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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산일기] 영남알프스-간월산 환종주
    등산일기 Hiker_deer 2024. 10. 6.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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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 10. 5.


    영남알스프 빼기 간월산 환종주!

    첫 영남알프스는 1박으로 가서 반종주를 두 번 했었다.
    오늘은 무박으로 한 번에 돈다!!
    인 줄 알았는데 공지를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거였네 ㅋ
    환종주에서 간월산이 빠진 종주였다.
    우야든 둥 능선이 주를 이루는 영남알프스이니 환종주도 할만하겠지.
    나, 한때 종주 꿈나무가 되고 싶었잖아.

    비록 내가 여름 내내 3개월 산행을 쉬었더라도, 장거리 산행을 아주 오래오래 안 했더라도 예쁘디예쁘고 순하디 순한 영남알프스니까 잘 다녀올 수 있을 거야
    라는 마음과 더불어
    좋아하는 만큼 여러 번 다녀와서 지리를 잘 알고 있으니 정 안되면 어디서든 중탈 해서 택시를 탈 생각으로 단단히 중무장하고 참석했다.

    새벽안개가 자욱한 구미휴게소.

    정말 오랜만의 무박산행이라 참 새삼스러운 새벽녘의 고속도로 휴게소.
    휴게소에서 무려 30분이나 쉬는 시간을 주셔서 여유 있게 이른 아침식사(라고 하기엔 새벽 2시;;)를 했다. 준비해 간 카야토스트를 맛나게 우걱우걱.

    그리고 버스에 타서 또 기절하듯 잠들었다.
    배내고개를 올라가며 덜컬덜컹 흔들흔들 격하게 춤추는 버스 때문에 눈을 떴다.
    거의 다 와가네.
    다들 부스럭부스럭 신발을 신고 준비를 했다.
    바쁘다 바빠 한국사회.
    도착해서 하면 될 일인데 비틀비틀 구불구불 험난한 길을 가는 버스 안에서 다들 대단한 가운데 나도 동참하여 등산화를 신고 끈을 묶었다.
    그러다가 어지럼증이 밀려오면 눈을 감고 의자에 기댔다 멀미.... 나 죽어.....
    그럼에도 혹시나 나들 일찍 준비하고 나서는데 나만 홀로 늦어져 폐를 끼칠까 봐 밀려오는 멀미에 이를 악물고 호흡을 다잡으며 준비를 했다.

    물론.. 내 우려와 상관없이 버스가 도착하고 나서도 20분 이상의 준비시간이 있었다.
    멀미에 고생하지 말고 버스에서 내려서해도 됐을 텐데... 아쉬운 마음.

    짐을 다 챙겨 내린 후 웅성웅성 우왕좌왕 출발을 위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에너지젤을 챙겨 먹었다.
    아침도 먹었고 파워젤도 먹었으니 준비 끝났다.

    오전 4시 반.
    출발.
    28명이 긴 코스를
    19명이 짧은 코스(반종주)를 하게 된다.

    긴 코스인 나는 스물여덟 명의 사람사이에 껴서 산을 올랐다. 배내고개에서 능동산 가는 길이 3년 만인 것 같다.
    능동산만 지나면 꽃길이 펼쳐진다는 기억이 생생한데... 능동산까지가 이렇게 힘들었었나 싶었다.
    거칠고 가파른 오르막과 끝없는 계단의 연속이었다.
    계단이 끝나면 한숨 돌려야지라는 생각을 하지만 계단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이런 계단을 몇 번을 지나면 능동산이 나온다.
    출발당시 스물여덟 명이 촘촘히 늘어서 걸었었는데 어느새 나 혼자만 걷고 있었다.
    인사는 나누지만 함께 가자!! 할 정도로 친분이 있는 사람이 없는지라 혼자 컨디션을 조절해 가며 걸을 수 있었다.
    짧게 쉬고 이동하기를 계속.
    능동산에 도착해 보니 8명 정도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다들 사진 찍느라 바쁜 와중에 정상석 사진만 찍고 얼른 길을 나섰다.

