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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산일기] 아빠산, 한라산의 가을
    등산일기 Hiker_deer 2024. 10. 26.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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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10월 25일, 금요일


    첫 한라산을 아빠 엄마와 다녀왔어서...
    난 작은 가방에 물 하나 넣고 덜렁덜렁 올라가고 엄마와 내가 먹을 간식과 도시락을 잔뜩 챙긴 가방을 들고 산행을 하는 아빠.
    수시로 간식을 챙기고 과일을 깎아 먹이던 아빠.
    그 당시 우리 집 유일한 등산인이었던 엄마만 등산화와 스틱이 있었고 아빠와 나는 평상복에 평소신던 운동화로 산에 올라서 성판악의 너덜길을 하산한 다음날 발이 곰발처럼 퉁퉁 부었었다.

    그렇게.... 한라산은 내게 아빠산이 되었다.
    22년 봄, 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 한라산에 갔었다.
    아빠와 함께 갔던 성판악이 아닌 관음사 코스로 갔음에도 한라산을 오르는 모든 걸음에는 아빠가 있었다.
    그래서 참으로 애틋하고 좋았던 한라산.

    거의 2년 반 만에 아빠산을 다시 찾는다.
    항공편과 입산신청에 삽질을 거듭하고 떠나기 하루 전날 여행 준비를 마친.... 어쩌다 보니 "내 평생 이렇게 무계획한 여행은 처음이야" 싶은 여행이 되었다.

    목요일 밤, 산동무 모두가 모여 에어비앤비에 투숙했다.
    후두염이 3주째 낫지 않아 마른기침을 토해내는 나는 독방을 부여받았다.
    형편없는 스프링과 소음을 자랑하는 매트리스에 몸을 뉘이니 피로가 더 쌓이는 것 같았지만 요즘 계속 피곤했었고 약까지 먹은 터라 그럭저럭 선잠이라도 잘 수 있었다.

    오전 3시 반, 눈을 뜨고 준비를 마치고 아침으로 준비해 갔던 빵을 꼭꼭 씹어먹었다.
    전날 저녁을 대충 건너뛴지라 배가 어어어어어엄청 고팠다.
    4시 반, 숙소를 출발하여 한라산 관음사탐방로 도착.
    제주에 사신다는 산동무님이 합류하여 총 7명이 산행을 시작했다.

    그렇게 뻔질나게 등산을 해도 가끔 놓치는 게 있다.
    이번엔 헤드랜턴.
    5시 산행이고 요즘 일출이 늦어졌다는 것도 다 알고 있었음에도 헤드랜턴을 챙기지 못한 몽매함.

    J 오빠가 앞에서, 다른 일행들이 뒤에서 불빛을 비춰주었지만 지난 주말부터 꽤 많은 비가 내렸던 한라산의 돌들은 진흙으로 미끌미끌했고 물웅덩이도 곧곧에있어 결국 주춤주춤 폐를 끼치느니 휴대폰 조명을 사용하기로 했다.

    난이도 초록색으로 표시된 완만한 구간을 마치고,
    -이거슨 거인이나 다른 인종이 설계한 것이 틀림없다
    싶은 비 인체공학적, 높디높은 계단을 하나하나 힘겹게 오르며 빨간 난이도의 구간으로 진입했다.

    사진도 힘들어보임🤣🤣

    원점회귀 코스이다 보니 어두컴컴한 길을 올라가서 풍경을 못 보는 것이 아쉽지 않았다. 내려오면서 즐기면 될 일이다. 해가 빨리 뜨기만을 바라면 묵묵히 걸었다.

    조금씩 사위가 밝아져 왔다.
    휴우. 다행이다.
    미비한 준비로 불편했던 마음이 가셨다.

    쏴아아아- 바람소리가 엄청났지만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았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땀도 거의 안 흘리고 산행할 수 있는 최적의 날씨였다.

    단지 아쉬운 게 있다면.. 이 즈음이면 알록달록 물든 나뭇잎이 반겨주겠거니 싶었는데 다른 산과 마찬가지로 한라산도 올해의 폭염을 피해 가지 못했다.
    더위에 타버려 물들지 못한 나뭇잎이 많았고 물이 들었어도 빛이 바랜 색이었다.

    해발 1,000미터 고지를 지나간다.
    군데군데 애써 물든 단풍이 힘겹게 우리를 반긴다.
    어디선가 스치듯 보았던 화려하기 그지없는 한라산의 단풍을 기대했건만... 올해는 때가 아닌가 보다.

    하지만 단풍대신 운해를 비롯하여 구름이 화려하게 수놓아진 그림 같은 하늘과 힘들어도 힘들지 않게 만들어주는 적당히 시원하고 적당히 춥지 않고 적당히 덥지 않은 날씨를 선물 받았다.

    삼각봉 대피소까지 300미터!!!!
    한라산의 난이도 빨간색 코스는 실은 많이 가파르거나 한 길은 아니다. 초반의 비인체공학적 계단을 제외하면 크게 가파른 구간은 없고 그냥 꾸준히 올라가는 길. 초록색 구간과의 차이라면 초록색 구간이 아주 많이 완만하다는 점?

