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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산일기] 지리산 성백종주, 마침내.(20221022)
    등산일기 Hiker_deer 2022. 10. 23.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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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봄, 좋지 않은 컨디션으로 결국 천왕봉을 찍지 못하고 미완으로 성백종주를 마치며 다시는 시간제한이 있어 쫓기듯 다녀야 하는 산행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https://jinnia.tistory.com/m/741

    [산쭈의 등산일기] 마치지 못한(?) 지리산 성백종주

    늦은 밤 버스를 탄다. 정말 우연히도 좋은 산동무들을 만나 버스 산행을 거의 해본 적이 없는 버스 산행 산꼬맹이. (대장형님과 운영진 형님들의 희생으로 여기까지 온 것 같다. 버스 타고 다녔

    jinnia.tistory.com

    그런데 또... 모임에 지리산 종주글이 올라왔고 설마 이번엔 1박을 하거나 다른 장치(성공을 위한)가 있겠거니 하고 글도 읽어보지 않고 신청을 했는데...
    눼... 지난봄과 똑같은 조건이었습니다요.... 난 또 망했다며 취소를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 울며 겨자 먹기로 참가를 하며 모임 사람들에게 선언을 했다.
    -이번에도 성공하지 못하면 다시는 종주한다고 깝치지 않겠다!!!!
    그래서 이번 지리산 종주는 나의 종주인생(🫠🫠🫠)이 걸린 중차대한 일이 되어버렸다.
    난 덕유산 영구종주를 좋아해서 종주를 끊긴 싫었거든

    그리하여 더 철저히 준비한 지리산 성백종주 준비물!!


    1. 출발 전 식사 : 마주라 통밀빵 2개, 창억떡 2개
    지난번 김밥 먹느라 30분 이상을 허비하게 되어 간단하게 미주라 통밀빵 두 개 준비. 통밀이 소화가 잘될 것 같다는 근거 없는 믿음(따위는 필요 없는 소화 너무 잘 시키는 1인) 그리고 빵 두 개로 부족할 것 같아 창억떡집의 찰떡 두 개를 챙겼고 본격 아침식사를 하기까지 떡 두 개로 야무지게 걸을 수 있었다.
    2. 아침과 점심 : 김밥 2줄
    종주할 때 김밥만큼 속이 든든한 게 없더라. 대신 밥이 딱딱해지는 계절이라 라면을 챙겨 온 산동무에게 라면 국물을 좀 얻어 김밥을 푹 담가먹었다.
    3. 간식 : 초코바, 에너지바, 히말라야솔트캔디, 그외 사탕들
    여러 가지를 챙겼지만 시간이 없어 사탕을 먹으며 걸을 수밖에 없었다. 등산 시작하고 평생 거들떠도 안 보던 사탕이 필수품이 되었다.
    4. 물 : 700밀리 날진 1통, 500밀리 탄산수 1개
    연하천, 벽소령, 세석, 장터목 대피소에서 물 보충을 하여 700밀리 날진은 손도 대지 않고 빈 탄산수 병에 물을 채워 원 없이 물을 마셨다.
    5. 에너지 젤 1개, 액상 마그네슘 1개
    점심 먹기 전 배가 고플 때 에너지 젤을 하나 먹고 천왕봉 올라가기 전 극한의 상황(!!)에서 마그네슘을 먹었다. 지금까지 등산을 하며 에너지 젤의 효용을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오늘은 배고픔을 잠재우는 톡톡한 역할을 해주었다.
    6. 옷 :
    날씨를 보니 많이 춥지는 않을 것 같았지만 해뜨기 전과 천왕봉에서의 추위를 대비해 R2와 신칠라를 챙겼고
    그 외 시간에 가볍게 운행할 수 있게 레깅스, 아크테릭스 꼬막 크루, 아디다스 마라톤 후디 바람막이를 입었다.
    결과적으로 새벽녘에도 그렇게 춥지 않아 아침 먹을 때 빼고는 R2를 입을 일이 없었다. 천왕봉도... 여름인 줄 ㄷ ㄷ ㄷ
    하지만 나의 보온의류들은 돌아오는 버스 안이 너무 추워 아주 유용하게 사용했다. 없는 것보다야 있는 게 낫지만... 가방 무거운 건 정말 싫어