    역시나 속도가 보통이 아닌 사람들이 대부분인지라 그들보다 체력이 안 되는 내가 정해진 시간 내에 완주하려면 조금이라도 빨리 출발해서 느림을 보충해야 했다.

    능동산에서 내려가는 길은 정말 험하다.
    능동산에서 일찍 출발했음에도 뒤따라 오는 여러 명에게 길을 내주고 조심조심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아직 갈비뼈가 완치되지 않아 절대 넘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그리하여 앞뒤를 비춰주는 헤드랜턴도 없이 조용한 산길을 나의 헤드랜턴 불빛에만 의존하며 조심스럽게 걸어 능동산 하산을 완료했다.

    혼자 걷는 어둠 속의 산길이 무섭지 않았던 것은 안 보이지만 저 앞 어딘가에 그리고 뒤 어딘가에 함께 온 동무들이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리고 홀로 걷는 시간이 많았던 오늘의 종주로 안내산악회 버스로 홀로 무박산행을 갈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었다.

    능동산을 내려오면 꽤 긴 임도를 걸어야 한다.
    처음 영남알프스 왔을 때 힘겨운 능동산을 뒤로하고 임도를 만나 신나서 뛰었던 게 기억난다.
    오늘도 어두운 길을 신나게 걸었다.
    어둠 속에 자박자박 길을 걷는 발소리, 찌그덕찌그덕 배낭소리(에어리어스 종특), 규칙적인 호흡소리가 가득하다.
    평화로웠다.
    세상만사 심란한 일들을 다 잊을 수 있는 고요함과 평온함에 행복했다.

    임도길에서 빠른 속도로 걸어 오르막을 천천히 갈 수 있는 여유를 벌고 싶었다.
    그러다 하늘을 보니 별이 가득하다.
    잠시 사진을 찍는데 금세 누군가가 바로 뒤에 나타났지만 내가 사진을 찍는 것을 보고 헤드랜턴을 꺼주셨다.
    이런 센스라니!!!!

    어둠 속이라 누구신지 인사를 건네지도 못하고 그분을 앞으로 보냈다.

    또다시 어둠 속을 혼자 걸었다.
    나... 어둠 속에서 혼자 걷는 거 좋아하네!!!
    이렇게 또 몰랐던 나를 발견하고요~

    신나게 (구) 샘물상회 방향으로 걷는다.
    발걸음이 가볍다.
    능동산에 오르며 헐떡였던 과거는 이미 잊혔다.

    저 멀리 동이 터오기 시작한다.
    날씨!!!! 최고네!!!

    점점 하늘이 밝아오고 있었다.
    여전히 길 위에는 나 혼자다.
    완만한 임도를 신나게 걸으며 생각했다.
    오늘 산행이 36km인데 실은 평지를 36km 걷기도 쉽지 않은 것 아닌가. 그런데 등산 36km라니.. 이제 이런 산행은 그만해야지 싶었다.
    라는 생각은 작년이 성중종주 마치고도 했었잖아!!!!
    그런데 나는 또 길 위에 섰네.

    점점 더 하늘이 밝아져 왔고 청명함이 더해졌다.

    이정표가 나타났다.
    천황산에 가야 하니 당연히 천황재로 가야지.
    이정표를 발견하고 길을 찾아내는 스스로를 뿌듯해하며 천황재 방향으로 발길을 돌리는데 뒤에서 누가 부른다.
    -★★이야???
    -네????
    -★★아니에요?
    자세히 보니 아는 사람이다.
    -@@언니세요??? 저 oo이에요!
    라며 인사를 건네니 언니는 오랜만이라는 인사를 전하며 그 길로 가면 안 된다고 했다.
    눼!!???????

    천황재로 가면 진짜 천황재로 가게 된단다.
    케이블카 방향으로 가야 천황산에 오를 수 있다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처음 왔을 때도 이런 일이 있었건 것 같다.
    그때는 조금 가다가 알아채고 다시 되돌아갔을 것이다.

