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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일기] 덕유산을 가장 ☆☆하게 즐기는 방법등산일기 Hiker_deer 2024. 5. 11. 18:58반응형
덕유산을 가장 힘들고 빡세게 즐기는 방법
공개합니다!!!
덕이 많고 너그러운 덕유산을 가장 날 서고 뾰족하게 즐기고 왔다.
지난 성중종주 이후 산은 무조건 느긋하게 즐기기로 하고 좋아하디 좋아하는 덕유산을
👉🏻몽땅 다 훑어보기 위해 육구 종주를!
👉🏻천천히 둘러보기 위해 1박을!
👉🏻체력 안배를 위해 반차를!
이렇게 오래전부터 준비를 해온 육구 종주를 가려는데 일주일 전부터 기상예보가 심상치 않다.비예보는 다행히 사라졌지만 바람이... 바람이...
지리산 성중 때보다 강풍 수치가 더 높았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숙박 취소기한을 놓쳤고 비가 안 오니 가기로 했다.
대신 지리산 때처럼 무리하지 말고 날씨가 안 좋아지면 바로 하산하기로!!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오늘의 육구종주 원정대는 뽀와 M님과 나, 3명이었는데 M님은 무릎 부상이 썩 나아지지 않아 산행을 아예 포기했다 ㅠㅠ
원래는 향적봉까지 함께 가서 곤도라로 하산하기로 했었는데 그마저도 안될 것 같다며 뽀와 나의 산행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픽업을 오겠다고 했다.
이건 아니쟈나. 너무 미안하쟈나.그래서 안성탐방지원센터로 올라서 덕유산의 예쁨만 쏙쏙 즐기고 설천봉에서 곤도라로 하산할 것을 제안했다(덕유산을 좋아하는 만큼 제법 알고 있는 산사슴😎)
그렇게 전문 기사님을 든든한 빽으로 두고 육십령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바깥바람은 쌀쌀한데 차 안은 너무 따뜻하고, 넉넉한 웃음으로 배웅해 주는 M님을 뒤에 두고 가자니 어쩐지 발이 안 떨어졌다.
M님이 안쓰러웠다기보다는 나도 저 안락함에 머물고 싶어서오늘도 덕유산 하늘에는 별이 가득했지만... 사진엔 안 잡혀주신 별님들.
육십령 휴게소 고도가 700m에 살짝 못 미쳤다.
지난 육구 종주 때 50분 만에 할미봉 도착, 이후 한 시간 사십 분 만에 서봉에 도착하느라 넋이라도 있고 없고 영혼까지 탈탈 털렸던 기억을 되살려 오늘은 천천히 오르겠다고 선언했다.
그래서 천천히 걸었는데... 너무 힘들다.
비염 때문에 코찔찔이가 되어 코로 호흡을 못하니 호흡이 힘든 것이야 매번 있는 일인데 오늘은 다리가 너무 무거웠다.
어느 정도 가면 풀리겠지 했는데 다리는 계속 묵직했다.
그리고 지난 육구때 공복에 서봉까지 멱살 잡힌 듯 끌려가 힘들어놓고 이번에도 공복산행을 감행했다.
올해 뽀오랑 산에 다니며 공복에 오르는 것이 좀 익숙해져서 잘 다니곤 했었기 때문에 내가 달라진 줄 알았지.
그런데 나는 그대로였다.
식은땀이 나고 눈앞에 별이 보이듯 번쩍번쩍 오락가락.
그럼에도 용가리 통뼈 저리 가라 할 고집으로 무작정 산행을 계속했다.
오늘 덕유산 육구종주 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컨디션도 안 좋은 와중에 알바를 두 번이나 했다GPX를 워치에 넣어 따라가기를 했으나... 어쩐지 경로이탈을 빠릿빠릿 알려주지 않던 workoutdoors. 설정을 다시 해봐야 할 것 같다. 퓨우....
그렇게 1시간 15분이 걸려 할미봉에 도착했다.
기억으로는 할미봉에서 서봉 가는 길이 사족보행 천국이었는데 이번에 가보니 할미봉 가는 길에 더 많은 네발 필수 코스.
안 그래도 돌찔이인 우리들은 어둠 속에서 밧줄을 잡고 오르내리느라 꽤 느리게 이동해야 했다.
지금까지 뽀와 산행을 다니면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앞서가는 산행이었는데 오늘은 모든 산객들을 다 앞서 보내고 조심조심 잔발 산행을 이어갔다.
할미봉쯤 오면 풀릴 줄 알았던 몸은 풀리지 않고.. 공포의 서봉까지의 산행이 시작되었다.
정말... 지겹도록 끝끝내 나타나지 않던 서봉.
이 정도까지 올라왔으면 나타나야 하는 것은 아닌가...우리 이렇게 높이 올라왔는데 서봉은 아직 요원하다.
구름이 두텁게 쌓인 산 위로 해가 떠오르려는지 붉게 노랗게 타오른다. 맑은 하늘보다 구름 뒤로 타오르는 것이 더더욱 불타는 듯 보였던 오늘의 일출은....
