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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산일기] 진해 장복산-벚꽃없는 벚꽃종주_0329
    등산일기 Hiker_deer 2025. 3. 31.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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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만의 왁자지껄 함산이냐며..

    8명인 줄 알았는데 10명이었다.
    취소될 줄 알았는데 감행되었다.
    벚꽃 속에 그늘 없이 어찌 걷나 고민했는데 너무 추웠다.

    여러모로 하나씩 살짝 어긋나서 시작된 산행이었다.
    8명에서 10명이 된 것은 뭐… 큰 변화는 아니었으나 오랜만에 많은 사람과 하는 산행이다 보니 모두 기억하기가 버겁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경북지역 산불로 모임이 취소될까 싶었는데 워낙 여러 명의 스케줄이 모아진 데다 1박이다 보니 취소 없이 진행되었다.
    어쩐지 불편하고 미안한 마음에 산불 돕기 기부금을 납부하였다. 면죄부를 사겠다는 것은 아니고… 그냥 산을 사랑하는 내가 산을 터전으로 알고 살던 사람들에게 늘 품고 있었던 동질감에서 비롯된 아린 마음에 내가 보일 수 있는 작은 성의이자 큰 마음이었다.


    작년 화려하고 화사한 벚꽃종주를 선사했던 장복산.
    벚꽃도 벚꽃이지만 아기자기한 산세가 너무 예뻐 이곳이라면 나도 비박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던 곳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일기예보부터가 기대감을 대폭 줄여주었다. 한동안 덥더니 또 추워졌다.
    이번 주 초 장복산 다녀온 사람들에게 들었던 소식 역시 벚꽃은 다음 주에!! 였어서 기대를 내려놓고 왔다.

    진해까지 4시간.
    거의 처음보다 시피한 분들과 차를 함께 타게 되었다.
    다행히도 나 말고 세분은 원래 잘 알고 계시던 분들이라 그분들 이야기를 들으며 호응하고 웃으면 그만이었다.
    나는 사람들과 함께 산에 가는 용기를 내는 것이 더 어려워 혼자 산에 다니는 사람이다. 그러다 가끔 어이없고 무모하게 용감해질 때가 있는데, 가고 싶은 산의 산행이 올라왔을 때이다.
    무박도 아니고 1박 3일의 일정이었다.

    식성도 까다롭고 술 취한 사람들 보는 것도 버거워하는 주제에, 너 어쩔 셈이냐?

    싶었지만 나는 장복산이 너무도 다시 가고 싶었다.


    창원 시내에서 아주 이른 아침을 먹었다.
    오전 4시 반, 순대국밥이라니!

    창원시내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보고 기대를 접었던 마음이 조금씩 부풀기 시작했다.
    산행은 길지 않을 터이니(그러하다. 작년엔 28명이 함께해 속도와 등력차가 많이 나다 보니 매우 오랫동안 산에 머물러야 했지만 오늘은 나만 잘 따라가면 되는 산행이었다) 사람들 몰리기 전에 여좌천에 한번 들르기로 했다.

    식당을 나서는 길, 사장님께서
    창원보다 진해 벚꽃이 늦다고 하셨는데, 세상에 이게 웬일!
    고작 20분도 안가 진해 여좌천에 도착했는데 꽃이 없더라

    다시 장복산 조각공원으로 출발했다.
    작년 조각공원은 컴컴한 밤, 벚꽃이 조명이라도 된 듯 사방에서 팝콘이 팡팡 터지고 있었다.

    오늘은 그보다는 덜하지만 기대 없이 온 것 치고는 들머리에서 벚꽃을 볼 수 있었다.
    오늘 산행에서 본 거의 마지막 벚꽃이었다. 보면서도 그럴 것 같았다.
    해가 뜨고 산행을 시작했음에도 너무너무 추웠다.
    지지난주 금오산에서 뜻밖의 설산에 개고생을 했고
    지난주 청량산은 더워서 고생이더니만
    이번 주 장복산은 한겨울 추위가 다시 온 듯했다.
    웬만해야 장단을 맞추지, 이렇게 변화무쌍하면 어쩌라고!!!

