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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르웨이 여행일기] Åndalsnes, 오랜만의 시티투어
    내가 있던 그곳 2023. 9. 25.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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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해외여행을 가면 늘, 언제나 시티투어였다.
    올드타운이 되었건, 뉴타운이 되었건 늘 도시를 돌아다니는 게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 노르웨이 여행은 하이킹이 주가되었고 그다음이 피오르 투어여서 여행 막바지가 되어서야 시티투어를 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랜만의 시티투어가 아니라 첫 시티투어 였네.
     
    실은 이날 나는 롬스달세겐 산행을 하고 싶었다.
    노르웨이로 출발하기 전에는 일행들에게 얘기해 나 혼자라도 산행을 감행하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여행 6일차였던 이날, 이미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 해졌던 터라 굳이 내 주장을 강요하여 롬스달세겐에 들러 나만 내려달라고 할 수 없었다.
    아마 그렇게 부탁했다고 한들, 그 부탁은 씨알도 안 먹혔으리라.
    -개인 일정인데 우리한테 어쩌라고?
    라는 대답이 돌아왔을 듯.
    어떻게 아냐고? 7일차의 내가 겪은 일이거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하여 그냥 일행 둘(!)이 하고 싶다는 대로 안달스네스로 향하기로 했다.
    친구끼리 여행을 가도 어느 날 하루는 각자 하고 싶은 거 하고 저녁에 만나자~라는 식의 여행을 하곤 한다.
    그런데 왜 때문에 이놈의 여행은 그런 것도 안되었을까?
    우선 나는 성공했다.
    안달스네스의 여행자라면 누구나 들른다는 악슬라전망대(실은 이것 말고 딱히 볼만한 것이 없긴 하다)에 가겠다고 했더니 그 둘(!)도 간단다. 
    그래서 나는 걸어 올라가겠다고 했다.
    산행을 하고 싶었는데 못하니 아쉬운 대로 전망대라도 오르겠다고.
    그랬더니 그 둘은 차로 가겠단다.
    세상 기뻤다!
    가는 길에 나는 내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나의 룸메이트인 그녀는, 
    - 원래 여행하면서 전망대 가는 걸 좋아하지 않으니 저는 타운 구경할게요
    라며 탈출을 시도했으나 그 둘(!)중 한 명이 버럭 했다.
    진심 버럭했다.
    이해를 못 하겠다고. 남들 다 가는 관광지인데 왜 안 가려고 하냐고.
    아니 이게 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야
    남들 간다고 다 가야 해? 가고 싶지 않다잖아!
    라는 마음의 소리 뇌의 소리는 진짜 울림이 되어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결국 나의 룸메이트 그녀는 그들과 함께 전망대에 가야 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우린 왜 이렇게 저자세였을까?

    안달스네스까지 이동중에 페리를 탔다. 날씨...끝내주는 날이었다

    여튼... 아침식사를 하고 첫 번째 목적지인 안달스네스 전망대를 찍고 가는 길.
    정신 차리고 보니 네비는 전망대 정상으로 찍혀있었고 도착을 몇 킬로 앞두고 있었다
    화들짝 놀란 나는 내려달라고 했다.
    원래 전망대를 걸어 올라가는 루트가 아니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탈출해야 했다.
    그리하여 룸메이트의 부러움 가득 담은 눈길을 받으며 오롯이 홀로 남겨졌다.
    어깨춤이 절로 났다.

    -부러워요.. 제 몫까지 마음껏 즐기세요 ㅠㅠ
    룸메이트의 톡이 날아왔다.
    마음이 짠했다.


    탈출에 성공했음에도 나는 최선을 다해 느리게 걸었다.
    주택가를 지나 올라가는 길이었다. 물론 바다를 낀 한적한 주택가가 예쁘긴 했지만 그렇게 오래 머무르며 이곳저곳 사진을 찍어댈 곳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렇게 했다.

    찍어야한다. 느리게가야한다.

    평소 걷던대로 빠른 걸음으로 올라가면 악슬라전망대 정상에서 그들을 만날까 두려웠다.


    그렇게 느리게 올라갔음에도 혹시나 싶어 전망대 초입에서 목을 길게 빼고 들여다봤다.

    빼꼼히 조심스레 정찰한 전망대

    혹시나 그들이 있으면 잠시 뒤에 숨어있을 요량이었다
    (진짜... 눙물난다)
     
    그들이 없었다.
    마침내 진짜로 탈출에 성공한 탈주자마냥 흥에 겨웠다.
    날씨가 정말 좋았다.


    먼바다까지 다 보였다.
    아기자기 예쁜 안달스네스 마을이 내려다 보였고
    시원하게 푸른 바다가 펼쳐져있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가 쾌적했다.

    아침에 싸가지고 나온 납작 복숭아 두 개를 오물오물 맛나게 먹었다.
    그리고 피스타치오도 한 봉지 뜯어 오독오독 껍질을 벗겨 기계적으로 입안에 넣으며 넋을 놓고 풍경을 감상했다.
    행복해 미칠 것 같았다.
    후련하고 홀가분한 기쁨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충만하게 휘감았다.
    비로소 진짜 여행을 하는 것 같았다.
     