    7. 그 외 : 장갑, 스틱, 헤드랜턴, 보조배터리, 선크림, 휴지, 물티슈 등


    동서울 터미널, 노고단행 버스는 11시 40분 정기버스를 시작으로 45분, 50분, 55분 추가 버스가 3대나 더 배차되어있었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고행길을 함께하는 거람.
    버스가 출발하기 전, 버스 관계자 분이 올라오셔서
    - 산행 안전히 다녀오십시오
    라는 인사를 하고 내려가셨다.
    신기했다. 일반 버스인데 이런 인사가 오가다니.
    (참, 추가 버스가 여러 대 배차되다 보니 우리 버스는 오래된 것이어서 충전 포트가 없었다. 당황잼 ㅠㅜ)

    성삼재에 내려 빵 두 개로 후딱 아침식사를 마쳤다.
    그래서 우리는 버스에서 내린 인파 중에서도 꽤 선두로 출발을 할 수 있었다. 오전 3시 5분.

    아침 안개가 자욱했다.
    지난번엔 노고단 들머리에 도착했을 때 사람이 많았는데 우리가 꽤 선두였다는 반증으로 사람이 거의 없었고 앞길은 어두컴컴하기만 했다.
    새벽안개가 너무 자욱했다.
    헤드랜턴 불빛에 흩날리는 물방울이 보일 정도였다.
    일출 시간이 늦어지는 가을이라 어둠 속의 산행이 무려 3시간 반이나 지속되었고 나의 헤드랜턴은 중간에 꺼져버렸다. 다행히 다시 켜니 불빛이 어둡게 조절되어 켜지긴 하더라 ㄷ ㄷ ㄷ
    이렇게 길게 어둠 속을 걸어본 것은 처음이라 지쳤다.
    지긋지긋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짙은 안개와 습도 때문에 중간중간 빗방울이나 우박이 떨어지는 구간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춥지 않아 다행이었고 엄청난 소리를 동반한 바람이 불었는데도 신기하게 춥지 않았다. 전력을 다해 걷느라 몸에 열이 계속 올라있었기 때문에 추위를 못 느꼈을 수도 있겠다.

    지난 번 종주 때는 밝을 때 지나갔던 곳을 오늘은 다 어둠 속에서 지나쳤다.

    삼도봉도 여전히 어둠 속.
    오전 5시 45분 삼도봉을 지났다.
    인증사진만 후딱 찍고 또다시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기나긴 어둠이 끝나고 동이 터오기 시작했다.
    축축하게 몸을 짓누르던 안개도 걷히고 어느 순간 빗방울도 사라졌다. 그리고 하늘이 영롱하게 빛이 났다.
    오늘 날씨, 대박이겠다!

    예쁨을 보고 감탄할 시간도, 감동하며 지체할 시간도 없었다. 다시 빠르게 길을 걷는다.

    나뭇잎이 거의 다 떨어져 흙바닥에 가을이 내려앉았다.
    단풍이 다 끝났나 보다. 지리산엔 일찍 가을이 다녀갔나보다 생각하며 어쩐지 황량한 느낌의 길을 걸었다.

    큰 산의 위엄이 하늘 아래 드러난다.
    이것이 지리산이다.

