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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작은 고양이가 고양이별로 떠났다.
    Jinnia_C의 깨알같은 하루하루 2024. 12. 8.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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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초, 나는 독립을 했다.
    내가 독립을 하기 두어 달 전 우리 집에 고양이가 왔다.
    꾹꾹이
    꾸꾸
    쿠쿠
    꼬꼬
    꾸꿰기
    꾸꽉이
    꽉꽉이
    정말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온 식구들의 사랑을 독차지한 고양이.

    나는 출가외인(?)이니 갈 때마다 본체만체하는 고양이가 너무 속상해서 너무 애가 닳았다.
    짝사랑도 이런 짝사랑은 없을 것이다.
    갈 때마다 오매불망 그의 이름만 부르며 졸졸 쫓아다니다 결국 극단의 조치를 취해보기도 했다.

    고양이와 서열정리 하는 법
    이라는 글을 읽고 꾸꾸와 눈싸움을 하다가 꾸꾸 목덜미도 물어보았다(진짜 물었음...;;; 입에 털이 한가득;;)

    그 이후로 나를 더 본체만체 무시한 고양씨였지만...
    그래고 나의 외사랑은 계속됐다.

    그러다 아빠가 폐암 선고를 받았고
    수술을 했고
    암이 재발했다.
    이 모든 순간도 우리와 함께 하던 꾸꾸는
    암 재발에 실망한 아빠가 당신의 병을 원망하며 무엇이라도 원인을 찾고 싶어 했고... 호흡기에 고양이 털과 화장실 모래가 좋지 않음을.. 당신 자식들도 다 호흡기가 좋지 않음을 알고 있었기에 고양이를 보내자고 했다.

    우리는 입양 보낼 곳을 찾을 때까지만 기다리자고 했는데 암 재발과 손에 잡힐 것만 같던 죽음으로 괴로워하던 아빠는 가차 없었다.

    여섯 살 코숏을 흔쾌히 입양하주겠다고 하는 곳은 없었다.
    꾸꾸를 데려왔던 보호소에서는 다른 고양이와 보호소에 있게 할 수 있고 보호비를 내라고 했다.
    돈은 둘째치고 예민하고 다른 고양이를 싫어하는 꾸꾸가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그러다 입양을 하겠다는 연락을 받고 우리 삼 남매는 꾸꾸를 태우고 강북 어딘가로 향했고 새 보호자에게 눈물을 펑펑 쏟으며 잘 부탁한다고 꾸꾸를 맡기고 왔다.

    내가 꾸꾸에 대한 사랑과 애달픔을 견디다 못하 가끔 우리 집에 한 번씩 데려올 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꾸꾸는 밤새도록 울었다. 목이 쉬도록 울었다. 그래서 길면 삼일, 짧으면 이틀 만에 본가로 돌아가곤 했다.

    꾸꾸는 입양 간 집에서도 그렇게 밤새 울었단다. 그래서 다시 우리가 데리러 갔는데 본가로 데려갈 수는 없었다
    마침 그때 내가 지방근무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면서 본가에서 지내고 있었고 송도 아파트가 비어있을 때라 남동생이 그곳에서 꾸꾸와 둘이 지냈다

    그리고 꾸꾸는 맘씨 좋은 제주도 입양인을 만나 제주도에 가게 된다.
    우린 또 김포공항에서 엉엉 눈물을 쏟으며 통곡을 했다.
    남동생은 꾸꾸와 제주도에 가며 난생처음 비행기를 탔다

    새 입양인은 꾸꾸 사진을 종종 보내주었고
    우리 사정을 다 이해한다며 자신이 잘 키울 테니 다시 꾸꾸를 데리고 가고 싶을 때면 언제든 이야기해 달라고 했다.

    아빠가 돌아가셨다.
    꾸꾸 소식은 인스타를 통해 가끔 접하다가 어느새 그마저도 끊겨버렸다.

    그리고 2021년 봄.
    연락이 왔다. 꾸꾸를 다시 키워줄 수 있겠냐고.
    우리는 당연히 그러겠다고 했다.
    아빠가 가시며 절대 동물을 키우지 말라고 했지만 꾸꾸는 우리 식구니까..
    꾸꾸 잘 키우다가 우리가 보내주자고 아이를 데려왔다.

    그 사이 꾸꾸는 또 많은 사연을 겪어
    원래 우리에게 꾸꾸를 데려갔던 여자분이 그때부터 몇 년간 만나던 남자 친구와 헤어졌고 남자 친구가 꾸꾸를 데려가겠다고 해 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남자분이 꾸꾸를 2년 정도 키웠는데 결혼하기로 한 여자분이 고양이랑 못 산다고 하여 꾸꾸는 남자분의 인천 사는 후배에게 보내졌다.
    하지만 그 후배의 부모님이 고양이가 웬 말이냐고 절대 안 된다고 하여 우리에게 다시 연락이 온 것이었다.
    고작 10년 산 고양이가 이 집 저 집을 전전하며 얼마나 애를 태웠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그렇게 돌고 돌아 다시 우리에게 돌아온 세상시크하고 무심한 고양이었던 꾸꾸는 상냥하고 다정한 개냥이가 되어있었다.

