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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산일기] 지리산 형제봉
    등산일기 Hiker_deer 2024. 5. 15.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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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 온다는 데 어딜 가는 거야?
    산쟁이들이 보는 일기예보를 모르는 동생은 전국에 비, 우박 예보라며 어딜 가냐고 했다.
    지리산 날씨를 산악날씨와 윈디에서 확인하고 또 하고, 적어도 우리가 산행하는 동안에는 비가 안 올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우비 없이 출발했다.

    대신 귀갓길 비를 대비한 우산과 따뜻한 옷은 챙겼다

    오늘의 산행지는 지리산.
    그리고 형제봉.
    지리산의 유명한 봉우리는 천왕봉, 반야봉, 바래봉이어서 그 봉우리들을 위한 산행코스만 있는 줄 알았다.
    그나마 반야봉도 지지난주에 처음 가봤는걸~

    산행공지의 제목인 "지리산"에 꽂히고 한 번도 못 들어본 형제봉에 혹했으며 소설 토지의 최참판댁을 재현해 놓은 곳이 날머리가 된다니, 이보다 더 매력적인 산행코스가 어디 있을까!

    고민 없이 신청했고 드디어 그날이 왔다.
    아주 다행히도 육구 종주를 실패하는 바람에 몸은 괜찮은 듯하였으나.. 징벌적 운동으로 월요일에 한강에서 러닝을 했고 출발 당일인 어제도 점심시간에 피트니스센터에서 러닝을 시도했으나 3km 밖에 안 달렸는데 식은땀이 나서 그만뒀다.

    육구종주 중탈에 털리고 움츠러든 몸과 마음이 쉬이 돌아오지는 않을 모양.
    찌질하고 불쌍한 나에게 저녁이라도 잘 먹이자고 동생과 뽕나무쟁이족발에서 양념족발을 뿌셔뿌셔!

    이렇게 많이 먹었으니 오늘은 출발 전에 아무것도 안 먹어도 괜찮겠지~ 배부른 상태가 유지되겠지!
    했는데... 이 몸뚱이를 이렇게 오래 가지고 있었으면서 아직도 모르냐능.
    돌아서면 배가 고픈 이십 대 뺨 때릴만한 엄청난 소화력.

    결국 버스에서 에너지바 하나와 과자하나를 순삭 했다.
    오늘의 들머리에는 화장실이 없으니 마지막 들른 휴게소에서 꼭 화장실을 들르라고 당부해 주신 리딩님.
    마지막 휴게소에서 들머리까지 한 시간은 더 가야 하는데..
    화장실을 참아야 하는 시간이 산행시간에 더해 한 시간이 늘어나겠구나...라는 빠른 계산!

    버스가 오르기 힘든 구불구불한 좁은 길.
    결국 마을회관까지는 못 가고 중간에 내려 마을회관까지 걸었다.
    하늘에 별이 쏟아져내렸다.
    유독 반짝이는 별들이 무언가를 그려내고 있었다.
    하지만 별자리 무식자라 뭐가 뭔지는 모르겠고요.

    노전마을회관에서 조별로 나뉘어 인사를 하고 산행을 시작했다. 청학사까지 임도길이 잘 닦여져 있다.
    불자님들이 차로 가실 수 있어야 하니까유~
    경사도도 완만한 편.

    청학사에 도착하니 형제봉까지 3km란다.
    노전마을회관이 고도 200m쯤 된다고 한다.
    청학사까지 오르막이긴 했지만 고도를 꽤 높인 것은 아니니... 3km를 가는 동안 1,100m 고지인 형제봉까지 900m 고도를 높여야 하는 코스이다.
    개.빡.세.겠.다.

    청학사를 지나자마자 200m(가 아닌 것 같지만 안내 표지는 200m라고 우기심🤣) 정도 진짜 가파른 오르막이 나오고.. 형제봉 2.8km라는 표지가 나오면 그때부터 본격 산행 시작이다.

    가파르다.
    엄청 가파르고 사람들이 많이 찾는 코스가 아니다 보니 문명의 이기를 거의 발견할 수 없는 거친 흙산이었다.

    덕유산 할미봉에서 서봉 가는 그 험한 길이 다시 떠오르는 구간이었다.
    몇 발자국의 편한 길도 허용치 않으며 평지 따위도 나타나지 않았다.
    좁은 외길이라 쉬겠다고 옆으로 빠지는 것도 어려웠다.
    세상에... 이게 웬일이야! 처음엔 싸늘하게 추위를 느끼던 몸뚱이에서 열이 훅훅, 땀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 오늘 날씨가 좋아 일출도 볼 수 있겠어요.
    라고 리딩님이 말씀하셨는데...
    저.. 저기요 슨생님! 이런 험하고 빡산길을 올라도 올라도 끝이 안 보이는데.. 일출 시간 안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게 사실입니까?라고 묻고 싶어 졌다 ㅠㅠ
    3km라고 했는데 서봉만큼이나 지긋지긋하게 나타나지 않던 형제봉.