    연하천 대피소에 도착하기 전, 배가 고파져 토끼봉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걸음을 멈추자 추위가 몰려왔고 바람이 지나는 길목이었는지 엄청난 소리의 강풍이 불어왔다.
    부랴부랴 배를 채우고 체온이 더 떨어지기 전에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연하천 대피소, 오전 8시 도착.
    공사 중이었지만 화장실 이용과 식수 보충이 가능했다.
    간단히 재정비를 하고 또 출발!
    대장님의 타임라인엔 연하천 대피소 도착이 6시 55분이었다.
    그걸 보고 실소가 터졌다. 오늘도 실패로구나.
    근데 내가 이렇게나 열심히 왔는데... 대체 이 타임라인을 맞추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 거예요???
    산동무들이 우리는 아침식사를 먼저 하고 와서 그렇다고, 이건 이상적인 타임라인일 뿐이라고 날 위로했지만 이미 나에게는 패배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다.
    연하천 대피소에 있던 사람들의 대화중 한마디가 귀에 콕 박혔다.
    2시까지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하면 천왕봉을 갈 수 있고 아니라면 포기해야 한다고.. 아직 머나먼 2시고 갈길이 많이 남아 감도 안 잡혔지만 그 말을 기준 삼아 걸어보기로 했다.

    연하천에서 벽소령 대피소에 가는 길.
    지리산의 가을은 일찍 지나간 게 아니었다. 가을의 절정이었다.
    여길보고 저길 봐도 거대한 단풍 꽃다발들이 한가득 눈에 와 안겼고 가야산보다 조금 더 붉고 노란 기운이 가득해 딱 가을의 한가운데였다.
    마음은 바쁜데 대장님이 붙들어놓고 사진을 찍는다.
    우리는 거의 쉬지 않고 움직였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한숨 돌리고 가자고.
    덕분에 지리산의 가을을 잠시나마 만끽했다.
    우리는 빠른 속도는 아니었지만 일정한 속도로 꾸준히 걸었다. 거의 쉬지 않았다.

    매번 오면 사진을 찍는 그 큰 바위 사이에도 사진을 찍고 또다시 무브 무브!
    내리막이나 평지에서는 속도를 내고 그 외에는 일정한 속도로 걸었다.

    벽소령 대피소에서도 화장실에 들르고 식수 보충만 한 후 빠르게 이동했다.
    지난번에도 느꼈지만 지리산 종주만큼은 물 걱정 화장실 걱정이 없다. 종주하기 참 좋은 산이지-

    벽소령 대피소를 막 나서면 나오는 예쁜 데크길
    벽소령 대피소 인생샷 ㅋㅋ 스위스인줄

    벽소령에서 세석대피소까지는 약 6.3km 정도인데 이 길이 두 번째로 힘들고 지루하다(첫번째는 천왕봉 가는길 😇).
    길기도 긴 데다 오르막 내리막이 계속 이어지고 너덜길도 꽤 많다.
    게다가 거리는 참... 더디게 줄어드는 길이다.

    숲 속 길을 나오면 단풍과 하늘이 반겨주어 정말 감탄과 비명이 절로 나오는 지리산이었지만... 그럼에도 참 힘겨웠다.

    - 제가 진짜 최선을 다하거나 열심히 하는 거 싫어하고 안 하는데 저 정말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그런데도 실패하면 나 지리산 다시는 안 볼 거야

    누구를 향한 원망이고 투덜거림인지 알 수 없는 요상함으로 가득 찬 마음의 한 덩이를 뭉텅 잘라 뱉어내고 다시 최선을 다해 길을 걸었다.
    하늘이 너무 아름다워서, 단풍이 너무 황홀해서, 이런 날 꼭 천왕봉을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렇게까지 체력이 안될 것 같은 내가 원망스러웠고 이렇게나 힘든데 예쁘고 난리인 지리산이 좀 미웠던 것 같다.

    세 번째 지리산이었고 지난 지리산은 모두 봄의 푸르름과 싱그러움이 가득한 지리산이었는데 오늘의 지리산은... 가을의 지리산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이, 이런 풍경 속에 내가 있어도 되나 싶을 만큼 분에 넘치는 선물을 받은 듯 벅찼다.