부랴부랴 서봉으로 가느라 끝까지 지켜보지 못했다.
나는 점점 쉬는 시간이 많이 졌다.
오래 쉬지는 않더라도 오르다 한숨 돌리는 시간이 잦아졌고 물도.... 20km를 걸어도 한두 모금 마시던 것이 다였는데 오늘은 남덕유산에 도착해서 500ml를 다 마셨다.
호흡은 힘들어도 다리는 안 아프던 과거의 나는 사라지고 호흡도 힘들어 죽겠는데 다리까지 아프다니...
서봉 가는 길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산을 이십 년 넘게 타신 언니들을 만났을 때
산 탄 지 만 2년 되었고 종주가 재밌다고 했더니 다들 씩 웃으며
-한참 그럴 때지~
라고 했었는데 그 순간이 갑자기 떠오르며 화악-이해가 되었다.
아.. 나도 이제 종주를 그만해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인가!?
그리고 재작년 겨울 육구종주하시다가 서봉에서 심정지로 생을 달리하신 분 생각이 났다.
다다음주에 가는 공룡능선도 포기해야 할 것 같았고
앞으로는 절대 종주한다고 깝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만가지 생각을 다 한 것 보면 진짜.. 엄청 힘들었나 보다.
진짜 지금까지 한 산행 중 힘든 산행 3위 안에 들 정도였다.이렇게 예쁜 풍경이 펼쳐지는데 사진 찍어달라고 폰을 내밀 기운조차 없었다.
자욱한 구름아래 덕유산은 신령스러웠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잠시!아직도 아냐?
아직도?
하아... 대체 서봉 너는 어디에??애가 탈즈음 서봉이 나타났다.
그런데 강풍도 함께 나타났다.가볍디 가벼운 뽀오는 바람에 휘날려 갈까 걱정스러울 정도로 강풍이 불어왔는데... 무서운 건 이 바람이 이날의 가장 약한 바람이었다는 것이다.
예보에 따르면 바람은 강해지기만 할 뿐 자는 순간이 없었다.여튼... 다시는 안 올 줄 알았는데 또 왔다. 서봉에!
세 시간 반이나 걸렸다.
기... 기어갔냐?이렇게나 천천히 올랐음에도 체력도 정신도 탈탈 털려버린 나샛기... 오늘은 틀렸다.
바람이 어찌나 강하게 부는지 하늘의 구름이 춤을 추듯 움직였다. 흘러가는 구름을 보니 다급함이 느껴졌다.
우리도 뭔가 급하게 움직여야 할 것 같았다.
거대한 자연재난을 눈으로 마주한 느낌.그 와중에 똥그랗고 똥그랗게 떠오른 해는 엄청 예뻤다.
바삐 움직이는 구름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자기 자리에서 반짝 나타났다 구름뒤로 숨었다를 반복했다.
남덕유산으로 가는 좁은 길로 들어섰다.
다행히 나무가 가려주는 길을 걸을 때는 바람을 느끼지 못했지만 바람 소리는 어마어마했다.
길을 가다 만나는 바람골, 보통 산행을 할 때는 땀을 식혀주는 너무너무 고마운 스팟인데 오늘은 바람골을 지나갈 때면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의 강풍과 추위를 피해 빨리 벗어나야 했다.
뽀에게 얘기했다.
남덕유산에서 삿갓재까지는 뷰가 없고 지겨운 길이다. 대신 그래서 바람이 불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을 제시했다.
서봉에서 호되게 바람이 떠밀리고는 완주는 이미 포기했다.
➕중탈로는 세 곳 1. 남덕유산에서 영각사 2. 삿갓재 대피소에서 하산 3. 안성탐방센터로 하산
➕우선은 삿갓재까지는 바람이 괜찮을 테니 걸어가 보고 강풍 상황을 보고 더 갈지 말지 결정
➕남덕유에서 하산해서 M님 차로 안성탐방센터로 이동하여 같이 동엽령에 오르고 거기서부터 다시 산행시작. 그래도 구천동 하산까지 하면 20km 임
결정은 남덕유산에 도착해서 하기로 했다.네 번째 남덕유산 정상석.
이렇게 늦은 시간에 도착한 것은 처음.
다시 트인 곳으로 나오자 바람이 몸을 떠밀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차에서 자느라 통화가 되지 않았던 M님에게 전화가 왔다.
안성탐방센터에서 함산을 하자는 내 제안에
👉🏻곤도라가 운행한다면 설천봉까지 함께 가고
👉🏻그렇지 않으면 동엽령에서 원점회귀
를 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영각탐방센터로 하산하기로 했다
삿갓재까지가 4.5km.
영각탐방센터까지는 3.5km.
어디로 가나 비슷할 것이라 생각했다.
삿갓재까지는 뷰도 없으니 안성으로 다시 올라서 좋아하는 덕유산의 뷰를 맘껏 만끽하며 걷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남덕유산까지의 등산로를 처음으로 밝을 때 걸어보았다.