    작년엔 무장애 데크길을 좀 걷다가 미친 경사도에 매우 거친 산길을 올랐었는데 오늘은 시작부터 미친 오르막의 임도로 시작한다.

    세상에나!
    밤새 달려온 몸이 깜짝 놀란다.
    청량사보다 아주 조금 덜한 경사도.
    무장애데크길 어딨냐며!!
    삼밀사까지 저 오르막은 무장애데크길을 짧고 가파르게 축소해 놓은 코스였다.
    삼밀사 지나면 알지!?

    이번에 장복산이 처음인 사람들이 길을 보고 화들짝 놀라는데
    장복산이 여러 번 와본 언니가 깔깔 웃더니 명언을 남긴다.
    - 이 길이 제일 예쁜 오르막이야🤣🤣
    맞다!! 이 길이 제일 예쁘고 고운 오르막이다.

    이 봐유~

    이것 좀 보라구요.
    이런 너덜길인데 경사도가 깎아지른 절벽 같아요.

    작년엔 헤드랜턴에 의지해 가느라고 정신없이 발밑을 보고 올라가기에 바빴는데, 밝을 때 올라가니 그나마 좀 낫다. 몸은 나은데 시각적 충격은 좀 더 컸다.

    해가 떠오르고 아직 남은 붉은빛이 아련하다.

    뭔가 살짝 어색하지만 산행 4년 차만에 처음 가져본 정상석 요정샷.
    사람 없는 산에 동무들과 함께 왔더니 이런 행운이!!!

    바다 옆의 돌산은 언제나 옳다

    작년 장복산은 너무 일찍 올라오는 바람에 일출을 기다리지 못하고 어둠 속의 인증샷만 찍고 내려가야 했다.
    역시 산행은 밝을 때 하는 게 좋다.

    장복산 정상까지 올라오면 힘든 것은 거의(…) 끝났다고 보면 된다. 이제 당분간은 능선을 걷는 꽃산행이다(아… 꽃은 없음 주의!!)

    바다가 시원하게 보이고(바람 불어 추워 죽겠지만 덕분인지 하늘은 맑다)

    우리는 길을 걷지.

    작년엔 지천에 꽃이 흐드러지게 널려있었는데 올해는 꽃 하나 발견하면 다들 뛰어가 사진을 찍는다.
    나는, 꽃이 좋다기보다는 꽃은 곧 봄이라..
    봄이 얼른 오길 바랐는데 자꾸 오다가 발목 잡히는지 올락 말락 하는 봄이 애가 타서…
    나도 모르게 목을 길게 빼고 산등성이에라도 핀 꽃을 찾아내곤 기쁘게 웃어본다.

    살방살방 걸어갈 능선이 나타났다.
    작년에 이 산세에 홀딱 반했었다.

    동이 터오던 시각, 바위바위마다 알록달록 늘어선 텐트가 올망졸망 너무 예뻐 보이던 곳.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처럼, 차고 뾰족한 바람을 한껏 느껴본다(추워 죽겠다)

    난 있지 정말… 이 산등성이가 만들어낸 풍경이 너무 좋아서, 이 능선길이 너무 예뻐서.. 걷는 내내 두 번 왔으니 되었다. 앞으로 장복산 또 올 일은 없겠다고 투덜거렸지만 세 번 네 번 다섯 번 찾게 될 것 같다.