    지난주 단풍이 한창인 가야산에 다녀왔으면서도 지리산은 가을일 것이라 생각지 못했다. 종주의 압박에 눌려(종주가 이렇게나 무섭습니다🫠) 지리산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상상조차 못 하고 있다가 마주한 가을의 지리산은 정말 압도적이었다.


    12시 10분, 세석대피소에 도착했다.
    대장님이 다시 짠 타임라인인 12시보다 10분 늦었지만 아직 해볼 만했다.
    게다가 세석에서 장터목까지는 3.4km였다.
    벽소령에서 세석에 비하면 반정도 되는 거리.
    아침보다는 조금 여유 있는 점심식사를 하며 배를 든든히 채웠다.

    세석대피소가 마주하는 풍경
    세석대피소

    세석대피소를 떠나며 마주한 하늘은 절정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었고 오솔길을 따라가면 하늘로 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리산은 정말 아름답다.

    이 길을 따라 나가면 연하선경이 나온다.
    지리산 제1경 정도랄까?

    -연하선경에서 사진 찍을 시간이 어딨어요. 우리는 2시까지 장터목에 가야한다규요!!
    라는 나를 잠시 세우고 사진을 찍어주신 대장으르신께 감사를!

    지난봄의 푸르름과는 확연히 다른 연하선경의 가을. 성숙한 느낌이 물씬 풍긴다(연하선경 만으로는 푸른 봄이 더 예쁜 것 같긴 하다;;)
    이때부터는 정말 정신이 없었다.
    어떻게든 2시까지 장터목에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다리는 아프지 않은데 호흡이 너무 힘들었다.
    산동무들이 그러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쯤 되면 다리가 아프단다. 한데 너는 대체 다리도 안 아프다는 애가 뭐가 힘든 것이냐고 물었다.
    난 늘 호흡이 힘들었다. 숨이 가장 힘들다.
    오늘도 난, 소도 때려잡을 거친 호흡으로 지리산 자락을 누볐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내 거친 호흡이 들리면 사람들이 길을 비켜주었다. 그러면 나는 헉헉 거리며
    - 고맙습니다~
    감사인사를 하고 전진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뒤로하고 1시 50분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했다. 이때는 이미 다 끝내버린 것처럼 펄쩍펄쩍 뛰며 환호를 하고 싶었다.

    가장 힘든 일을 앞에 두고 그냥 끝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달까

    잠시 정비를 하고 가방을 장터목대피소 계단에 내려두었다. 도저히 가방을 메고 천왕봉에 다녀올 수 없을 것 같았다. 다시 장터목으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에 원래 이렇게들 한다는 것이 대장님의 전언이었다.
    나의 소듕한 배낭, 누가 가져가면 어쩌지- 잠시 걱정했지만 가방을 내려놓으니 살 것 같았다.
    그리하여 나도 내 배낭의 운을 테스트해보기로 하고 가방 없이 물 한 통과 스틱, 방한복을 챙겨 천왕봉으로 출발했다.
    2시였다.
    왕복 3km.
    1시간 반, 최악의 상황이라도 2시간이면 다녀오겠지~ 가 우리의 생각이었다.

    진짜 놀랍게도
    한편으로는 징글징글하게도
    우린 천왕봉을 오르면서도 꾸준한 속도로 쉬지 않았다.
    그런데 그 꾸준한 속도가 문제였다.
    산 인생 1년 반 만에 같은 길을 오르는 모든 사람이 그렇게 슬로우 모션처럼 움직이는 것을 처음 봤다.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한걸음 한걸음이 너무나 무겁고 고되어 3보 1배가 아니라 1보 (내적)3배를 하는 것 같았다.

    모두가 순례자였다.
    이보다 더 성스럽고 고되고 애가 타고 간절한 길이 또 있을까.

