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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행일기] 공룡능선 우중산행
    등산일기 Hiker_deer 2024. 5. 25.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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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 5  24. 금요일!!!

    비 오는 날 휴가 내고 공룡능선 가는 사람, 누~~~~규?
    나야 나!!!!!

    지난주 드디어 설악이 열렸다.
    오픈런하려고 산봉우리 버스 예약을 했다가 줄 서서 앞사람 엉덩이만 바라보고 오르는 궁둥이산행은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져 취소하고 한 주 뒤, 그것도 평일. 느긋하고 여유롭게 올해의 첫 설악, 공룡능선을 찾기로 했다.

    진짜, 을매나 설렜게요
    평일 공룡도 그렇고 1박까지 하고 오는 산행이라 더더욱 여유 있게 공룡을 구석구석 누리고 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요런 거!

    요런 거!!

    요런 거!!!!

    이렇게 이렇게 즐기고 누리고 느끼고, 온몸으로 마음을 다해 공룡과 함께한 시간을 보내고 올 것이라고!
    작년 5 설악!
    올해는 6 설악 7 설악을 기다리며 첫걸음을 시작해 본다고.
    24년 설악과의 데이트, 첫 포문을 열어본다.

    하지만 가기 며칠 전 비 예보가 떴다.
    안내 산악회라면 취소라도 했겠는데 숙소까지 예약해 둔 산행이었던지라 빼박이다. 노빠꾸. 가야 한다.
    그저.. 설악의 거센 바람에, 설악의 변화무쌍한 기상에 비소식이, 구름들이 밀려가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어유.
    기상청 산악날씨도, 윈디도 비는 오전 6시에서 9시 사이이 내린다고 하니 3시간쯤 비 오는 거야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늦은 밤 서울에서 속초로 출발했다.
    하지만 소공원 주차장 도착하기 전부터 이슬비가 흩뿌리기 시작하더라...
    읭? 윈디는 과학이었는데..
    윈디.. 너...너마저.

    2시 15분.
    소공원에서 출발했다.
    비가 온다.
    다시 산악날씨를 확인해 보니 비 소식이 없어졌다.
    그래서 이 흩뿌리는 비가 곧 그치겠거니 생각했다.

    물 맺힌 꽃이 세상 청초하다.
    툭 치면 후드득 물을 쏟아낼 것 같은 아롱아롱 한 꽃잎들.
    오랜만에 만난 마등령은 역시 마등령이다.
    미스트같이 흩뿌리는 비에도 바위는 젖어가서 미끄러짐을 더욱 경계하며 올랐다.

    언제나 늘 엄청난 속도로 안정감 있게 산행을 하는 리딩님이 오늘은 감기가 심해 컨디션이 많이 안 좋았고 이런 날은 해가 떠도 뜨는지 마는지 모를 일출관람불가 날씨였기 때문에 애초에 일출보기는 접어두고 천천히 가자고 했다.
    넘나 좋은 것

    어차피 칠흑 같은 어둠. 비가 오나 안 오나 암 것도 안 보이고 예보에 따르면 비는 곧 그칠 테니 천천히 오르는 마등령~ 얼마나 좋게요.
    크게 힘들다는 느낌 없이 느릿느릿 산을 올랐다.

    마음의 의무감(?) 책임감(?) 하나 없이 가볍게 느리게 올라왔는데 고작 0.8km 왔다는 표지에는 잠시 무너진다.
    저기요!! 진짜 겁나 많이 올라왔는데요.. 고작 800m 라고요오오오오!????
    이거 실화냐며 ㅠㅠ
    벌써 세 번째 공룡인데도 참으로 현실감 떨어지는 마등령의 셈 법.

    정신을 다잡고 다시 산을 오른다
    오랜만에 시조 한가락이 머릿속에 맴돈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아니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대체 이걸 왜 아직까지 기억하는 거냐며.
    주입식 교육이 이렇게나 무서운 거다.
    여튼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는 마등령이니까 올라가자.

    사람이 정말 없었다.
    마등령을 이렇게나 고즈넉하게 올라가 보기도 처음이다.
    평일파워+궂은 날씨가 선사해 준 고요한 산행.

    여기 아시는 분!!!!!
    여기가 마등령 삼거리 오르기 전에 진짜 끝내주게 예쁜..
    그러니까 마등령을 오르고 올라 처음 뷰가 터지는, 대부분의 시즌에 해가 떠오를 즈음이거나 막 떠오른 이후라 붉게 물든 하늘이 설악산의 뾰족한 암봉을 비춰주어 여긴 어디? 난 누구? 감동이 휘몰아치는, 그래서 입을 떡 벌리고 바라보게 되는 바로 거기거든요.