    어둠과 씨름하며 오르막 오르막 또 오르막 오르막을 올라 드디어 사방이 트인 곳에 도착했다

    일출이다!!!
    올라오는 내내 오른편으로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노랗게 빨갛게 시시각각 변하는 것을 보며

    '오늘 일출은 못 보겠구먼. 그래도 이 정도로 색의 변화를 기켜볼 수 있는 게 어디야~'

    자기와의 타협을 이미 마쳤는데!
    도착하니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운 좋네~

    해가 떠오르는 봉우리가 반야봉이라고 했다.
    한번 다녀오니 이름을 들을 때마다 더욱 친근하기 느껴지는 반야봉.
    우리가 일출을 본 곳은 수리봉이었다.
    이렇게나 오래, 이렇게나 힘들게 올라왔는데 청학사에서 고작 1.3km 올라왔다며 편의성에 근거한 지리학적 거짓말을 늘어놓는 안내표지. 나쁘다!!
    지도의 직선거리를 재고 축적을 반영하여 안내해 주시는 거리... 오늘만큼은 너무나 가혹했지 말입니다.

    멀리 내려다보이는 섬진강 줄기, 큰 산이 주는 푸근하지만 압도적인 위용에 다시금 감탄하며 형제봉으로 길을 나섰다.

    1.7km라니.. 진짜

     

    뻥치시네!!

    를 날려주고 싶었다.
    조릿대가 울창하게 우거져 길을 가릴 듯 세를 자랑했다.

    통천문이 나타났다.
    통천문 모양이 사선이라 몸을 사선으로 뉘듯이 이동해야 했다.
    이런 통천문은 처음이라 뚠뚠이는 너무 힘들다며 혼자 깔깔대고 웃었다.
    그렇다! 나는 혼자가 되었다!

    다들 각자의 속도로 산행을 하느라 흩어졌다.
    나는 뒤에 후미조가 있다는(그것도 꽤 많은 인원의!) 든든한 빽 덕분에 마음이 편히 산행을 할 수 있었다.
    제알 앞과 제일 뒤만 아니면 돼~라는 나의 인생철학이 잘 발현되던 순간.

    정신 차려!!!
    엄청 오래 걸었는데 고작 900m 이동했다는 게 말이 됩니까!!!!

    야자매트가 깔린 길도 없을 정도로 워낙에 방치된 느낌의 등산로였는데 갑자기 나타난 짧은 계단에서 사람의 온기를 느꼈다.

    길은 계속 좁아졌고 조릿대의 침략은 계속되었다.
    조용한 숲길에는 이른 아침의 새소리와 내 숨소리만이 가득했다.

    거의 다 왔다!
    머리 위로 하늘이 나오고 위를 보고 옆을 봐도 나뭇잎 무성하여 시야를 가리던 나무들도 사라졌다.
    다 왔나 봐!

    1112m. 지리산 형제봉

    올라오는 동안 산객은 우리가 전부였다.
    지리산 형제봉, 오늘만큼은 우리 것이네!

    숨을 헐떡이며 도착한 형제봉에서 워치를 확인하니 6.2km!!
    그럼 그렇지, 3km가 웬 말이야!!

    형제봉에서 모두가 오기를 30분 좀  넘게 기다렸다.
    올라올 때 시원하게 땀을 씻어주던 바람이 곧 추위를
    몰고 왔다.
    바람막이 두 개를 껴입으니 견딜만했다. 이렇게나 훌륭하고 마음씨 좋았던 오늘의 날씨!

    어차피 기다릴 것, 좋은 조망을 보며 기다리자고 등을 돌려 앉았다. 지리산의 산그리매가 아련하게 가슴을 울린다.
    모두가 도착해 단체사진을 찍고 2형제봉으로 이동했다.

    봉우리가 두 개니 형제봉. 이름 참 단순하게 지으셨다.

    오래지 않아 제2형제봉 도착!
    이제 내리막 시작! 오늘의 식사장소인 헬기장까지 신이 나서 붕붕대며 걸었다.
    헬기장은 탁 트인 조망이 어디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곳이었다. 오늘도 이런 풍경을 보며 식사를 한다는 감격에 겨워하며 아침식사를 마셨다.

    이제는 쭉, 꽃길만 남았다고 했다.
    하산만 남았고, 그것도 아주 멋진 풍광을 감상하며 내려갈 수 있는 꽃길이라고!

    푸른 숲길을 걷는다.
    올라온 길과 다르게 내려가는 방향 쪽 등산로는 정비도 꽤 잘 되어있다.

