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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일기] 지리산 거중코스등산일기 Hiker_deer 2024. 6. 3. 13:50반응형
2024. 06. 02 맑음!+똥바람
거림마을-세석대피소-세석평전-촛대봉-연하선경-연하봉-장터목대피소-천왕봉-중봉-천왕봉-중산리
지리산 거림-세석코스라고들 말한다.
혹자는 지리산 거중종주라고도 한다.
지리산은 종주지~!
라는 요상한 생각에 빠져 무조건 종주만 생각하던(물론 종주 너무 좋다. 오랜 시간, 긴 시간 좋아하는 지리산을 걷고 또 걸을 수 있으니!) 내가 시간제한이 있는 종주를 몇 번 해보고 그렇게 좋아하는 산들을 둘러보지도 즐기지도 못하고 행군하듯 걷기만... 빨리빨리 걷기만 하다 보니 종주 말고 오롯이 산을 즐기고 싶어졌다.
그렇다고 그렇게 멀~~~리까지 내려가서 짧게만 타고 다시 돌아오는 것은 만족스럽지 않으니 20km 내외의 코스를 찾게 되었고 나의 산행 스타일을 든든히 뒷바쳐줄 알레버스라는 수단도 생겼으니 요즘 산행은 그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다.
행벅!!!
그렇게 지난번 반야봉-뱀사골 코스를 다녀왔고 이번에 선택한 것은 거림세석 코스이다.
산으른들에게 거림세석코스가 지리산을 날로 먹을 수 있는 아주 좋은 코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다.
진짜 액기스만 모아놓은 코스니까 수월하게 다녀오려면 거림세석이라고!
종주할 때도 세석대피소 이후의 길이 가장 좋았으니 이 얼마나 꿀코스인가. 거저먹는 거지~!!!
(아... 나 거짓말했네. 실은 난 벽소령 대피소 이후의 길을 좋아한다 ㅋㅋㅋ 벽소령 대피소 나오면 바로 펼쳐지는 데크에서 바라보는 지리산 능선과 벽소령 대피소가 을매나 예쁘게요~!!)원래 일요일 산행은 잘 안 하려고 하는데 6월의 알레버스 일정표를 보고 산을 고르다 보니 지리산은 일요일에 가게 됐다.
토요일, 하루종일 집에서 고양이와 딩굴딩굴하다가 늘어져 버린 몸을 정말 애써 어르고 달래 추스르며 준비를 했다.
고양이처럼 늘어져 있으니 움직이려면 큰 결심이 필요하네.
토요일 늦은 밤의 지하철은 한가했고, 사당역도 금요일과는 달리 조용히 잠들어 가는 듯한 토요일 밤.
버스에 탔다.
하루종일 놀며 졸며 있었던지라 눈을 감았는데 잠이 안 온다. 잡생각만 한가득.
아.. 오늘 산행 망했나.......... ㅠㅠ
하던 중에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나 보다.
응, 그리고 꿀잠.
휴게소 안 내려요. 난 꿀잠.버스에 조명이 켜지고 눈을 떴다.
거림마을 도착!주차장 화장실에서 정비를 하고 산행을 시작했다.
알레버스 출발 전, 알레버스 사장님이 올라타셔서
-날씨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내일 정말 날씨가 좋을 거예요. 촛대봉에서 일출을 보실 수도 있을 것이니....
등등 하며 안내말씀을 해주셨다.
알레버스에서 사장님이 날씨 좋을 것이라 한 건 처음이라 엄청 설렜다.
지난주 공룡능선 찐곰탕을 빗속에 다녀온지라 이번주는 날씨가 좋다니 더더더더 두근거렸다.
그런데 내가 아는 촛대봉은 세석대피소 지나서 있는데,
거림마을에서 세석대피소 올라가는 길에 촛대봉이 또 있나?처음 가보는 코스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며 버스 사장님이 날씨 좋으니 일출 예쁠 것이라고 까지 했으니 웬만하면 일출은 봅시다!!라는 마음이었다.
사람들이 줄지어 올라갔다.
우리 버스에서는 어쩌다 보니 내가 제일 늦게 내렸는데 다른 버스들도 많이 왔었나 보다.
앞으로도 뒤로도 사람이 줄줄이 긴 줄이 늘어섰다.