    그런데 기억 속의 그 비경은 온데간데없이 이런 풍경이 맞아주더라고요.
    너무 어이가 없어 여러 장 찍으려다 얼른 폰을 내려놓았다.
    이런 풍경이 각인되면 안 돼!!

    작년에 이 사진을 찍었던 그 포인트에서 똑같이 아침만 먹었다.
    모든 게 생경했다.
    흰색 페인트를 두껍게 칠한 듯한 하늘과 빛을 받지 못해 병든 것 같은 암봉들이 우중충하게 서있다.

    처음 뵙겠습니다.

    진짜... 처음 만나는 공룡능선이었다.

    공룡능선 세 번째에 모든 것이 리셋되었다.
    마등령 삼거리가 마지막이다.
    중탈의 마지막 기회!
    기왕 왔으니 가고 싶기도 했고 과거의 기억으로 비추어 보아 아무것도 안 보이는 설악산행은 완전군장행군과 다를 게 없으므로 여기서 그만두고 싶기도 했다.

    그리하여 이 어려운 결정은 리딩님께 맡겼고
    결론은 노빠꾸!
    가는 거다!!!!

    예보에는 없는 비가 계속 내렸다.
    그래.. 산악 날씨는 그 산의 정상부를 기준으로 한댔으니까, 대청봉엔 비가 안 올 수 있어.
    그치만.. 이곳에도 안 뿌려주시면 얼마나 좋아 ㅠㅜ

    여기도 늘 사진찍는 포인트

    마등령 삼거리를 지나는데 비가 거세졌고 바람도 차가워졌다.
    옷을 갖춰 입고 다시 산행에 나선다

    우리 오늘 공룡능선 온다고, S언니가 공룡 머리띠까지 준비해 줬는데 ㅠㅠ
    쌔삥한 공룡이 비에 흠뻑 젖을까 걱정되어 사진만 찍고 가방에 고이 넣었고 쏟아지는 빗속에 전우애가 싹을 틔웠다.

    쯔기 앞에 숨겨진 비경이 어마어마하다.
    착한 사람 눈에만 보임

    비에 바람에 걸음을 빨리했다.
    공룡능선 걷는 재미는 봉우리 하나하나 넘어설 때마다 이름을 확인하고 고개를 한번 끄덕이는 건데(공룡을 탈 때는 힘든 것보다도 눈을 사로잡는 경치 때문에 안내표지의 km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저 재미난 이름들에 고개를 주억거릴 뿐) 이름을 읽어낼 틈도 없이 호다닥 걸음을 빨리했다.

    비 오는 중 천만다행이었던 것은 바람이 거세지는 않아서 추위에 떨지 않아도 되었다는 것.
    내가 살다 살다 공룡능선을 우중산행으로 올 줄이야.
    그리고 5월의 공룡능선에서 추위를 안 느낄 줄이야.
    역시 오래 살고 볼일이고 오래 산 타고 볼일이다.

    늘 사진을 찍던 곳들을 그냥 지나쳤지만 그래도 여긴 못 참지!
    하며 올라서 보지만, 사진에 대문짝만 하게 공룡능선이라고 쓰지 않으면 여기가 공룡능선인지 북한산인지 모를 일이다.

    북한산 아님!!

    북한산 아님!!!!

    공룡능선이라고오오오!!
    하늘은 하얀색이다.
    하늘빛은 흰빛이다.
    하루종일 블루스크린 펼쳐두고 사진을 찍 듯
    화이트스크린이 우직하게 변함없이 우리 뒤를 지켰다.
    근성 있는 설악산.
    -블루스크린이나 화이트스크린이나지~ 배경합성하기 좋오오오오은 사진이다.
    를 외치며 깔깔 웃었다.
    마등령 삼거리에서 노빠꾸를 외친 후, 울지 못할 바에야 웃기로 결심한 듯 고집 있는 비가 끝없이 쏟아졌고 한 치 앞도 가늠하기 힘든 무뚝뚝한 하늘을 뚫고 지나가야 했지만 공룡을 가득 채운 우리의 유쾌하고 즐거운 웃음소리는 공룡능선도 잊지 못할 것이다

    비에 젖어 잔뜩 미끄러워진 수직절벽 같은 길을 엉금엉금 내려가본다.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셋이 된다.
    당연한 거 아냐!?
    그런데 이런 것에도 웃음이 난다!