이 길은 암흑 속에서 걸을 때도 보통이 아닐 것이라 생각했는데 밝은 하늘아래 걸어도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이런 길을 대체... 어떻게 오밤중에 걸은 것일까.
밤에 걷던 길을 낮에 걸을 일이 많아진 요즘.
걸을수록 신기하다.
이 길을 어둠 속에서 걸을 수 있는 깡을 다시 가질 수 있을까 싶은 마음.남덕유산 정상석에 오기 전에 들를 수 있는 작디작은 봉우리들.
대낮에 보니 더 아름답구나아래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바람이 잦아들었고 어느새 바람 한점 없는 더위가 찾아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후회가 밀려왔다.
종주가 할만한 것은 한번 고도를 뽝 쳐놓으면 이후에는 (그나마) 완만한 내리막과 오르막으로 이루어진 능선길을 걸으면 되기 때문인데...
그걸 버리고 바닥까지 내려와 다시 올라오겠다니..
아까는 너무 힘들어서 잠시 미쳤었나 보다.
영각사로 하산해 안성으로 다시 오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니.
후회해 봤자 이미 늦었고, M님이 우리를 위해 애써 운전을 해주고 있으니 남들은 하지 못할 경험을 이참에 해보자고.
좋은 코스만 골라서 오르는 산행을 해보자고.
함께 왔으니 함산 하면 좋지 뭐!
빠르게 태세전환 완료.곱게 쪽진 머리의 단정한 가르마 같은, 남덕유산에서 보이는 끝없이 펼쳐진 산맥들에 감탄사를 날렸다.
영각탐방센터까지의 하산길은 수월치 않았다.
오르는 것도 힘든 길이지만 내려가기도 만만치 않은 등산로.드디어 눈으로 보게 된 남덕유산의 계곡.
늘 물소리만 들으며 올랐었는데 드디어 실물영접생각보다 길어지는 하산길에 지치지 않는 에너자이저 뽀가 심정을 토로했다.
-안성탐방센터로 올라가더라도 곤도라 타고 하산하고 싶다고.
그러자고 했다.
아니면 우리도 그냥 동엽령까지만 갔다가 그 길로 다시 내려오자고.
그렇게 하산을 마무리했는데 영각탐방지원센터에 현수막이 걸려있다.
5월 9일부터 곤도라 점검으로 운행을 안 한다고.이렇게라도 알아서 다행이었다.
만약에 만약에 우리가 종주를 계속해 향적봉까지 가서 곤도라를 타려고 했는데 막상 운행을 안 한다고 하면.. 그때부터의 하산길은 지옥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M님과 함께 동엽령으로 올라서 향적봉까지 같는데 이 상황을 맞닥뜨린다면 그것은 정말 큰일이었다.
이 소식을 M님께 전했고
하산을 해버리자 어쩐지 의욕이 사라진 우리는 그냥 서울로 가기로 했다.
응?? 뜬금없이???
같이 지리산 강풍을 경험했던지라 동엽령까지 올라가서 굳이 강풍에 뺨을 내어주기 싫었다.그리고 고작 16km 산행했는데 1,300미터나 올랐으니... 오를 만큼 올랐다 싶었다.
어차피 종주 완주를 일찌감치 포기했으므로 어디서 멈추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늘 강조하지만! 포기는 빠를수록 좋다그래서 우리는 예약해 둔 숙소를 포기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산에 와서 등산은 하나도 안 하고 우리를 위해 운전만 한 M님에게 너무 미안했지만 이 복수는 다음기회에 제대로 챙겨서 해주기로 하고 세상에서 가장 편한 각자의 집에서 쉬기로 했다.
점점 자기와의 타협에 익숙해지는 나.
물러서는 것이 더 익숙해지는 것 같은 요즘.
완고하지 않게 물러버린 내가 나쁘지는 않다.
오늘의 빠른 산행포기에 큰 역할을 한 것은
강풍 예보.
그리고 지리산 때 윈디 예보를 기록으로 남겨 비교기 좋게 해 놓은 과거의 나.
그나저나 오늘은 컨디션이 안 좋았던 것인지 노화와 함께 체력이 바닥을 치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육구종주는 남덕유산까지 가면 힘든 것은 다 끝나고 꽃길만(?) 남은 셈인데, 그 힘든 액기스만 쏙쏙 뽑아 해버리고 하산한 우리가 좀 바보 같았던 하루.
할미봉하고 서봉은 앞으로 사는 동안 다시는 가고 싶지 않지만.. 단정하지는 말아야지. 인생 어찌 될지 모르니까.
🎯덕유산 액기스 쏙쏙🎯
✔️산행시간 : 6시간 41분
✔️산행거리 : 15.9km
✔️산행코스 : 육십령-할미봉-서봉-남덕유산-영각탐방지원센터
✔️덕유산을 가장 빡세게 즐기려면, 강려크하게 추천합니다🤣🤣🤣300x250'등산일기 Hiker_deer'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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