하지만 그럼에도 길이 워낙 좋아서 시속 3.5km로 걷고 있었다.
기차놀이 산행에 이 속도 실화냐며
거림마을에서 세석대피소에 오르는 길은 감히 단언컨대
무박산행 어둠코스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 만큼 꽃길이다
헤드랜턴 빛에 의존하여 올라가는 게 전혀 힘들지 않고, 워낙에 인기 좋은 코스이고 국립공원이다 보니 길 정비는 엄청 잘되어 있으며 오르막이 참으로 완만하다. 약 7km 동안 고도 800m를 올리는 것이라 길이 가파를 수가 없다.
4km 정도 되면 살짝 깔딱 고개 느낌의 길이 나오는데 이 또한 매우 짧으며 이 깔딱 고개(라고 해도 되려나;;;)를 지나면 그야말로 꽃길꽃길 찐 꽃길이 펼쳐진다.
초반에는 거림마을 오르막에 있는 촛대봉에서 일출을 보자며 쉬지 않고 쭈욱 올라갔다.
출발이 3시 45분이었는데 일출이 5시 15분이랬다(올라가면서 다른 산객들이 하시는 말씀을 잘 주워 들었음 ㅋ)
우리에겐 1시간 반이 있다.
1시간 반을 쉬지 않고 쭈욱 올라갔다.
하지만 거림마을코스는 조망 터지는 곳이 없더라.아무리 올라도 일출을 볼만한 봉우리 같은 것이 안 나온다 ㅠㅠㅠㅠ
쉬지 않고 오르다가 5시 20분이 되었을 무렵 일출을 포기하고 멈추어 선크림을 바르고 정비를 했다.
이제 빨리 갈 필요가 없다. 빨리 가면 남는 건 뭐다? 내려와서 버스 시각 될 때까지의 길고 긴 기다림일 뿐.조금만 더 올랐으면 쉼터가 있고 그곳이 조망이 뚫려있긴 했지만 역시나 촛대봉은 아니었다ㅋ
아마 다음에 한번 더 간다면 쉼터에서의 일출을 노리고 갈 것 같다.
물론 일출이 빠른 여름엔 안될 것 같고 일출 시간이 좀 늦어지는 어느 시기쯤에... 도전!쉼터를 지나 세석대피소까지는 매우 매우 완만한 길이다.
1400 고지에 이렇게 완만한 길이 웬 말이야~!마음의 평화 몸의 편안함을 마음껏 누리며 세석대피소 도착, 오전 6시.
성백종주 2번, 성중종주 1번, 그리고 오늘 네 번째 세석대피소. 가장 마음 편하고 느긋하게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첫 번째 세석대피소다.- 세석대피소에서 완전 오래 있다 갈 거야
라며 도착했지만 이게 웬일!
바람이 미쳤다.
세석대피소 테이블에서 보는 지리산이 얼마나 예쁜데 ㅠㅠㅠㅠ제대로 볼 생각도 못하고 대피소 실내로 몸을 피했다.
그리고 번잡하고 음식냄새로 가득 찬, 딱히 오래 있고 싶지 않은 공기를 가진 곳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나왔다.
세석대피소... 오래 머물지 못했지만 내 마음만은 느긋했다. 완죤 여유로웠다. 바람 좀 덜 부는 날 느긋하게 머물다 갈게.대피소에서 나오니 정말 추웠다.
지난주까지 계속 패딩을 챙기고 다니다 하필 오늘 놓고 왔는데 오늘이 딱 패딩입을 날씨였다.
패딩을 빼놓는 대신 아주 약간 도톰한 바람막이를 챙겨 와서 그나마 다행인 건가.
뽀오는 플리스에 바막을, 나는 바람막이를 입고 산행을 했다.
바람이 차고 거셌지만 계속 걸으니 괜찮았다.지난 성중종주때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던 세석평전에 도착~!
꺅!!!!!!!!!!
나 여기서 사진 완전 많이 찍을 거다!!!!
라며 올라왔는데 사진은 웬 말.
사진 찍으러 바위에 올라갔다 날려갈 뻔했다.바람이 몸을 때리면 휘청임보다 먼저 소름 돋는 공포가 온몸을 가득 채워 잠시 멈칫한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쫓기듯 세석평전을 떠났다.
그.....그래도 예뻤다. 나의 세석평전!종주할 때 세석대피소에서 장터목까지의 길이 가장 힘들었다.