    이쯤 되면 대부분 산객들의 얼굴이 눈에 익는다.
    성삼재에서부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인사를 나누고 온 터라 다들 얼굴이 눈에 익었고 그래서 더욱더 동지애가 생겼다.

    통천문을 지나 오르막 한번
    또다시 오르막
    그리고 "더로드"의 세상 끝으로 갈 것 같은 황량한 돌길의 오르막이 또 한 번(난 대체 "더로드"를 안 읽었으면 이런 황량한 돌길을 무어라 표현했을까🤣🤣).

    한 번만 더 오르막이 있었으면 진짜 누가 때려 죽여도 그냥 맞고 말지의 심정이 되었을 때 천왕봉에 도착했다. 오후 3시.

    요고이 천왕봉

    사진이 엉망인 것은 우리가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이 시간에도 천왕봉에 사진을 찍으려는 인파가 줄을 길게 늘어서 정상석과의 사진은 미련 없이 포기하고 정상석 근처, 올 때마다 사진을 찍는 스팟에 가서 기념사진을 남겼다.

    산을 오르며 이렇게 감격적인 순간은 처음이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내가!!!! 내가!! 결국 천왕봉에 왔다구 ㅠㅠㅠㅠ

    사진을 찍느라 시간이 10분 지체됐다.
    그럼에도 천왕봉에서는 사진을 남기고 싶었다.
    장터목까지 얼른 내려가자 했는데도.. 몸이 재게 움직이지 않았다. 이제는 갈 데까지 간 것 같은 우리의 몸뚱이.
    무겁게 무겁게 내려가는데 낯익은 얼굴들이 천왕봉으로 올라오고 있다.
    인사를 하고 짧은 대화도 나눴다.
    12시간 넘게 같은 길을 걸으며 마주치고 또 마주친 얼굴들이었다. 이렇게 잔잔하면서도 깊은 동지애는 처음이었다.
    서로의 성공(무사히 버스 타기😶😶)을 빌며 작별을 했다.

    장터목 대피소에 다시 왔다.
    3시 50분.
    우리 가방은 떠날 때 그 모양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다.
    우리나라 좋은 나라!!

    후다닥 마지막 정비를 마쳤다.
    5.5km. 백무동까지 가야 할 거리가 5.5km였다. -버스 탈 수 있을까요?
    -해 봐야지. 안되면 함양까지 택시를 타고 나가면 거기는 늦게까지 버스가 있으니 그 방법도 고려해보자.

    나에게는 백무동에서 버스를 타야 오늘 미션이 성공이었다.
    앞으로도 즐겁게 깝치며 종주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난번 좋지 않았던 컨디션에도 하산은 바람같이 했기에 약간의 기대를 품고 길을 나섰다.
    백무동까지 3.3km. 안내표지가 나왔을 때 뒤에 있는 산동무들에게 소리쳤다.
    - 우리 30분 동안 2km 왔어요!! 할 수 있을 것 같아!!
    이때부터는 다들 신나 이미 성공한 것 같은 분위기였다.

    노란빛이 예쁘게 내려앉은 하산길을 찍는다고 잠시 멈추기도 했다.

    그런데... 백무동 하산길은 역시나였다.
    3km까지는 빠르게 잘 내려왔는데 그때부터는 거리가 줄지 않았다.
    우리는 비슷한 속도로 내려가고 있는데도 20분을 걸어도 고작 몇백 미터가 줄었다.
    큰일이다!!

    큰일났음에도 예쁜 백무동 하산길🤣🤣😇😇

    조금 더 빨리 내려가야겠는데 등산 시작하고 처음으로 발 앞꿈치가 아팠다.
    너무 생각 없이 발을 내딛으며 걸었나 보다.
    등산화 앞쪽에 쿠션이 조금이라도 더 있었음...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물집이 잡혔고 새끼발톱은 빠진 것 같았다.
    지리산은 올 때마다 발톱을 잃네

    지난번보다 커디션은 훨씬 좋았는데
    고작 3km 더 걸으며 천왕봉에 다녀왔을 뿐인데
    이렇게 하산이 더딜 줄이야 ㅠㅠ
    계곡길 돌길은 빠르게 가기가 여의치 않아 잠시 흙길이 나올 때마다 달렸다.
    그리고 백무동탐방지원센터에 도착.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렸다.
    버스정류장까지 500m
    38km 산행을 마치고 500m를 또 달렸다.