    홀로 또는 함께 악슬라 전망대에 올라온 사람들을 바라봤다.
    사람을 보고 풍경을 보고 바람을 느끼고 햇살을 느꼈다. 
    찐으로 행복할 때 나오는 바이브
     

    살아있길 잘했다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렇게 한참을 악슬라 전망대에 머물렀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았다.
    그 순간이 눈물 나게 좋았다.

    전망대에서 내려왔을 때 시간이 맞으면 점심을 하자고 했던 그 들. 그래서 일부러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서 내려왔다.
    도시가 너무 작아서 어디서라도 마주칠 수 있었기 때문에 느긋하게 느지막이 전망대를 내려와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구글맵을 보고 바다가 있는 방향을 얼추 확인한 후 그쪽으로 걸었다.
    유럽의 도시를 걸어보는 게 얼마만인가.
    입사 후, 거의 매년 출장 혹은 여행으로 유럽 곳곳을 다녔는데 코로나로 몇 년을 건너뛰니 너무나 유럽스러운 안달스네스의 거리들이 조금은 생소하게 그러면서도  진한 그리움을 가득 담고 다가왔다.
     
    나름 바쁘게 오가는 현지인들 사이를 한량바이브 뿜뿜 뿜으며 느긋하게 걸었다.
    햇살에 반짝이는 바다가 보였다.
    더 가까이 다가가니
    오!!!! 잔치로구나!!!!!!!!!!
    푸드마켓이 열렸다.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음식을 파는 푸드트럭과 매대가 잔뜩 늘어서있었다.
     

    우선 유럽 어느 나라를 가도 맛있는 케밥 푸드트럭을 찜콩하고 잔치가 벌어진 거리를 쭉 걸었다.
    레스토랑 들어가서 식사를 해도 좋았지만 이래저래 피한다고 늦게 내려온 덕에 식당에서 느긋하게 식사를 하기엔 시간이 조금 빠듯했다. 

    걷다가 발견한 그릭푸드트럭에서 그리스 음식을 샀다.
    대박!! 대애애애애박 맛있었다 ㅋ

    행사거리를 벗어나 바닷가의 벤치에 앉아 끼룩끼룩 갈매기와 반짝반짝 바다를 동무삼아  여유 있게 식사를 했다.

    산스토랑만큼이나 훌륭한 씨스토랑!

    잔칫집 갈매기는 배가 불렀는지 내 음식을 탐하지 않아서 좋은 밥동무기 되어주었다

    안 그래도 행복했던 하루에 맛있는 음식으로 포만감 가득한 배부른 행복을 더해 오래된 교회가 있다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런데 교회 문 닫음.
    문 닫은 것 같았음.
    안 들어가도 그만이라는 생각이어서 닫힌 문을 열어볼 생각을 안 했는데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관광객이 꿈쩍하지 않는 문을 힘껏 밀어보는 중이었다.
    - 오늘 문 안 연 것 같죠?
    거의 동시에 말하며 함께 웃었다.
    사소한 모든 것이 즐겁고 좋았다.
     
    유럽여행에서 종교시설 방문은 빠지지 않는 요소인데 이번 노르웨이 여행에서는 교회나 성당을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했다.
    대신 교회 앞마당(?)에 있는 공동묘지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앞으로 내가 읽는 북유럽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묘지로 갈음될 현장

    북유럽 스릴러를 매우 좋아하는 나.
    장르가 장르인 만큼 늘 죽는 사람이 나오다 보니 묘지도 자주 등장한다.
    앞으로 소설 읽을 때 오늘 본 공동묘지를 떠올리리라.

    다시 만나기로 한 시간이 다가왔다.
    내 룸메이트도 잘 탈출하여 혼자 정찬을 즐겼다고 한다.
    그날 밤 서로 얼마나 즐겁고 행복했는지 소회를 한껏 나눌 수 있었다.
    그래서 참 좋았다.

    저녁식사를 하고 숙소가 있는 마을을 한 바퀴 걸었다.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은 산 근처에 있는 집 쪽으로 걸어가자 폭포소리가 요란했다.
    이 집들은 1년 내내 폭포소리를 듣고 사는 걸까?
    1년 내내 들리는 폭포소리는 어쩐지 힘들 것 같았다.
     

    졸졸흐르는 물줄기 같지만... 폭포소리가 난다. 집 뒤뜰에 폭포가!!

    처음 도착한 남쪽 지방보다 북쪽은 해가 빨리 지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불을 켠 집들의 내부가 훤히 들여다 보였다.
    여름이 짧은 나라여서 그런지 여름에는 한껏 애써 햇살을 받기 위해 큰 창을 커튼 등으로 가리지 않고 개방해 두는 것 같았다.
    소박하지만 엄청 센스 있고 멋스러운 인테리어들이 매우 잘 보였다.
    긴 겨울 집에서 보내려면 인테리어가 삶에서 꽤 중요할 것 같았다.
    오늘의 집구경도 나중에 북유럽 소설을 읽을 때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가 되리라.

    걷다가 알았는데 우리 숙소가 롬스달세겐 산의 들머리 지척에 있는 곳이었다.
    그 주변을 한참 맴돌았다.
    너무 아쉬웠다.
    하지만 이미 지난 일이었다.
    다음에 또다시 노르웨이에 온다면 가장 먼저 챙겨 넣을 일정은 롬스달세겐 등산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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