    앞으로 쭉 펼쳐진 능선만 해도 좋아 죽겠는데 양옆으로 바다가 펼쳐져… 그리고 꽃동산까지 있어(물론 올해는 드문드문 드물게)-이러니 장복산 어떻게 잊어

    워낙에 꽃이 귀한 꽃종주였던 터라(벚꽃은 없어도 진달래라도 흐드러질지 알았지..) 꽃이 보이면 그렇게 반갑고 애틋해서 사진을 찍어댔다.
    (나이 들어서 꽃만 눈에 보이는 건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

    작년에는 벚꽃이 흐드러지며 꽃터널을 만들어 주었던 이 길, 3보 1 사진 하느라 속도가 더뎌졌던 이 길을 쾌속 보행으로 지나간다.
    헐벗은 벚나무가 어쩐지 추워 보인다

    그래도 조만간 꽃망울을 터뜨릴 것이라며 붉은 꽃망울을 잔뜩 매단 벚나무가 어쩐지 위안이기도 했고 약이 오르기도 했다.

    나 서울 가면 터질 작정이지? 야속하게!!

    안민고개의 넓은 평지에서 아침을 먹는다.
    니네 4시에 밥 먹었잖아? 응 근데 그게 벌써 4시간 전이잖아. 어쩐지 배가 고픈걸. 게다가 밥 먹기 좋은 장소가 나왔는데 어찌 지나쳐.
    다들 또 먹는다고???라는 반응이었지만 막상 한상 떡하니 펼쳐지니 신나게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겼다.

    작년엔 넓은 평지에 벚꽃과 텐트가 가득했었는데 올해는 황량하기 그지없는 넓은 공터였다.
    대신… 엄청난 인기와 인파로 차마 눈뜨고 숨 쉬며 갈 수 없었던 화장실이 세상 쾌적하고 깨끗하더라며..(아! 이용자가 거의 없어서이기도 했겠지만 화장실 공사를 해서 신식(?)으로 바뀌었다!)

    안민고개에서 정비를 마치고 다시 출발.
    앞으로의 길도 당분간 편할 예정이다.

    양지였다.
    그래서 지나온 길보가 더 많은 꽃이 피어있었다.
    여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꽃길을 걸었다.

    덜덜 떨며 바람과 맞서고 추위를 견디며 걸어왔는데 시간이 지나며 해가 하늘 높이 떠오르며 기온을 끌어올려서 잠시 머물러 사진을 찍을 엄두를 낼 수 있었다.

    계속해서 두 갈래의 길과 마주하게 된다.
    작년에는 이 길이 한쪽은 등산로 한쪽은 자전거라고 명확히 쓰여있었는데 자전거길 표기가 싹 지워졌다.
    선택의 기로에 서면 무조건 등산로를 고르시라.
    조금 더 힘들어 보일 것 같은 길로 가면 된다.

    작년에는 무조건 가파른 길을 택해 걸었는데 올해는 한번 완만한 길을 선택했다가 아주 길~~~~게 생각보다 더 길~~~~게 빙 도는 길을 걸어야 했다.

    목가적인 길을 신나게 걸을 수 있는 장복산을 어찌 마다할 수 있겠어.
    내년 이맘때도 난 이 길을 걷고 있을 것 같다.

    이 작은 나라에는 정말 많은 산이 있지만 특히나 땅끝으로 가 바다와 마주한 산들은 사람 미치게 하는 재주가 있다.
    너~~~~~~무 좋아(feat. 애순)

    꽃길 실 컷 걸었으니 다시 숨이 턱 막히는 길을 마주할 때가 됐다.
    계단이 끝이 없다.
    올해 등산을 다시 재개하고 나서 뜻밖의 험한 산만 골라다닌지라 이 정도 계단쯤이야~ 싶지만 그래도 호흡이 짧은 나는 늘 오를 때마다 버겁다. 이놈의 호흡기는 이렇게 등산을 하고 달리기를 해도 튼튼해질 기미가 안 보인다.
    언제쯤 긴 호흡이 터지려나.

    긴 계단을 지나면 황량한 등산로가 나온다.
    생명의 빛은 연둣빛인데… 봄의 생명력을 찾아볼 수 없다.
    터덜터덜 길을 걷는다
    늘 애매한 속도로 걷는 나는 대부분 일행과 거리를 두는 산행을 하게 된다.
    앞서가는 일행은 내가 느리다 보니 늘 저 멀리-
    뒤에 오는 일행은 내가 쪼꼼 빠르다 보니 또 저 멀리-
    함께하던 와중에 혼산의 익숙함에 빠져드는 시간이 생겨서 도를 닦듯이 걸음을 뗀다.
    생각이 깊어지는 시간.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굽이굽이 늘어진 길이 멋스럽고, 저 긴 길을 걸어온 우리가 멋지다.