    너무 살갑게 우리에게 다가오는 녀석이 반갑고 사랑스럽다가도 그간 이집저집을 돌아야 했던 삶이 이아이의 성격을 바꿔 놓은 건가 싶어 너무 서러웠다.
    갈 때까지 우리와 살자고...
    오래오래 살라고...

    넌 우리에게 오기 전 범백을 이겨낸 씩씩한 아기고양이었으니 오래오래 살다가라고...
    최초에 보호소에서 데려올 때도 보호소장님이 이아이는 범백을 이겨냈으니 장수할 것이라며 웃었다고 했다.
    성격이 앙칼지고 포악하여 포악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지만 그래서 범백을 이겨냈을 것이라고, 오래오래 살 것이라고.

    그래서 우리는 꾸꾸의 건강을 자신했는지도 모른다.
    제주에서도 우리 집에서도 꾸꾸는 잔병치레 한번 없이 잘 지냈다.
    그렇게 목요일까지도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던 고양이는 금요일 아침, 엄마나 동생이 일어날 때를 기다려 간식그릇 앞에 앉아 간식 주세요 야옹-하던 것을 안 했다고 한다.
    그리고 식구들이 퇴근해 왔을 때는 기운이 없어 일어나지도 못했다고 한다.
    원래 하루에 물을 두 그릇씩 마시고 밥도 한 그릇 다 먹고 간식도 두세 번 먹던 아이가 아무것도 안 먹었다.
    그래서 난방을 세게 올리고 아이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물주머니도 함께 넣어줬다.
    그리고 본가에 간 나는 그 옆에 누웠다.
    옆에서 잘 생각이었다
    아침에 병원 가자
    그렇게 바라보던 중 아이가 일어나 초록색 토를 했고 기력 없는 몸으로 소파 위에 올라가 거품을 토했다.
    자정이었다.

    이동장에 들어가기 싫다는 꾸꾸를 억지로 밀어 넣고 병원에 갔다.
    췌장염.
    염증이 신장에도 영향을 주었을 거라며 약간 높아진 수치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라 3000이 넘어버린 간 수치였다.

    그래서 30분 걸린다는 피검사는 몇 번을 돌리고 또 돌린 결과로 한 시간 넘게 걸려 나왔고 우리는 꾸꾸를 입원시키고 돌아왔다.
    병원비 70만 원.

    결제하고 돌아오며 온갖 걱정이 앞섰다.
    큰 병이 없었던 아이라 병원이 어색한 우리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간 수치.
    잘 이겨낼지...
    아이의 생명을 앞에 두고 병원비가 걱정되는 나의 옹졸함.

    그때까지만 해도 꾸꾸가 괜찮을 것 같았다.
    케이지에 있는 아이에게 내일 보러 오겠다고 인사할 때도 늘 듣던 그 야옹 소리였으니까...
    기운이 돌아왔나 보다 했다.

    하지만 다음날 아이가 먹지 않는다는 톡이 아침에 날아왔고 오후에 전화가 왔다.
    4시에 병원으로 달려갔다
    고양이의 혈압이 120 정도인데 꾸꾸는 30까지 떨어졌단다.
    엄마까지 함께 가겠다고 나선 길이라 우리 넷은 꾸꾸가 누워있는 입원장 앞에서 엉엉 울었다.
    꾸꾸는 침을 흘리고 있었고 우리가 들어가자 비틀비틀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놓아둔 박스 안에 들어가 모서리에 얼굴을 기대어 우리를 바라봤다.
    대답하지 마 꾸꾸야 괜찮아.
    힘들면 가... 먼저 가도 돼

    입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는 꾸꾸에게 손을 얹고 울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이가 죽음의 문턱에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승압제를 쓰고 간경화 약까지 쓰고 나서야 혈압이 잡혔다.
    7시가 넘어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12시.
    다시 병원으로 갔다.
    쓸 수 있는 약은 다 썼다고 했다
    아빠 때도 그랬다.
    쓸 수 있는 약은 다 썼다.

    꾸꾸는 아주 가쁘게 숨을 쉬었고 우리를 쳐다보지도 못했다.
    이름을 부르자 아주 약하게 끙끙거렸다.
    아이에게... 먼저 가서 아빠랑 만나라고...
    힘들지 말라고... 가도 된다고....
    그렇게 울었다.