좁은 길에 커다란 바위가 턱턱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고 다리를 한껏 찢어 올리고 두 손 두 발을 오롯이 바위에 내어주어야 오를 수 있었던 길.그런 길이었는데 오늘은 이렇게 편할 수가 있나.
힘든 길이 아니었고 그냥 내 몸이 힘든 상태였던 것이다.
이럴 수가!!!!!!!!!!!!!아주 수월하게 길을 걸어 나갔다.
그리고 연하평전이 나타났다.바람이 미친 듯이 불었지만 보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평온하고 아름다워 보였던 세석평전.
아.. 바람소리는 잠시 꺼두세요.
바람에 흔들려서 거의 누워버릴 듯한 여린 나무들도 잠시 시야에서 배재해 주세요이름부터 신비롭고 아름다운 연하선경.
작년 성중종주 때 우박이 쏟아지고 한 치 앞도 가늠할 수 없는 안개와 구름 속에 자취를 감추었던 연하선경이 너무나 아름답고 짜릿하게 펼쳐졌다.신나서 겅중겅중 뛰다가 이내 발길을 멈춘다.
이렇게 예쁜 길을 후다닥 지나칠 순 없잖아바람아, 니가 아무리 나를 때려봐라. 내가 빨리 지나가나~ 하나하나 다 둘러보고 바람도 기꺼이 맞아줄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하선경의 길은 짧기만 했고, 연하봉에 도착하여 바위를 타고 올랐다.
와.... 연하선경의 오솔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돌 타기를 무서워하는 뽀오를 불러올렸다.
사람도 없고 한적한 연하선경의 길을 보며 간식을 먹고 쉬어가자며 둘이 자리를 잡았는데, 거센 바람에 우리의 간식타임이 종료 돼버렸다.
목줄로 한껏 조여맨 내 모자가 바람에 날아가버렸다헐레벌떡 내려와 둘러보니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모자.
다행히 멀리 가지 않았다 ㅠㅠ 돌을 타고 기어올라가 스틱으로 모자를 구출했다.
등산스틱, 이렇게나 유용합니다!연하봉에서 장터목 대피소까지는 금방이다.
종주할 때면 그렇게 길고 길던 길이 어찌나 금세 끝나버리는지, 어찌나 수월하고 편안한 길인지...
종주코스에 있던 모든 길을 처음 걷는 느낌이었다.
우리가 걷는 지리산은 참 조용하고 사람이 없었다.
종주하는 사람들이 오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었고 백무동, 중산리에서 천왕봉을 가려는 사람들은 걷지 않는 길이었다.마주치는 사람은 대부분 대피소에서 1박 하고 길을 떠나시는 분들 뿐.
그래서 다들 느긋했다.
종주할 때면 함께 종주하는 사람들이 서로 전쟁하듯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속도를 낸다. 이렇게 느긋하게 걷다 보니 굳이 그럴 일인가 싶게 느껴지는 과거의 시간들 ㅎㅎ.8시 20분. 장터목 대피소 도착.
어랏, 생각보다 사람이 많다.
실은 오늘의 목표는 천왕봉 정상석에서 미니미 사진 찍기였는데, 장터목 대피소에 사람이 많은 것을 보니 오늘도 틀렸구나 싶었다 ㅎㅎ
세석대피소 보다는 바람이 덜해 밖에서 잠시 쉬어갈까 했는데 화장실 냄새가 미친 듯이 밀려온다.
하는 수 없이 실내로 들어가 간식을 먹었다.
그리고 화장실에 들렀는데....
내가 가본 대피소 화장실 중 가장 더러웠다 ㅠㅠ
장터목 화장실에 와본 게 벌써 몇 번째인데 오늘은 정말 심각했다.
님들아... 제발... 안내문구에 있는 대로 화장실을 사용해 주시면 안 될까요 ㅠㅠㅠㅠ
구토가 나올 정도로 더러운 화장실에서 나와 이걸 청소하시는 분들 기분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 잠시 마음이 먹먹했다.잠시 쉬어가는 지리산 거림코스 화장실 정보
- 세석대피소 화장실 : 수세식으로 공사가 완료되어 냄새 없이 쾌적하고 깨끗한 화장실 이용 가능
- 장터목대피소 화장실 : 옛날 대피소 화장실 그대로인데... 이날은 정말 재난 수준이었음
- 로터리대피소 화장실 : 수세식으로 공사 중화장실 보고 놀란 가슴 토닥토닥 다독이고 천왕봉을 향해 고고고!