    세상에!!! 언니 너무 고마워요!!! 언니 아니었음 어쩔 뻔했어요
    그렇게 S언니는 길 잃을 뻔했던 나를 주워 천황산까지 함께 걸었다.
    무릎인대 부상으로 두 달 만에 산에 왔다는 언니도 평지에서 속도를 내어 산행의 느림을 만회하려고 했단다.

    오늘은 해가 떠오르기 전 예고가 아주 화려했다.
    보통은 일출을 보기 전까지 숲 속에 있기 마련이라 해뜨기 전의 하늘을 보는 것이 어려운데 천황산까지의 길은 하늘이 열린 곳이 많아 화려한 일출 전 하늘을 실컷 감상할 수 있었다.

    영남알프스를 손바닥 들여다보듯 잘 아는 언니는 조금만 더 올라가면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다며 조금 속도를 내보자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천황산 정상까지 이어지는 데크길이 시작되기 직전의 평평한 스팟에서 일출을 맞이할 수 있었다.

    아름다운 일출 쇼!!!
    산행 쉬는 동안 일출 볼일이 없었으니 이 또한 오랜만이다.

    사방을 둘러봐도 아름다움 그 잡채.

    한쪽엔 화려한 일출을 다른 한쪽엔 소복한 운해를 준비해 봤어.
    예쁜 것을 한 아름 모아 보여주는 영남알프스.

    이쪽저쪽, 돌아가며 사진을 찍는 동안 일행들이 우리를 스쳐 지나갔다.
    일출을 준비했으니 보고 가라는 우리의 말에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빠른 속도로 올라가시던 분들.
    이틀 전 다녀온 오대산에서 덜덜 떨었던 기억으로 챙긴 경량패딩이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언니와 나는 한참 사진을 찍고 영남알프스에서 가장 예쁜 길 중 하나인 천황산 정상까지의 오솔길을 걸었다.

    예뻐서 난리 남!!!
    아직 활짝 피지 않은 갈대.
    이미 예쁨!!
    다음 주에는 더 예쁠 예정.

    뒤를 돌아봐도 예쁘고 바람이 아무리 불어도 소프트쉘, 경량패딩, 하드쉘로 무장한 나는 거뜬하지.
    거센 바람에도 아름다운 풍경을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도록 바리바리 짐을 싼 나, 아주 칭찬해!!

    오늘의 운해는 누군가 정성스럽게 차곡차곡 채워 넣은 것처럼 정갈했다.

    단정하고 정갈한 느낌의 운해.

    떠오르는 아침햇살에 더욱더 황금빛으로 일렁이는 억새.
    오늘 산행은 여기서 마무리해도 될 정도로 멋진 풍경을 실컷 봤다.

    천황산 정상석

    천황산 정상석과의 사진은 역광 가득.
    좋네 좋아!!!!

    천황산에서 내려가면 천황재이다.
    나는 S언니가 주워줘서 길을 잃지 않고 제대로 된 코스를 걸을 수 있었지만 일행 중 꽤 많은 사람들이 천황산 정상에 들르지 못하고 천황재로 바로 갔다고 한다.

    이 길을 따라 내려가면 천황재.

    여기저기 사진 찍을 곳이 많은 천황재 가는 길.
    바람이 거세게 불어와 그중 하나만 골라 잠시 멈춤. 사진을 남겼다.
    이게... 거의 마지막 사진 되시겠다.

    그 이후엔 홀로 걸은 시간이 많기도 했고 함께 걸었어도 사진 찍어달라고 하기엔 부끄러운 오늘 처음 봤어요! 인 동무들이었어서, 그리고 걷기에 바빠서 주로 풍경사진만 빠르게 찍고 지나쳤다.