    조심해요!
    천천히~
    미끄러워요.
    서두르지 말고-
    서로를 위해 건네는 보살핌의 말들이 짙은 하얀색 하늘 위로 몽글몽글 색을 갖춰 다가오는 것 같다.
    하얀 도화지는 무엇이든 그려낼 수 있다.
    그래서 이날 공룡의 하얀 하늘은 우리의 웃음을, 우리의 마음을, 우리의 농담을, 우리의 절망을 다채로운 색으로 담아내주었다.

    장난 아니쥬? 유격훈련 중

    공룡능선에 필수인 장갑을 흠뻑 적셔버리는 안전지지대.
    3M 장갑을 제외한 다른 장갑은 물에 흠뻑 젖어 안전봉을 단단히 쥐지 못하고 주르륵 미끄러져버려 더더욱 집중해야 했다.
    장갑이 있으나 없으나 매 한 가지였던 공룡능선 우중산행.
    나중엔 축축하게 젖은 장갑이 무거워졌고 그리 춥지 않은 날씨였음에도 젖은 장갑 때문에 손이 시렸다.
    비 오는 날 공룡능선을 걷는다는 것은 이런 것-

    킹콩은 공룡에만 있으니까!
    오늘의 상징사진이라며 열심히 찍었다.

    킹공의 향한 갈망의 손짓!!
    이러다가 킹콩도 사라지는 거 아냐? 싶을 만큼 짙어지던 구름.

    저 뒤에 뭐가 있냐면...

    요고 있음!!!!

    다시 봐도 신기하게...
    날씨 하나로 이렇게나 다른 곳 같을 일인가.

    재난영화의 한 장면 같은 이곳도

    실은 이러함

    허탈함

    이라는 단어를 뼈에 새기고 뇌에 새긴 시간이었다.

    그래도.. 킹콩바위는 늘 사진 찍는 사람이 많아 줄을 서야 하는데 오늘은 아주 편안하게 우리끼리 즐기며 사진을 찍었다.
    나만의 킹콩❤
    울지 못해 웃는 게 아냐. 진짜야~ 진짜라구!

    킹콩을 보았으니 당분간은 또 짙은 흰구름 속을 걷게 될 터, 걸음이 빨라졌다.
    이쯤 되니 오늘 비가 그칠 것이라는 기대도 사라졌다.
    춥지 않으니 되었다.
    비가 내리니 안 그래도 깨끗한 설악산 공기가 상쾌하고 상콤하기까지 하다며 킁킁대며 깊게 들이마셔본다.

    1275봉이다.

    산행이 끝나간다.
    원래 날씨가 좋을 때 산행을 하면 이때쯤 아쉬움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벌써????
    벌써 끝나간다고??

    오늘은 유격훈련 온 것이니 아쉬움 따위 흰 하늘 뒤에 숨은 푸른 하늘에 숨겨두자.
    1275봉 밑에서 잠시 쉬며 비에 젖은 크림빵을 먹었다.
    포장 뜯은 지 얼마 안돼 축축이 젖어가던 크림빵.
    크림빵이 내 대신 울어주었다.

    에델바이스, 산솜다리를 발견했다.
    오늘 산행에서 꽤 많이 발견한 산솜다리

    평소 공룡능선을 걸으면 공룡 자체의 비경에 빠져 다른 것을 볼 여유가 없는데 오늘은 공룡능선 자체만 빼고 모든 것에 관심을 줄 수 있었다.
    그래서 야생화도 더 많아 보였고 산솜다리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산솜다리에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던데... 첫 번째 솜다리에게 빌었던 소원, 비 좀 그치게 해 주세요는 산행 끝나기 전까지 답을 못 받았다.
    리벤지 매치 때 이 소원 꼭 들어주셔야한다능~ 산솜다리님!!

    촛대바위에 왔어유.
    촛대바위 뒤에 어마어마한 풍경 숨겨놨거든요~ 다음 산행 때 꼭 찾아가세요

    촛대바위를 지나는 내리막은 늘 조심해야 하는데 오늘은 젖은 바위가 유난히 미끄러웠다.
    또다시 서로를 향한 마음을 건네며 안전지지대를 부여잡고 조심조심 한 걸음씩 내디뎠다.
    다 내려와 장갑을 벗어 쭉 짜내니 물이 후드득 쏟아진다.
    하아.. 이 장갑, 회생 가능할까?
    장갑을 집어삼킨 공룡능선의 빗줄기.