8시 47분. 천왕봉 계단에 발을 살포시 올려본다.
장터목에서 천왕봉 가는 길은 가장 신기하고 재미나고 힘든 길이다.모든 사람이 3보 1배 하듯 느릿느릿 거북이처럼 가는 길.
이보다 더한 고행길은 없습니다 싶을 만큼 모든 사람이 지치고 또 지쳐서 느릿느릿 세상의 모든 시름과 고통을 다 짊어지고 가는 듯한 길.
그리하여 서로에게 짠한 친밀감이 스며드는 길.그런데 오늘은 이 길이 예쁘고 신나기만 했다.
장터목에서 천왕봉까지 이렇게 수월한 길이었어?다시 한번 내 몸을 한계까지 몰아붙이지 말자고 웅얼웅얼 다짐해 본다.
(하지만 또 언제 불끈 종주욕구가 치밀어 오를지 모르는 요망한 마음이라, 대놓고 크게 다짐은 못하겠다 ㅎㅎ)예쁘다 예뻐~ 곳곳에서 사진을 찍고 감탄하고 사방을 둘러싼 지리산 능선들을 바라보며 산책하듯 걸었다.
50분 만에 도착한 천왕봉엔 엄청난 인파는 아니지만 미니미 쪼꼬미 사진을 찍기엔 무리일듯한 풍경이었다.
포기는 빠르게!!!!
빠른 포기를 하고 정상석과 다정하게 인증사진만을 남기고 천왕봉 주변을 둘러본다.바람이 세게 불어서인지 날벌레가 없는 평화로운 지리산 정상.
잠시 머물러 가기엔 너무 소란스럽고 복잡해서 느긋하게 걸으며 지리산 최고봉에서의 사방팔방을 다 둘러보고 눈에 담고 내려왔다.
알레버스타고 지리산 거림코스를 간다고 하니 먼저 다녀온 J오빠가 천왕봉에서 중봉을 다녀오라고 했다.
어차피 시간 남을 거니까 꼭 한번 다녀와보라고.
그래서 오르는 내내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바람이 미친 듯이 불어오면 - 너무 춥겠다, 가지 말자~ 했다가 바람이 자고 쾌청한 하늘 아래 걸을 때면 - 중봉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라며 오락가락하며 결정을 못하고 천왕봉까지 온 우리.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은 어디서나 길을 잃는 길치미!
어디서나 알바를 하는 알바몬 게이지!
하지만 천왕봉을 떠나려니 9시 55분. 우리 버스는 4시....
6시간이나 차고 넘치게 남은 시간.
견딜만한 바람과 쾌청한 하늘.
가보자!
무엇보다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우리에겐 선택지가 필요했다.지리산 등산로 안내도를 몇 번을 살펴보고서도 결국 갈림길에서 쉬고 계신 산객에 길을 묻는다.
대원사 가는 길이라는 답변을 듣고 신바람 나게 걸었다.
너덜터덜 돌길을 쭉 내려가다 보니 바람이 사라졌다.
지난번에도 느낀 건데 지리산의 날씨는 천왕봉을 기점으로 너무나도 변화무쌍하다.
종주할 때 우박에 눈까지 내리던 천왕봉까지의 날씨, 그리고 천왕봉을 넘어서 중산리 하산길에 들어서자 비조차 오지 않았던 마른땅과 파랗게 빛나던 하늘.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천왕봉에서 내려와 중봉 쪽으로 가니 바람은커녕 공기가 후끈하다.
이곳은 여름이다.
아마 중산리 하산길도 마찬가지일꺼야~ 라며 깔깔대고 걸었는데 역시나였다.
중산리 하산길도 바람 없이 평화로운 초여름의 등산로였지.태백산맥의 영향을 받아 기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높새바람만이 아니었다. 지리산에도 명명된 무엇인가는 없지만 천왕봉을 넘지 못하는 날씨요소들이 천왕봉을 기점으로 이곳 저곳에 다른 환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중봉 가는 길.
