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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일기] 여한이 없을 여항산_0330등산일기 Hiker_deer 2025. 3. 31. 17:26반응형
아재스러운 말장난으로 포문을 열어보자.
여한이 없을 여항산
전날 장복산 등산을 마치고 1박.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게요?
말로 다 못함.
글로 다 못씀.
말하기보다 듣고 웃기만 해도 되는 자리여서 너~~~~~무 편했고 너~~~ 무 좋았다.
이끼같이 있어도 되는 자리라니. 그럼에도 충분히 즐겁고 행복한 자리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있겠어~우리 숙소는 국립용지봉 자연휴양림이었다.
독채 2개 당첨.
요즘 자연휴양림은 선착순이 아니라 무려 추첨제라고 한다.
이게 당첨이 된다고????????용지봉 자연휴양림은 완전 Brand New한 숙소라 청결도와 시설은 압도적이었다.
사전에 검색을 통해 어메니티가 하나도 없음은 미리 숙지하여 잘 챙겨갔으므로 불편함이 없었다.
조명도 세련된 신식(?) 조명이었고 모든 시설이 반짝반짝했다.
바닥에서 잘 못자는 몸뚱이라 20분에 한 번씩 자세를 바꿔야 해서 깊은 잠은 자지 못했지만
이것은 시설 문제가 아니라 내 몸뚱이의 문제이니
용지봉 자연휴양림은 완벽한 숙소였다고 할 수 있겠다.10시에 체크아웃을 하고 여항산으로 향했다.
어제 그렇게 씹고 뜯고 맛보고 마셨던 사람들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파워풀한 동무들의 모습은 매우 경이로웠다.
휴양림에서 약 50km, 1시간을 달려 여항산에 도착했다.
첨 들어보는 이름이잖아.
여항산.
그럼에도 우리의 일정에 들어간 이유가 있는 산이겠지.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핀 들머리.
들머리의 마을이 어찌나 예쁜지, 이곳은 삶의 터전에 애정이 가득한 분들이 사는 곳이겠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진달래 꽃가지가 어여쁜 문을 열어주어 살포시 발을 디뎌본다.
오랜만에 산에서 만난 요정의 길.신나게 걸어본다.
정상으로 추정되는 봉우리는 매우매우 멀게만 보여서 현실감이 떨어진다.
이렇게 걷다보면 언젠가는 도착하겠지?
덥썩덥썩 보폭이 큰 발걸음을 옮겨본다.
이렇게 걷다 보면 언젠가는 도착...
할리가 없다.
그래.. 그럴리가 없다.하... 이 경사도 뭐야!!!!!!!!!
라는 외마디가 나올때까지 당신이 걸었던 길은 그냥 들머리였던 셈이다.본격 시작은 지금부터다.
대한민국에 있는 급경사 산 방문하기 대회가 열린다면 나.. 어쩐지 순위권 안에 들 수 있을 것 같아.
지난 몇주간 내 종아리 근육의 텐션이 어디까지인지를 시험당하는 느낌.언제까지 고개를 젖힐셈이야?라는 심정으로 머리를 한껏 쳐들고 바라봐도 정상이 안 보이고 까마득한 절벽 같은 등산로만 보이는 곳.
여항산이었다.
나를 포함,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흘러나왔다.
아.. 곡소리 말고 사오정 소리.
사오정 나방 토하는 소리가 줄줄이 새어나온다.
흐아아아아아아아아~
고둥언니가 내는 소리를 듣고 사오정이 생각나서 혼자 낄낄대며 웃다가 어느 순간 나도 사오정 소리를 내고 있음을 깨닫고 흥겨움에 심취했다.
이렇게라도 신나지 않으면 이 험한 길을 오를 동력을 어디서 찾았을까?
정상은 말입니다.
머리를 들어 하늘방향을 바라보면 저 멀리 잡힐 듯 잡히지 않을 듯 신기루처럼 보이게 마련인데
본격 등산로에 진입하면서부터 목이 꺾어져라 뒤로 젖혀봐도 보이는 것은 험난한 길밖에 없는
그런 신기하고 가혹한 산이었다.초록보다 먼저 온 들꽃의 발견은 잠시 숨을 돌리게 해 주었다.
얼레지 안녕. 올해도 왔구나.귀여운 바람꽃도.
봄인 듯 봄이 아닌 듯 서운할 뻔했는데 봄이라고- 봄이라고- 그래도 봄이라고- 인사해 주어 반갑다.