    물론 오늘은 비가 온 후의 미끌미끌한 돌과 질퍽한 땅이 좀 고생스럽긴 했다. 한라산의 빨간 맛이네.

    삼각봉 대피소 도착!!!

    하아..  어쩌지!!!
    올라오는 내내 양옆을 빼곡히 매운 나무들의 철통 같은 보호아래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하다가 삼각봉 대피소에 이르러서야 바깥(?)을 구경하게 된 우리!!!
    운해가... 와... 운해가 난리가 났다.

    삼각봉 대피소 360도

    일출이고 운해고 참 많이도 봤는데 이런 운해는 처음이다.
    정말 눈앞에 가깝게.... 뒤를 가로막는 어떤 산도, 중간에 튀어나온 봉우리도 없이 오로지 하얗고 뽀얀 구름이 세계를 가득 채운다.

    한라산의 운해가 어쩐지 낯설게 느껴졌던 것은 주변에 다른 산이 없이 정말 구름이 바다를 이루며 하얗게 하얗게만 펼쳐져, 구름으로 만들어진 수평선, 아니 운평선(雲平線)을 보았기 때문이리라.

    오늘 삼각봉은 정말 최고였다.

    삼각봉에서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려고 했는데 제주에 사시는 산동무님께서 무려 초밥을 싸 오셨다.
    잔치로구나!!!

    아침식사를 거하게~ 먹고 한참을 쉬고 사진을 찍으며 놀다가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아주 잠깐 완만함.
    속지말기.
    정상까지의 난이도 빨강이 진짜 빨강이다.
    삼각봉까지의 빨강과 비교할게 아니다.

    예전에 보았던 한라산의 가을은 다리 뒤편이 울긋불긋 단풍천국이었던 것 같은데 오늘, 단풍의 색은 아니지만 제법 다채로운 색을 뽐내는 한라산을 보았다.

    사진 참 잘 찍어주는, 그리고 잘 찍는 리딩님 덕분에 한라산 사진이 풍년이다.
    내 일기도 가을의 색만큼이나 화려해지겠어

    -밤비야, 이리 와봐!!
    사진 찍자고 하면 없던 체력도 솟아 지쳐있는 산동무들의 어이없어함을 뒤로하고 힘차게 뛰어가는 나를 불러다 놓고 요리조리 사진을 많이 찍어줬다.

    그리고 모두가 도착하면 이렇게 단체사진도 잊지 않는다.
    이러니 오빠 산행을 참석 안 할 수가 없다.

    다리를 건너고 나면 정상까지의 빨간 맛 산행이 시작된다.
    계단!
    끝없는 계단.
    적당한 리듬감으로 이쯤 올라가면 계단이 잠시 끝나고 짧은 평지가 나오고 또 계단이 이어지겠지. 그럼 그때 쉬어야겠다.
    라는 생각은 금물.
    그냥 계단만 이어지니 오기 부리지 말고 쉬고 싶을 때 쉬며 나만의 리듬을 만들어야 한다.

    나?
    나는 느리게 갈지언정 쉬지는 않지.

    쉼터가 나타났고 다시 운해가 펼쳐졌다.
    그냥 지나갈 수 없잖아.
    잠시 쉬며 간식을 나눈다.
    다시는 못 만날 오늘의 한라산을 맘껏 즐기기 위해 참으로 자주 쉬었던 우리.

    이렇게 한참 사진을 찍고 올라가기 시작하면 우리 리딩님은 또 사라진다.
    대체... 당신의 체력은... ㄷ ㄷ ㄷ

    그렇게 먼저 올라가 기다리며 자신의 그림자를 섞어 우리와의 단체사진도 만들어주는 리딩님.
    오빠가 기다리는 곳이 바로 포토존이다.

    오늘은 진짜, 한라산 사진자랑

    아휴, 예뻐.
    너어어어어무 예뻐!!!

    고사목과 운해의 조화가 처연하고 눈물 나게 아름답다. 어쩐지 스산하지만 매우 우아하다.

    이곳에서는 꼭 머리 위로 고사목이 안테나처럼 올라오게 사진을 찍어야 한단다.

    구름의 바다는 봐도 봐도 탄성이 멎지 않았다.
    사진을 얼마나 찍었는지 고르기도 힘들다.
    산을 오르다 자꾸 멈추어 사진을 찍게 한 마법 같았던 오늘의 한라산.

    운해가 없는 쪽으로는 시야가 좋다. 깔끔해도 이렇게 깔끔할 수가 없는 맑고 청명한 하늘과 풍경.

    그리고 구름바다.

    거의 다 왔다.

    정상에 가기 전 마지막 쉼터(데크).
    와....
    이 풍경을 어떻게 잊어.
    신기하고 신비로운 한라산의 구름바다.

    하늘 위에 아무것도 없는 느낌.
    정상이다.

    이틀 전까지 비가 왔다고 해서 물이 꽤 많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매번 올 때마다 이렇게 물이 찰랑찰랑한 백록담을 보다니 이 또한 행운!! 완전 럭키밤비잖아.

    구름의 바다가 배경으로 깔리니 정상의 모든 것이 우주의 무엇 같은 느낌.