    작년 장복산은 땡볕과 무더위 때문이 이 즈음에서 꽤나 고생을 했었다.
    이때부터 선발대와 후발대의 간극이 점점 벌어지며 후발대는 종주의 목적지까지 가지 않고 중간에 다른 길로 빠져나가는 걸로 결정이 됐었다.
    오늘도 역시나 내 머리 위를 가려줄 그늘은 없었지만 불어오면 소름이 돋을 것 같음 냉기 가득한 바람에, 등 떠밀리듯 조금은 수월하게 오를 수 있었다.
    웅산에!

    웅산까지 왔으면 더 이상의 깔딱 고개는 없다고 보면 된다.

    앙증맞지만 흔들림의 진폭은 남부럽지 않은 출렁다리를 지나고 낭떠러지 같은 돌길을 짚어 내려오면 시루봉까지는 가는 길은 꽤 수월하다.
    호흡이 짧은 나도 대화를 나누며 갈 수 있는 길이다.

    저 벚나무가 천국의 문인양, 시루봉을 지키는 문지기인양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는데.
    아, 물론 꽃이 없어도 예쁘다.
    처음부터 이 풍경만 보았더라면 어쩐지 서늘한 멋이 있는 풍경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작년이 끝판왕을 보아버린 바람에… 모든 것을 다 비교하고 있다.
    세상을 불행하게 만드는 게 비교인데 말이다.

    시루봉까지의 길은, 벚꽃이 수놓았던 길.
    벚꽃이 수놓을 길.
    오늘만은 그렇지 않은 길.

    지구의 신비를 느낄 수 있는, 우뚝 솟아오른 시루봉 드디어 도착!!
    하산만 남았다.
    그러니 오늘 산행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지.
    시루봉에서 남은 음식과 간식들 모두 꺼내 또 한 번의 잔치를 시작한다.
    사람 없던 시루봉에서 우리는 마음껏 수다를 나누고 신나게 웃어제꼈다.

    작년에는 시루봉에서부터 쭉 뻗은 천자봉으로 향했다면 올해는 시루봉에서 내려와 자은초등학교로 내려가는 갈림길을 택했다.

    하산길도 꽤나 운치 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속도가 비슷한 동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또 어느 순간은 혼자 걷다가 다시 마주하면 이야기를 나누며 편하게 길을 걸었다.

    누군가를 만나면 무슨 말이든 해야 할 것 같은 강박증은 늘 나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 같았다.

    지금도 끝내 다 떨쳐내지는 못했지만 침묵을 견디는 법, 침묵을 즐기는 법을 조금씩 익히고 배워나가고 있다.
    그리하여 의무감이 아닌 마음을 건네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는 것 같다.

    우리가 걸었던 길을 담고 있다.

    벚꽃이 가득한 장복산도
    벚꽃이 없는 장복산도
    장복산은 장복산이라,
    벚꽃 없는 벚꽃종주로 인해 장복산의 민낯을 보았고 그마저도 사랑하게 된 것 같다.

    🎯장복산 & 웅산 오르기🎯
    ✔️산행시간 : 7시간 35분
    ✔️산행거리 : 18.50km
    ✔️산행코스 : 조각공원-장복산-덕주봉-안민고개-웅산-시루봉-자은초등학교
    ✔️바다와 인접한 돌산은 늘 옳다. 꽃 좀 없으면 어때. 꽃님들 오시기 전에 내가 미리 길 좀 닦아놓고 왔지. 어서 오시게 올해의 봄!

    +) 벚꽃있는 벚꽃 종주 스토리는 여기에!!
    https://jinnia.tistory.com/m/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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