 있어서 오우!! 나이쑤!
하며 들어갔으나... 5시까지 기다려야 한단다.
힝...
다시 나갔다 올까 하다가 그냥 샵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예약했던 시간보다 15분 빠른 4시 45분, 드디어 자리를 안내받았다.어제는 베드에서 받았던지라 홀을 제대로 보지 못했었다.
오늘 받을 마사지는 발마사지 30분, 어깨와 등 30분이다.
어깨와 등을 체어에서 받을 경우 30분이 최대라고 한다.
그래서 발마사지와 섞어서 구성했다.누사테라피 발마사지 정말 최고다!
진짜 진짜 최고다!
발마사지가 끝나는 순간 후회했다. 발만 한 시간 할걸...
어깨와 등을 앉아서 받는 건 꽤나 이상했다?
마사지사의 힘을 버티려면 몸에 잔뜩 힘을 줘야 하는데 마사지의 기본은 이완 아니던가?
그렇다고 몸에 힘을 빼버리면 주유소 풍선인형처럼 마사지사가 힘을 주는 대로 몸이 펄럭이게 된다.
기본적으로 누사테라피의 마사지사님들은 정말 압이 세고 시원했지만 앉아서 받는 등과 어깨는 그래서인지 더 어색했다.
만약 다음에 우붓에 오게 된다면 누사테라피에서 하루는 전신, 또 다음날은 발마사지를 번갈아가면서 받아야지!!마사지를 끝내고 6시, 미리 캡처해 둔 구글맵 사진을 보며 발리 마지막 식사를 위해 또 피자집에 왔다!!
세 번 만에 드디어 야외좌석에 앉았다.
와룽 시타 오베스트는 실내보다 실외자리가 훨씬 운치 있다.
게다가 차와 바이크가 엄청 다니는 길은 아닌지라 매연도 견딜만한 수준 ㅎㅎ와인 한잔과 모짜렐라 치즈를 추가한 마르게리타 피자를 주문했다.
나도 혼자, 옆테이블도 혼자.
와인을 한 모금 마시는데 옆에서 매우 작은 목소리가 말을 건다.
- Merry christmas.
- oh!! you too! Merry Christmas.
내가 씩 웃으며 같은 인사를 건네자 수줍음이 사라지고 조금 커진 목소리가 스몰토크를 시전 하신다.
듣자마자 알겠는 호주 억양
멜번에서 왔다기에 나도 멜번에 1년 있었다며 대화의 물꼬가 터졌다.
그렇게 둘이 아무 얘기도 아닌 얘기를 나누며 피자를 먹는데 피자 포장을 기다리던 호주아저씨 한 명이 합류해서 셋이서 종알종알 또, 아무 얘기도 아닌 대화를 나눴다.
영미권 친구들의 스몰토크의 정석.
아무 얘기도 아닌 즐거운 얘기들.
- 혼자 왔어?
- 아니 가족이랑 왔는데 3일 전에 먼저 갔어.
- 혼자 있어보니 어때?
- 너무 좋아! 아무것도 안 해도 돼서 진짜 좋아.
- 나도 그런 거 좋아해. 내 와이프는 늘 어딘가 가고 싶고 난 그냥 술 마시고 책이나 읽으면서 쉬고 싶거든. 그래서 우린 각자 서로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서로 행복한 여행을 하지.
이렇게 쓰니 되게 구린 더빙을 입힌 미드 같군 ;;;
여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각자의 길을 갔다.
나는 마지막까지 남아 피자를 끝장냈다.
내 위장은 어찌 된 일인지 피자 한판을 엄마와 동생과 나눠먹어도 배부른데 이걸 또 혼자 다 먹어치우네.
물론 굉장히 심각하게 배부름.
와인도 두 잔을 마셨음.
그래도 발리 마지막 저녁이니까...
나름 성대하게 배를 꽉꽉 채워본다.머리 위의 메뉴 칠판에 도마뱀 세 마리가 왔다 갔다 한다.
나한테 절대 오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에 무덤덤하게 바라본다.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엄청나게 쏟아졌다.
다시 디카하우스로 돌아갔다.
공항 가는 동안 비행기 놓칠까 마음이 새까맣게 타버린 엄마와 동생의 상황을 간접경험한 나는 마음 편하게 디카하우스의 샌딩서비스를 신청했다.
디카의 아부지가 오늘 오는 손님들을 픽업하기 위해 공항에 가있어서 나는 디카의 삼촌이 운전하는 차를 탔다(디카하우스의 장남 이름이 디카다😍)
삼촌이 올 때까지 디카 어무니와 한참 수다를 나누고 헤어지며 포옹을 나눴다.
다음에 오게 되면 디카와 니코의 선물로 학용품이라도 사 와야지 결심하며 마음 따뜻한 가족과 작별했다.
삼촌과 함께 온 공항은 1시간 반정도밖에 안 걸렸고 나는 여유롭게 공항에서 출국수속을 마쳤다.
안녕 발리.
또 올꺼야.
딱 기다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하루 걸러 한 번씩 쏟아지는 비로 알려줘서 어쩐지 고마워. 발리의 우기 덕분에 내 여행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것 같다.
인생이 더욱 풍성하고 다채로워졌다.300x250'Jinnia_C의 깨알같은 하루하루'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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