    혹은 북극이나 남극기지 같기도 했다.

    미지의 땅을 정복한 탐험가처럼!
    한라산 정상에 도착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줄이 길지 않아 정상석 사진을 찍어보기로 한다.
    지난번 한라산은 정상석 줄을 설 엄두가 나지 않아 정상목(!)에서만 사진을 남겼었다.

    사람이 북적북적한 정상목, 눈이 시리게 푸른 하늘

    9시 45분 정상에 올라 줄을 서기 시작했고 45분을 기다려 10시 반, 정상석과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국내 최고 고도의 한라산에서는 모두가 너그러워지는지 매우 오래도록 사진을 찍고 있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한 사람이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며 찍어도 모두가 조용히 기다렸다.
    영남알프스는 갈 때마다 정상석에서 싸우는 모습을 봤는데... 그것과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하지만... 어쩐지.. 조금 적당히....
    라는 생각이 들었달까.

    그래서 길지 않은 줄이었음에도 45분이나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산동무 J언니의 선글라스에 담은 우리, 그리고 몽글몽글한 운해!

    우리 뒤로 점점 길어지는 줄과 여전히 고운 운해를 보고 우당탕탕 수다를 나누며 지루하지는 않았다.

    앞의 사람들에 비해 엄청난 속도로 찍고 빠진 우리.
    그럼에도 사진은 이렇게 좋다규!!!
    단체사진은 분위기가 더 좋은데도 초상권 보호하자니 스티커를 덕지덕지 동물농장이 될 것 같아 업로드 포기

    나를 제외한 다른 산동무들은 비양도에 들어가기로 되어있어 뱃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사진 찍기위해 긴 시간을 기다리느라 어쩐지 촉박해진 우리.
    다급히 내려가는 길 J언니에게 폰을 건네주고 "나와 백록담"의 사진을 부탁했다.
    급하게 찍었는데도 참 따스한 느낌의 사진을 얻었다.
    나이쑤!!!

    가자 가자 가자 가자!!!
    우르르르 우다다다 빠른 걸음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10시 반이 넘은 시각에도 여전히 시야를 가득 매운 운해.
    마치 하늘로 걸어가는 듯했던 하산길.

    아주 조금 울긋불긋한 한라산과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연상시키는 태양이 빛나던 한라산의 하늘.

    아무리 바빠도 사진 못 잃어 😝
    이곳에서 잠시 남은 간식을 먹었다.
    현지인 동무님 덕에 사과와 배를 시원하게 먹었고 어제 살뜰히 장을 본 동무들 덕분에 제주 귤도 야곰야곰 까먹었다.
    원정산행이 이렇게 호화로울 일인가.

    왜 때문인지 모르지만 찍혀야 했던 삼각봉 대피소 기념사진🤣🤣🤣
    11시 28분, 삼각봉 대피소에 도착해서 통곡의 문을 잠시 구경;;했다.
    11시 30분 전까지 삼각봉 대피소를 통과해야 하는데 그 이후에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올라온 산객들이 아쉬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절대 열리지 않는 문.
    암.. 그래야지!

    다들 아쉬워하면서도 매우 설득력 있게 말씀하시는 공단 직원의 말에 수긍하며 발길을 돌렸다.
    - 지금까지 올라오시는데도 이렇게 힘드셨는데 남은 길은 더 힘들고요. 이렇게 올라가면 결국 정상에 못 가시고 내려오셔야 할 겁니다.

    그럼에도 끝끝내 아쉬워하며 삼각봉 대피소를 맴돌던 사람들을 뒤로하고 우리는 쾌속하산을 이어갔다.

    우다다 내려가다 J오빠가 멈춰 손가락을 뻗은 곳을 보면 단풍이 있다.
    한라산은 보물 찾기가 아니라 단풍 찾기 시즌이었구나!!!

    귀하디 귀한 한라산의 단풍을 만나 잠시 멈추어 사진을 찍고 또다시 뽀로로 하산.

    우다다다!
    갑니다 가요!

    등산길에는 해뜨기 전 새벽이어서 보지 못했던 초록 이끼가 내려앉은 계곡길에게도 반갑게 인사를 건네본다.

    나의 세 번째 한라산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아빠와 갔던 이후 처음 찾았던 2년 전의 한라산은, 반짝반짝 빛나는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아빠 생각이 울컥울컥 튀어나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숨을 참아야 했다.
    하지만 이번 한라산에서는 아빠와 올랐던 즐거움과 고마움이 생각나 참 따뜻했다.

    나의 아빠산, 또 올께.
    다음에도 꼭, 멋지고 황홀한 날씨를 부탁해.

    🎯한라산 오르기🎯
    ✔️ 산행거리 : 20km
    ✔️ 산행시간 : 8시간 7분(쉬는시간, 정상석 대기시간 약 2시간 포함)
    ✔️ 산행코스 : 관음사 탐방로 원점회귀
    ✔️ 애플워치야.. 저기 20km 산행인데 운동강도 3, 쉬움은 아니지 않냐며... 이 기록을 보니까 한라산행이 진짜 하나도 안 힘들었던 것처럼 미화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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