    그렇게 5시 51분.
    버스 출발 9분을 앞두고 도착!
    화장실도 다녀올 수 있었다!!!
    이거슨 감동의 도가니!!
    감격의 대챔츼!

    해냈다.
    힘들고 무겁고 가난하고 배고팠던 시절을 지나오며 다시는 열심히 살지 않겠다고 결심했는데 오늘 내가 간만에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산을 탔고 결국 해냈다.

    보통 성백종주는 13시간~14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14시간을 가뿐하게(?) 넘겼다.
    이게 최선이다.
    다른 사람들이야 어떻건간에 이것이 나의 최선이다. 나는 앞으로도 깝치며ㅋㅋㅋ 즐겁게 종주를 다닐 테지만... 오늘같이 시간제한이 있는 종주는 다시는 하지 않을 것이다.

    성백종주는 내가 좋아할 만한 길인데 두 번 다 너무 급하게 다녀오느라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지나치기만 했다. 다음번 종주는 느긋하게 내려와 1박을 할 계획으로 하나하나 천천히 눈에 담고 마음에 담아와야지


    ⛰️덕유산 영구종주와 지리산 성백종주⛰️
    지난봄 지리산 종주에 실패하고 지리산이 덕유산보다 훨씬 어렵다고 하는 나에게 대장님은
    덕유산은 산 몇 개를 내려가고 올라야 해서 더 힘든 종주라고 했다. 단지 내가 컨디션이 안 좋았을 뿐이라고.
    덕유산 영구종주와 지리산 성백종주를 두 번 다 마치고 나니 이제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지리산 성백종주가 한 수 위다.
    덕유산이 대장님 말처럼 산 여러 개를 타야 한다고는 하지만 끝나갈 무렵에는 완만하고 긴 능선길을 즐기며 걸을 수 있는데 지리산은 오르고 내림이 그보다는 덜하다고 해도 30km, 10시간 이상을 걸은 상태에서 천왕봉이라는 복병을 맞이해야 한다. 심리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차원이 다른 이야기ㅠㅠ
    그래서 나에게는 지리산 성백종주가 훨씬 어려운 걸로!! 땅땅땅!!


    ➕) 성중종주와 성백종주
    성중종주는 중산리로 하산. 장터목에서 천왕봉에 올라 거기서 바로 중산리로 하산할 수 있다. 하지만 서울 가는 버스가 오후 4시에 끊김
    성백종주는 백무동으로 하산. 장터복에서 천왕봉에 올라 다시 장터목으로 내려온 후 하산이 시작된다. 하산길이 더 길고 지루하지만 서울 가는 버스가 6시까지 있다.


    🎯지리산 성백종주🎯
    ✔️산행거리 : 38km(#애플워치 기준)
    ✔️산행시간 : 14시간 46분😇😇
    ✔️산행코스 : 성삼재 - 노고단 - 삼도봉 - 토끼봉(아침식사) - 연하천(08:00) - 형제봉 - 벽소령(09:35) - 칠선봉 - 세석(12:10, 점심식사) - 촛대봉 - 연하봉 - 장터목(13:50) - 제석봉 - 천왕봉(15:00) - 장터목(15:45) - 백무동 버스탑승(17:55)
    ✔️오늘 지리산, 여름인 줄. 천왕봉까지 더울 줄이야... 한여름에 단풍을 즐긴 듯 추위 없는 단풍놀이는 춥찔이에게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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