    걸어온 길이 울창한 숲 위에 촘촘하게 수 놓아져 있다.
    저 멀리 보이는 풍경만 멋진지 알았더니 뒤를 돌아보니 보이는 근시안적 풍경도 너무 예쁘다.
    날씨가 좋으니 뭔들 안 예쁘겠어.
    하늘은 맑고 깨끗해, 바람은 시원해, 햇살은 따사로워! 무엇보다 눈앞에 펼쳐진 백만 불 짜리 뷰는 오늘 하루를 더없이 완벽하게 만들어주었다.

    선발대로 출렁다리에 일찍 도착한 우리는 아무도 없는 다리 위에서 사진을 찍는 특권을 누렸다.

    멀리서 봐도 인상적인 출렁다리는 생각보다 출렁거리지는 않으니 걱정을 내려놓아도 된다.
    오늘의 코스는 고소성으로 가서 최참판댁으로 나가야 했다
    끝없는 내리막이 펼쳐졌다.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길이라 낙엽이 수북이 쌓여있어 말밑을 조심하며 걸어야겠다.

    걷는 내내 시원한 바람이 너무 고마웠다.
    바람이 아니었음 한여름 산행이라 해도 될 정도로 뜨거웠다.

    한 명이 찍으면 그다음 모델들이 우르르 몰려나오는 바람에 산행은 더디게 진행되었지만, 이런 날 사진 안 찍으면 언제 찍어!!!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좋을 날씨덕에 모두가 너그러웠다.

    고소성까지 가는 도중 지리산 둘레길과 만나 둘레길을 한참 걷는다.
    지리산 둘레길 언젠가는 걸어보고 싶었는데 짧으나마 이렇게 걷게 되고요

    이제 마지막에서 두 번째라는 포토스폿에 도착했다.

    덕분에 행복했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지리산의 풍광들!

    이곳을 지나 고소성에 도착하면 끝. 고소성이 마지막으로 전망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었다.

    고소성에 먼저 도착한 우리는 신발을 벗었다.
    누군가는 등을 기대고 눈을 붙였고 누군가는 양말까지 다 벗고 오래 고생한 발에 자유를 주고 있었다.
    쏴아아아~ 소리를 내며 시원한 바람이 부는 곳이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30분 넘게 일행들을 기다렸다.
    이런 날씨, 이런 곳이라면 몇 시간이라도 기다릴 수 있다.

    한량이 된 기분이다(꿈을 이룬 것인가!).
    행복하다.
    회사에서 쌓였던 독이 사르르 바람과 함께 흩어지는 기분.

    고소성에서 마지막 뷰를 감상한다.
    결국 후미 일행을 만나지는 못했다.
    버스가 12시에 주차장으로 오기로 돼 있었기 때문에 내려가서 땡볕아래 기다리느니 이곳에서 기다리는 게 낫지 않겠냐는 리딩님의 설득이 아니었어도 마냥 늘어져있기 좋은 곳이었다.
    오히려 늦게까지 안 와준 후미 일행들에게 고마웠을 정도!

    이 지역을 먹여 살리는 것은 지리산과 박경리 선생님임을 너무나도 잘 알겠는 길 안내표지!

    덥지만 포기하지 않고 최참판댁 견학(?)까지 마쳤다
    이것만 보자고 따로 오지는 않을 것 같으니 기회가 있을 때 봐둬야지

    나의 여덟 번째 지리산은 그동안 들어본 적도 없었던 형제봉 코스였다. 새로운 코스도 이리 좋다니 지리산에 대한 애정이 더더욱 몽글몽글 커졌고 앞으로는 또 어떤 코스를 갈 수 있을까 호기심이 생겼다.
    지리산은 안 좋은 데가 없구나!
    우리 지리산은 언제부터 이렇게 예뻤나🤭

    🎯지리산 형제봉 오르기🎯
    ✔️산행시간 : 7시간 50분(몸이 안 좋은 분들이 좀 계셔서 쉴 때마다 30분 이상씩 신선놀음을 했다. 이마적도 갓벽!)
    ✔️산행거리 : 15.5km
    ✔️산행코스 : 노전마을회관 - 청학사 - 수리봉 - 통천문 - 삼각점 - 형제2봉 - 활공장 - 형제2봉 - 헬기장 - 구름다리 - 신선대 - 신선봉 - 봉화대 - 통천문 - 고소산성 - 한산사 - 최참판댁
    ✔️늘 살가웠던 덕유에서 깜짝 놀란 나를 넉넉하고 푸근히 감싸준 지리산. 하지만.. 자만하고 깝치지 말라며 오르막엔 덕유산 서봉 클래스를 보여주셨지. 훌륭하신 지리산님🤣🤣
    지리산은 정말 어느 곳 하나 버릴 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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