장터목대피소와 천왕봉에서 소란스러움을 겪고 난지라 아무도 없는 좁은 길을 걷는 것이 너무나도 행복했다.천왕봉에서 중봉까지는 1.24km. J오빠는 왕복 1시간이면 다녀온다고 했으니 우리는 1시간 반이면 넉넉히 다녀오겠거니 했다.
좁은 길이라 산객이 많으면 매우 부대낄 것 같은 길이었다.
운 좋게 낚아챈 한적함과 평화로움을 마음껏 즐겼다.군사지역 철조망 같기도 하고 미친 X 산발 같기도 한 나무군락이 넓게 펼쳐져있어 한참을 웃었다.
그리고 20분 만에 중봉 도착.
생각보다 너무 가까워서 놀랐다.
이 길을 지나서 한번 더 가야 할 줄 알았는데 덩그러니 나타나버린 중봉.
길치에 방향치여서 산을 그렇게 다녔음에도 저 봉우리가 무엇이고 우리가 걸어온 길이 저기이고 이런 걸 전혀 가늠하지 못하는데 이번만은 내가!!
저것이 천왕봉!!!!!!!!!!!!!이라고 당당히 가려낼 수 있었다(대~~단하다. 가문의 영광이다!)
잠시 쉬어가자고 했다.
우린 이제 또 매번 알레버스를 탈 때마다 직면하는 문제를 또다시 해결해야 했다.
차고 넘치는 시간.
타임 매니지먼트가 시급하다.따로 식사거리를 준비하지 않고 창억떡 6개를 챙겨 온 산행이었다. 앞서 쉴 때마다 한 개, 두 개를 먹은 지라 조금 배가 고파 중봉에서도 잠시 쉬며 요기를 했다.
중봉 안내표지 뒤에 널찍한 바위가 있어 뽀와 함께 올라갔다.
치밭목대피소가 멀리 내려다보이고 분명 웅장하고 장엄할 테지만 내려다보이 귀여워 보이는 올망졸망한 지리산맥이 눈을 가득 채운다.눈 아래로 펼쳐지는 넓은 산줄기를 볼 때마다 핫초코에 떠있는 동글동글한 마쉬맬로우가 떠올라 마음이 몽글몽글 달콤해진다.
간식을 먹으며 경치를 감상하는데 까마귀가 찾아왔다.
예전에 오대산에서 보고 반했던 보슬보슬한 까마귀 정수리를 또 볼 수 있을 만큼 가까이 다가온 까마귀!
- 너, 혹시 내 떡 노리는 거야?잠시 흠칫했다.
나중에 두 마리가 한 번에 찾아와 까악 까악 거리니 진짜 내 간식 뺏어가려고 하나(호주 갈매기에게 많이 당해본 1인) 벌렁벌렁했다. 실은 그 바위가 넓긴 했지만 까마귀에게 공격당해 허둥지둥하게 되면 위험할 바위여서 쫄아버린 쫄보는 엉금엉금 바위를 다시 내려왔다.천왕봉으로 돌아가는 길엔 산객들을 좀 만났다.
다들 의외의 시간에 천왕봉 쪽으로 가는 우리를 신기해했다.
어디서 오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고 같은 질문을 돌려드리니
백무동이나 중산리에서 천왕봉을 찍고 대원사로 내려가시는 분들이었다.
오늘 걸어보니 거림코스가 너무 맘에 들어 나중에 우리도 거대종주 한번 해볼까~ 이야기를 나눴다.
이것 봐라. 종주 안 한다고, 내 몸을 극한으로 내모는 종주는 하지 않겠다고 조금 전에 다짐해 놓고 또 "종주"를 갖다 붙이고 있다.신뢰할 수 없는 갈대 같은 마음.
간식 먹고 느긋하게 앉아 풍경을 즐기고 왔음에도 1시간 10분이 걸렸다.
거림코스로 천왕봉 가시는 분들은 시간여유 있으시면 중봉도 꼭 들렀다오세요~!
아주 가까이로 보이는 천왕봉이 매력적이고 눈 아래로 펼쳐지는 대원사까지의 넓디넓은 지리산의 풍경이 평화를 선사해 주는 곳.
화대종주 할 때 아니면 딱히 갈 일 없는 코스라 아마도 평생 안 가지 싶었는데 이렇게도 잠시 걸어볼 수 있는 대원사 가는 길의 초입.