대단한 관심으로 사진 찍는 척 쉬어간다.그리고 마침내 계단이 나타나면 여한이 없을 풍경이 펼쳐진다.
바다와 맞닿은 산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의 끝판왕 격이다.가파르고 또 가파른, 험하디 험한 산길을 올라와 마주한 계단 역시 만만치 않은 경사도를 자랑했지만 그 계단 끝에는
"사람 미치게 하는"
"바다와 맞닿은 산"의 믿을 수 없는 풍경이 펼쳐진다.길게 늘어지던 사오정 나방 토하는 신음이 단발성으로 변한다.
헉!!!!!!
우와!!!!!!!!
뭐야!! 대박!! 미쳤나 봐!!!한없이 마주하고 있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풍경을 가진 산은 혼자 오르면 너무 섭섭할 것 같다.
모두의 탄성을 자아내는 풍경에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느라 바쁘다.여항산을 나의 고동무와 함께 왔다면 어쩐지 좀 서운할 뻔했다.
하룻밤 함께하며 조금은 편해졌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진을 부탁하고
뚝 떨어진 바위에 홀로 앉아 눈앞에 펼쳐진 장관을 감상한다.올라오며 했던 고생을(개고생을) 보상해 주고도 남을 풍경이었다.
올라오며 바득바득 갈았던 이가 헤벌쭉 벌어지며 함박웃음을 지어낸다.
어쩐지 한 번쯤은 다시 올 것 같은 여항산
이렇게 멀지 않으면 한 번이 뭐야. 여러 번이라도 다시 올 것 같은!!
등산로가 아무리 험하고 힘들다 하여도 충분히 감내하고 오를만한 산이었다.정상에 올라오면 이 꼴로 잠시 쉬어야하는 여항산 정상에서 한참을 즐겼다.
그리고 하산 시작.실은 올라가면서부터 하산 걱정을 했었다.
올라온 길은 1코스, 내려갈 길은 3코스.
1코스가 이렇게 험준한데 3코스라고 만만할리가 없지.
- 3시간 정도 걸릴꺼야. 가방 필요 없고 물 하나만 챙기면 돼
라는 리딩형님의 말에 작은 생수 하나 들고 올라왔는데, 기어오르듯 산을 오르며 스틱을 챙겼어야 했다고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 모른다.
가볍게 올라온다고 좋아서 칠렐레팔렐레 스스로를 과신했다.
사람 미치게 하는 아름다운 여항산은
하산길에도 나를 미치게 했다.
올라온 길과 같이 가파른 내리막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이 길을 벌벌 떨며 움찔움찔 내려가는 내가 미치겠고
이런 길을 쾌속산행 하는 동무들을 보며 미치겠더라.
아니 나는 어쩌자고 이렇게 하산을 못해?
그리고 저 사람들은 어떤 신체구조가 나와 다르기에 저렇게 바람같이 내려가는 거야?꽤 앞에서 하산을 하다 결국 모든 동무들을 앞세웠다.
나를 스쳐가던 동무님이 자신의 스틱 하나를 내게 내어주었다.
그 스틱 아니었음 난 여항산의 지박령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제일 뒤에 남은 형님도 보내드리려 했는데 처음 와본 산인데 어찌 혼자 두고 가냐며 끝끝내 내 뒤를 사수해 주셔서
고마워서 미칠 뻔, 쫄려서 미칠 뻔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채무자 된 기분.미끄럽지 말라고 깔아놓은 야자매트마저도 잡아주지 못하던 극한의 경사도.
워낙에 하산길에 많이 넘어지다 보니, 힘든 하산길을 만날 때마다 우주최강 쫄보가 되고
삶에 대한 애착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정말 여한 없이 즐기고, 여한이 없을 만큼 호강했으며
미치게 짜릿했고 미치게 쫄깃했던
나의 여항산.
누군가 저 남쪽에 갈만한 산이 무어냐고 물어보면
주저 않고 추천해야지
여항산.
🎯여항산 오르기🎯
✔️산행거리 : 6.84km
✔️산행시간 : 2시간 42분
✔️산행코스 : 2코스 등산, 3코스 하산
✔️도파민 지수 최고! 여러 의미로 짜릿하고 여러 의미로 미치겠는 여한이 없을 여항산!
✔️스틱 필수!!!산행 마치고 가던 길의 벚꽃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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