    천황재까지 가는 길이 참으로 아름다워, 이때의 눈호강으로 오늘 종주를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천황재에서 아침식를 했다.
    매몰찬 바람이 쉴 새 없이 몸을 때려댔지만 지금 안 먹으면 언제???
    라는 생각으로 꾸역꾸역 샌드위치를 씹어 넘겼다.
    춥다고 식사를 안 하고 길을 떠난 동무들도 있단다.
    나도 서둘러 아침식사를 마치고 재약산으로 출발했다.

    재약산까지 가는 길은 사족보행이 필요한 길임을 기억하고 있기에 스틱을 접어서 넣고 길을 나섰다(여러 번 오는 산은 이런 기억이 산행을 도와주어 참 좋다!!)
    정상 도착하기 전 늘 사진을 찍던 뻥 뚫린 곳. 그곳에도 잠시 들러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운해를 잠시 감상하는 여유를 갖는다.

    꽤 길고 험하다고 생각했던 천황재에서 재약산까지의 길이 의외로 수월했다.
    벌써 다 왔어?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재약산 정상에 이렇게 사람이 적은 것도 처음.
    올 때마다 저 좁은 곳에 사람이 바글바글 했어서 정상석과 사진을 찍어도 사방에 사람들이 함께 찍혔었는데 오늘은 "정상석과 나"만의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재약산을 내려가 걸어야 하는 사자평을 내려다본다.
    재약산 정상에서 꽤 많은 인원이 조우했다.
    다들 선뜻 길을 나서지 못했던 것은 남은 코스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어서였다.
    이윽고 오늘의 대장님이 도착하셨고 대략적인 코스 설명을 들었다.
    그중 유난히 코스 설명에 대해 상세 부가설명을 덧 붙이시는 분이 계셨다.
    찾았다! 나의 길잡이!
    길치라면 눈치라도 있어야지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사진을 찍거나 수다를 나누고 있을 때 그분이 길을 나섰다.
    나도 얼른 뒤따라 나섰다.
    조용히 말없이 뒤를 따라 걸었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뒤따름의 예의.

    계단을 다 내려가니 그곳에 또 몇 명이 방향을 못 잡고 있었다.
    우왕좌왕하는 이들 사이에서 머뭇거림 없이 방향을 잡고 걷는 나의 길잡이님을 따라 다들 길을 나섰다.

    서로 통성명을 하지도 않고 따로 인사를 나누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대화의 물꼬가 터졌다.
    하지만 짧게 짧게 풍경의 아름다움을 공유하는 이야기였고 대부분의 시간을 조용히 걸었다.

    사자평은 정말 아름다웠다.
    천황산 오르는 길, 일출의 붉은빛과 함께 본 억새와는 또 다른 파란 하늘아래의 억새밭.
    그리고 그림같이 둥실둥실 떠있는 구름도 아름다움을 한껏 더해주었다.

    계속 풍경사진을 찍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길잡이님이 사진을 찍어주시겠다고 했다.

    감사합니다아아아아!
    신나게 사진도 남기고 또다시 길고 긴 사자평의 길을 걸었다.
    이 길이 끝나면 거지같....은 내리막이 나온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 당시 작전마을버스를 타기 위해 구르듯 빠른 속도로 내려갔던 무서운 하산길.
    그래서 곧 나타날 고통의 시간을 앞두고 현재의 아름다움을 한껏 만끽하기로 한다.

    조금만 더 가면 죽전마을로 향하는 죽음의 내리막이 나타날 것이다.
    작년 산행에서 만났던 W오빠와 사자평에서부터 함께 걷게 되어 재잘재잘 이야기를 나누었다.
    길잡이님의 속도가 너무 빨라 너덜 터덜 하산길에서 먼저 보내드리고 다른 모임의 빠르디 빠른 산객들께 모두 길을 양보해 가며 느릿느릿 내려가는 나와 속도가 엇비슷했던 W오빠. 둘이 조심조심 길을 내려가며 왜 우리 뒤로 아무도 오지 않는 것인지... 우리가 제일 마지막이 아니냐며 걱정하면서도 속도를 낼 수 없었던 죽전마을 하산길.