멀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은 길이니 잠시 여유를 갖고 다녀오면 좋을 곳.
그렇게 마음속에 중봉을 새기고 다시 천왕봉으로 돌아갔다.스틱을 꺼내고 무릎보호대를 하고 하산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했다.
중산리 하산은 지난 성중종주 때가 처음이었는데 버스시간에 쫓겨 구르듯 하산을 했다.
그렇게 2시간 만에 하산을 완료하면서 정말 고생을 했으니 오늘은 천천히 내려가자고, 우리가 만수르만큼 시간부자 아니겠냐며!
돌 하나하나를 천천히 짚으며 내려왔다.
작년에 급하게 내려올 때는 그렇게 거지 같던 하산길이 꽤나 괜찮았다.
물론 너덜터덜을 유발하는 돌길이 대부분이었지만 그것도 하나하나 짚으며 내려오면 될 일이다.
- 누가 중산리 하산길 구리댔어?
깔깔 웃으며 내려왔다.산에서 제일 듣기 싫은 게 큰 음악과 베어벨인데 오늘은 베어벨이 유난히 많았다.
지리산이라 그런가.... 지리산 반달곰이유?
여하튼... 신경을 긁는 베어벨님들은 다들 앞서 보내드리고 우린 정말 느긋하게 내려왔다.
중산리 하산길 초반은 엄청난 땡볕이었는데 그 땡볕 속을 올라오시는 분들이 대놓고
-부럽습니다~~~
를 연발하셨고 우리 역시 이런 땡볕 아래 등산하시려면 엄청 힘드시겠다고 힘내시라는 응원을 건넸다.쉬엄쉬엄 느긋하게 내려오는 중산리 하산길.
마음 편하고 급한 거 하나 없었기에 조용하고 차분히 걸었다.
그런 것과는 별개로 정말 길긴 길더라.
너어어어어어무 길더라.
마음이 급한 작년엔 거의 뛰다시피 내려오고 시간의 압박 말고는 머릿속에 아무것도 없어서 몰랐는데
오늘은 정말 긴 하산길. 내려오다 보니 머릿속이 돌밭이 되는 것 같았다.1km 정도를 남기고 조용히 하산에만 집중을 하던 뽀오와 대화를 나눴다.
- 내가 내려오기 전에 기록을 봤는데 16.6km, 천왕봉에서 하산 시작시간은 11시 15분이었거든. 그런데 10km 이상 찍혀있을 것 같아. 시간은 3시간 정도 지나지 않았을까
둘 다 고개를 주억거리며 진짜 길다고 정말 오래 걸린 것 같다며 걸었다.
그리고 다 내려와 확인해 보니 22.6km. 1시 20분.
구르듯 달려 하산했을 때 2시간 걸렸는데 세상 느긋하게 내려온 오늘도 2시간 걸렸다.
게다가 거리도 10km는 개뿔. 6km였네.
이런 길을 우리는 마치 10km를 걷듯, 3시간은 더 걸린 듯 내려왔다.
하산길의 난이도와는 별개로 정말 정말 지겨운 길이었다.
천불동이나 오대산 소금강과 달리 눈을 시원하게 하는 계곡조차 없이 그냥 마냥 걸어야 하는 중산리 하산길.
중산리 하산길의 악명은 여기서 온 것이었구나.
깊은 깨달음
중산리 하산은 이래 하나 저래하나 2시간에서 2시간 10분 정도 걸린다는 소중한 데이터를 남기며 오늘의 산행을 마무리해본다.
딱히 갈 데가 없으면 아무 때라도 좋으니 거림코스를 걸어보자며! 미래의 재방문, 재재방문의 약속을 남겨두고 내 마음속의 지리산 최고코스 타이틀을 선사합니다.
🎯지리산 거림코스🎯
✔️ 산행거리 : 22.6km
✔️ 산행시간 : 9시간 40분
✔️산행코스 : 거림마을-세석대피소-세석평전-촛대봉-연하선경-연하봉-장터목대피소-천왕봉-중봉-천왕봉-중산리탐방안내소
✔️일출 스팟이 좀 아쉽지만 일출은 이제 그만 봐도 되는 산꼬맹이! 힘들지 않게 지리산 좋은 곳 쓰윽 둘러볼 수 있는 최고의 코스! 시간 되시면 중봉은 꼭 다녀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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