    이런 가파른 길도 사이좋게 줄지어 오른다.
    오늘의 산행은 평화 그 잡채.

    하늘만 성났지
    모든 것이 고요하고 평화로웠던 공룡능선.
    이 빗속을 걷는다는 유대감 하나로 마주치는 산객 모두가 유난히 반가웠고 찰나에 짠한 마음을 주고받았다

    야, 너두???

    의 느낌이랄까.

    어느 날 외계인이 쳐들어왔다.
    지구가 멸망했다.

    살아남은 소수의 지구인들은 황폐해진 지구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의 내레이션을 깔아도 전혀 위화감 없을 장면들을 하나씩 하나씩 쌓아보았다.

    얼핏 보이려고 하는 풍경에
    - 이제 좀 개려나봐!!!
    잠시 흥분했으나, 택도 없는 소리!!!

    설악산은 그 크기만큼이나 우직하게 끝까지 변치 않는 하얀 하늘과 촉촉한 빗방울을 선사해 주었다.

    유인원 아님, 2족보행 쌉 가능함!

    이제 정말 몇 개 안 남은 포토존.
    하나라도 건져보자고 어깨춤을 들썩들썩.

    그래봤자 북한산 아님 주의.

    신선봉이다!!
    진짜 마지막이네~

    쌍공룡 장착하고, 신선봉에서 오늘의 공룡능선을 마무리한다.
    공룡능선 산행을 위해 일부러 궂은날을 골라 북한산에 유격훈련 왔던 전우들과 기쁨을 나눴다.

    공룡탈출!
    다음번 공룡은 무조건 날씨 좋으리라!
    아주(!) 빠른 시간 내에 리벤쥐 산행을 약속하며 환한 웃음으로 자조적인 농담으로 공룡탈출을 축하했다.

    천불 나는 천불동 보다는 천 개의 불빛이 반짝이는 천불동이 더 좋은 나인데 비 오는 날의 천불동 하산은 어쩐지 천불이 나는 것 같았다.

    하산길에도 비가 계속 오니 오후 3시쯤엔 해가 반짝 난다는 일기예보도 틀렸다~ 싶었다.
    마주치는 산객 중에 오후의 햇살과 풍경을 기대하던 분들이 계셨는데
    - 응, 아니야. 오늘은 틀렸어요
    비도 그칠 기미가 안 보이고 하늘도 걷힐 기미가 없다.
    하산길의 궂은 날씨는 어쩐지 즐거웠다.

    못된 심보 같지만 하산 후 하늘이 파랗게 되돌아온다면 산 위에서 더 머물지 못하고 하산해 버린 우리가 너무 미울 것 같았거든.
    오늘은 하루종일 어둡거라
    오늘은 하루종일 흐리리라.
    오늘은 하루종일 젖어있을지니.

    우렁차게 쏟아지는 폭포는 오늘 하루종일 내린 비 덕분인가 싶었고, 끝끝내 열리지 않은 하늘아래서도 보석같이 빛나는 물빛은 감동적이었다.

    다음에 또 올 테니 아쉬움은 접어두자.
    살면서 공룡능선을 비 오는 날 탈 일이 어디 있겠어~ 좋~~~~은 경험 했다 치다.

    산신령이 흰 구름커튼을 걷고 나와 이것이 네 도끼냐? 물어보아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신비로운 설악산을 또 언제 만날 것이며

    다른데 둘러보지 않고 흐드러지게 핀 설악의 봄꽃에 집중할 산행을 또 언제 할 수 있겠어!
    산행하는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고
    자조에서 시작해 진심으로 유쾌하고 즐거웠던 시간이었던지라 공룡의 화려함과 설악의 위대함을 마주하지 못했더라도 충분히 아름다운 산행이었다.

    귀하디 귀한 비 오는 날의 공룡능선 사진을 잔뜩 얻었다.
    합성한 것처럼 화이트스크린이 깔린 공룡능선의 기록을 소중히 갈무리한다.

    기다려!
    다시 온다 I'll be back-

    🎯비 오는 공룡능선 오르기🎯
    ✔️ 산행거리 : 21km
    ✔️ 산행시간 : 11시간 50분
    ✔️ 산행코스 : 소공원-비선대-마등령삼거리-공룡능선-천불동계곡-비선대-소공원
    ✔️ 등산은 날씨가 8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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