    예전엔 대체 무슨 정신으로 이 길을 뛰어내려 갔을까.
    죽전마을버스, 그게 뭐라고! 그걸 타자고 그리 뛰었을까 ㅎㅎ

    혼자여도 좋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도 좋은 영남알프스.
    난 그 좋은 두 가지를 모두 다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잖아.

    길잡이님이 죽전마을 슈퍼마켓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야기를 나눈 것은 아니지만 어느새 일행으로 챙김 받고 있었다.
    감동이잖아

    여기서 쉬지 않으면 앞으로 더 힘들어질 것이라며 잠시 쉬자고 권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뒤에 있던 무리들이 내려올 때까지 슈퍼에서 한숨 돌리며 아주 잠시 여유의 사치를 누렸다.
    그리고 이내 도착하던 후미의 사람들.
    우리는 선두에 가까운 중발대 정도였었다.
    후미인 줄 알았는데. 휴우...

    그렇게 도착한 사람들이 쉬지도 않고 바로 길을 나선다니 화들짝 놀라 나도 그들을 따라나섰다.
    맞다.
    나는 후미공포증이 있다.
    제일 선두도 싫지만 후미도 싫다.
    인생, 중간만 해야지.

    그래서 좀 더 쉬겠다는 길잡이님과 W오빠를 두고 홀로 덜렁덜렁 길 위에 섰다.
    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러다가 이웃집 뀨선생이 선물해 준 수건이 안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길에 쭈그리고 앉아 가방을 다 헤집었다.
    없다!!!! ㅠㅠ
    망연자실 앉아있는데 길잡이님이 지나가시며 뭐 하냐고 묻는다.
    수건을 잃어버렸다고 하자 같이 내려오던 검은 옷 입으신 분(W오빠)이 챙겼다며 걱정 말라고 했다.
    (꽤 오래 함께 걸었는데도 서로를 이런 식으로 지칭하는 사이였다 우리가🤣🤣🤣 그런데 이 정도의 거리가 너무 좋았던 나)

    여차하면 완주를 포기하고 왔던 길을 되짚어갈 생각이었는데 다행이었다!!!
    챙겨준 오빠도 고맙고 알려주신 길잡이님도 고맙고.
    오늘은 고마운 일 투성이다.

    그렇게 홀로 나선 길, 길잡이님과 둘이 되었다.
    영축산자연휴양림 가는 길 위에, 슈퍼에서 쉬지 않고 떠났던 무리가 앉아 쉬고 있었다.
    그들을 지나쳐 걸어 나가던 중, 사자평을 함께 걸었던 동무님 한분이 그들 사이에 있다가 우리의 걸음을 따라왔다.
    - 길을 아는 사람과 안전하게 가려고요.
    라며 씨익 웃었고 산행 끝날 때까지 이 두분과 함께 또 혼자 걸었다.
    두 분이 속도가 너무 빨라 먼저 가라고 보내드리면, 길이 갈라지는 부분에서 길을 알려주고 가겠다며 기다리고 있었고, 중간중간 쉴 때도 잠시 만나곤 했다.

    영축산자연휴양림 입장료 1,000원을 지불하고 영축산으로 향한다.
    영알 반종주를 마치고 자연휴양림에서 1박을 했을 때 이 코스를 걸었었다.
    하산도 힘겨웠던 기억이 있는 길인데, 이 길을 올라가야 하다니....
    오르기 전부터 이미 힘겨웠다.
    죽전마을 하산길에서 탈탈 털린 몸과 마음이 영축산의 오르막에서 한없이 늘어졌다.

    함께 가는 두 분이 속도를 맞춰주겠다고 했지만 손사래를 치며 걱정 말고 올라가라고 했다. 뒤에서 홀로 걸었다.
    나의 거친 숨소리만이 귀를 가득 매운다.
    갑자기 체력이 훅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몇 걸음 걷다가 거친 숨을 몰아쉬기를 반복하며 오르다 보면 길을 알려주겠다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동무님들을 만나거나 잠시 쉬며 간식을 먹고 있던 동무님들을 만나 숨을 돌렸다.