    너무 힘들어하니 안락사라도 괜찮다. 더 이상 힘들지 않게 해달라고 했더니 선생님이 안락사가 필요없다고 기기를 떼면 갈 거라고 했다.
    우리는 한 시간만 더 기다려 마지막 혈압을 재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꾸꾸는 다음 혈압 재는 시간까지 버티지 못하고 갔다.
    센터장님!! 빨리 오세요!라는 간호사님의 목소리. 그리고 이어지는 우리를 부르는 소리.
    꾸꾸 보호자님

    부르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 달려가니 꾸꾸는 입원장 밖으로 나와 처치대에 누워 기도삽관을 한채 산소를 주입받고 있었다.
    내가 선생님의 팔을 잡았다.
    그만해 주세요.
    보내 주세요 ㅠㅠ

    식구들이 다들 끄덕였다.
    그리고 눈을 감지못했고 삽관 때문에 입을 벌리고 혀가 늘어져 나온 채 고양이 별로 간 꾸꾸를 쓰다듬으며 이별을 했다.

    고마워.
    사랑해.
    고마워.
    사랑해.
    고생했다 우리 아기..

    꾸꾸와 늘 애틋했으면서도 말로는 짐승일 뿐이라며 손사래 치던 엄마.
    내가 남편도 보내봤는데 고양이는 못 보내겠냐며 가끔 말하던 엄마는 누구보다도 서럽게 우셨다.

    그리고 다시는 동물을 키우지 말자고...
    아빠 보내는 것처럼 마음이 아프다고...
    엄마는 많이 울었다.
    옛날사람의 투박한 말을 던지던 엄마도 그렇게나 울었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꾸꾸에게 내어주며 오매불망 꾸꾸를 보살펴온 여동생...
    엄마아빠를 오랜 기간 설득하고 허락을 얻어 처음 꾸꾸를 데려왔던 남동생...
    다들 엉엉 울었다.

    우리는 꾸꾸를 병원에 화장해 달라고 부탁했다.
    아빠의 추모관에도 잘 안 가게 되는걸....
    꾸꾸 추모관도 아빠와 비슷해질 것 같아 만약 화장을 하더라도 어디에 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꾸꾸를 한참 쓰다듬으며 인사를 나누고 또 나누고 병원에서 이별을 했다.
    우리는 아빠와 꾸꾸가 함께찍은 사진을 인화해 아빠 추모관에 넣기로 했다.
    앞으로 아빠 보러 갈 때는 꾸꾸도 함께 보러 가는 걸로..
    그리고 꾸꾸는 제일 좋아했던 아빠와 함께 있는 걸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리가 서럽게 울자 엄마는
    - 아빠가 벌써 꾸꾸 데리러 나와서 만났을 거다
    라고 말했다.

    꾸꾸가 왔던 해에 나는 참 회사에서 힘들었다.
    그래서 늦은 밤 본가로 퇴근하면 꾸꾸가 홀로 깨어있었고 그렇게 사람한테 안기기 싫어하는 녀석이.. 게다가 나를 늘 본체만체하던 녀석이 내가 꼭 끌어안고 우는데도 가만히 있어주었다.
    그때 처음 반려동물이 어떤 존재인지 까달았다.
    그리고 올해 초..
    꾸꾸가 1년 동안 나와 함께 살던 시기.
    정말 거지같이 힘들고 아픈 시기를 보내던 내가 퇴근하고 집에 가면 강아지처럼 달려 나와 무릎에 올라왔다.
    집안일을 하느라 바빠 무릎을 내어주지 못하면 내내 쫓아다니고 항의하듯 야옹거리며 얼른 무릎을 달라고 보채던 꾸꾸.
    잘 때는 늘 배 위에 올라와서 자서 나는 어느새 4kg을 배에 얹고 자는 것이 익숙해졌다.
    그렇게 정을 주고 사랑을 주고 웃음을 주고 기쁨을 주고...
    꾸꾸는 떠났다.
    병원에 간 것이 자정 넘은 시각이었고 딱 24시간을 아파하다 갔다.

    오랜 시간 투병을 하며 떠날 준비를 하던 아빠.
    그리고 너무 갑작스레 누군가가 가버려 황망해하는 사람들을 보며 무엇이 더 나은 걸까 싶었다.

    꾸꾸는 많이 아프지 않고 갔길...
    오래 아프지 않아 다행이라고...
    고통이 너무 길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의사 선생님도 꾸꾸가 어땠냐고 물어보시더니 아마 아이가 그전까지는 건강했고 급성으로 온 것 같다고... 잘 살다 갔을 거라고 위로해 주셨다.

    꾸꾸야.. 아빠 만나서 잘 지내고 있어. 우리는 잘 살고 있다고 아빠에게 전해줘.
    우리에게 와줘서 고마워.
    돌고 돌아 다시 우리에게 돌아와 줘 고마워.
    우리와 있을 때 떠나줘서 고마워.
    사랑을 줘서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사랑해

    +) 제주도에서 꾸꾸를 보호해주던 분들에게도 소식을 전했다고 한다. 그들도 함께 울었다고 한다. 우리 꾸꾸 가는 길 많은 사람들이 배웅해줘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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