    고비다! 선택의 기로.
    여기서 신불재로 가면 영축산을 패스하고 신불산으로 갈 수 있다.
    아주 잠시 고민했지만 빠르게 고민을 마치고 영축산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고민하는 시간에 걷자.
    혼자 걷고있는 길에 와글와글 소리가 가까워진다. 슈퍼에 있을 때까지도 죽전마을로 하산하지 못했던 후발대 일행들이 나를 앞서갔다.
    와.. 나 진짜 느리구나.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보지만 별 수 없다. 느리게라도 꾸준히 가야지.
    그리고 그 일행들 사이에 W오빠가 있어서 잃었던 수건을 건네받았다.
    꾸벅 배꼽인사를 하고 영축산까지는 나를 앞서간 무리들의 후미가되어 W오빠와 걸었다.

    그래서 또 이런 사진도 얻었네
    여러모로 소소하게 감동적인 일이 많았던 영남알프스.

    영축산이다!!!!!
    또다시 나타난 신불재와 영축산의 갈림길에 가방을 쌓아두고 영축산에 올랐다.
    가방을 내려두니 날아갈 듯 가뿐하.....다가 금세 또 힘들어진다.
    오르막을 힘겹게 올랐다.
    구름이 잔뜩 낀 덕분에 뜨거운 햇살이 사라지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천만다행이었다.

    영축산에서 호다닥 사진을 찍었다.
    함께 가방을 두고 올라왔던 일행들은 신나게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난 여기서 찍은 사진 많으니까...
    아쉬웠지만 함께 사진 찍자고 끼어들 변죽도 없고 저들의 스피드를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부랴부랴 길을 나섰다.

    때마침 먼저 도착했던 길잡이님 일행이 출발하고 있었다.
    -같이가요오~~~
    가방을 던져두었던 곳에서 가방을 주워 매고 또다시 따로 또 같이의 산행을 시작했다.

    영축산에서 신불재까지 가는 길이 또 얼마나 아름답게요~
    하늘은 흐렸지만 덕분에 겨우겨우 걸음을 뗄 수 있었다.
    해가 쨍쨍 더웠더라면 주저앉았을 정도로 지쳐있었다.

    하늘하늘 낭창낭창한 가을억새.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할 수 없어.
    영알 억새자랑!!!!

    억새도 예쁘지만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이 너무 감사하고 고마워 억새보다도 더 예뻐 보이던 순간이었다.

    길잡이님은 지치지 않고 걸어갔지만 그분과 함께 걷던 다른 분은 신불재에서부터 속도가 떨어지기 시작하여 나와 꽤 오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함께 걸었다.
    (그럼에도 이름 모름 주의🤣🤣🤣🤣)

    신불재닷!!!
    신불재 너무 좋아!!!!

    신불재에 가니 영축산을 패스하고 신불재로 바로 향했던 일행들이 신불재에서 막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신불재에서 잠시 쉬려던 생각을 접고 일행들과 함께 다시 길을 걸었다.

    M 언니와 신불재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었지만 이내 다시 혼자가 되었고요.
    다시 이름 모를 산동무와 걷게 되었어요.
    산행에서 동행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는 속도다.

    속도가 같았던 그와 나, 그리고 W오빠가 만났다가 흩어졌다 하며 산행을 했고 이 상황이 너무 재밌었다.

    신불산 가요오.
    신불재에서 계단을 오르고 오르막 한 번만 더 오르면 오늘 산행을 끝이다!!!!

    힘내자구요!!
    으쌰으쌰 동행들과 격려와 응원을 나눴다.

    짠!!!
    다 해버렸다우!!!
    이제 간월재까지의 하산, 간월재에서 또 하산.
    하산만 남았다.

    간월재 가자 가자!!

    아쉬움 따위 1도 없었던 구름 가득한 하늘.
    덕분에 걸었다.
    덕분에 완주했다.
    하산에 대비하여 신발끈을 제대로 동여매지 못해서 큰 신발 안에서 발이 앞으로 쏟아졌다.
    발톱... ㅠㅠ 내 발톱...

    잠시 쉬며 신발끈을 동여매면 되는데 그럴 정신도 없었다.
    왜... 답을 아는데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지...매번 겪으면서도 고치지 못한다.
    소를 몽땅 잃어봐야 정신 차리지.

    발톱을 고문해 가며 걷다 보니 간월재가 코앞.

    때마침 옆에 있던 대장님께 사진을 부탁했다.
    호쾌하게 웃으며 사진 찍어주신 대장님 덕분에 간월재에 도착해 신났던 마음이 더욱더 들썩들썩해졌다.

    간월재에는 사람이 가득.
    겨울에만 왔던 영남알프스의 다른 계절을 보게 되다니..
    오래도록 묵혀온 숙제를 끝낸 기분이다.
    아니, 또 다른 시작이다.
    이제 영남알프스는 겨울이 아닌 계절에만 찾아올 거야.
    은화, 안녕!

    간월재에서는 영축산자연휴양림 방향으로 하산했다.
    자연휴양림까지는 꿀 같은 임도.
    신나게 걸어 자연휴양림에 들어서자 다 같이 환호성을 질렀다.
    끝났다아아아!!!!

    그런데.....
    끝난 게 아니었다.
    세상에!!!

    휴양림에 들어서자 산길이 시작되었고 오늘 다시 볼일 없겠다고 생각했던 오르막까지 나오자 다들 급격하게 다운되어 말수를 잃었다.
    하지만 파래소폭포까지 내려가 사진을 찍고 다시 올라올 기운까지 있었으니 다들 정말 대단한 걸로 치자.
    물론 나도!

    이 사진 하나 찍자고 계단을 내려갔다가 올라왔다.
    그러고 나서도 한참을 걸었다.

    버스가 있을 것이라는 죽전마을 인근으로 하산을 완료했는데 버스가 보이지 않아 당황하고 있을 때 J 언니가 내 이름을 크게 불렀다.
    - 너 왜 여기 있어??
    - 네????
    - 버스 저쪽에 있어. 잘못 내려왔구나

    S언니가 주워준 덕분에 제대로 된 코스를 걸었던 종주 초반부터 길잡이 오라버니, 함께 걸었던 이름 모를 동무님, 잃었던 수건을 찾아주고 지칠 때마다 재미난 대화로 웃게 해 준 W오빠, 버스까지 안내해 준 J언니를 만난 것까지 참 따스했던 종주였다.

    그렇게 좋아하는 영남알프스를 오래도록 걸어서 행복했다.
    그런데 정말 종주는 그만해야 할까 봐.
    지하철역에서 집까지 걸어오는 그 짧은 길을 얼마나 느릿느릿 걸어왔는지....
    지금까지 했던 종주 중에 가장 가벼운 종주였을텐데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어쩌다 점심도 못 먹었고 물도 1리터 남짓으로 고행하듯 걸어서 더 지쳤던 것 같기도 하다.

    다시 열심히 종주력을 높여보던지 아니면 20km 내외의 산행만 하던지...
    앞으로 행보를 지켜보겠....돠...

    🎯영남알프스 환종주(빼기 간월산)🎯
    ✔️산행시간 : 12시간 6분
    ✔️산행거리 : 37km
    ✔️산행코스 : 배내고개-능동산-구샘물상회-천황산-천황재-재약산-사자평-죽전마을-신불산자연휴양림(하단)-단조성터-영축산-신불재-신불산-간월재-임도길-자연휴양림(상단)-파래소폭포-신불산자연휴양림(하단)-태봉교
    ✔️종주는 밥 챙겨 먹으면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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