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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일기] 지리산 성중종주 오픈런등산일기 Hiker_deer 2026. 5. 2. 12:41반응형
뽀오와 다녀온 23년 성중종주를 끝으로
시간에 쫓기며 죽도록 걸어야 하는
산을 둘러볼 여유 따위는 사치인 종주는 나와 맞지 않는다,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다고 하면 그나마 여유로운 영구종주나 내 기준에서는 이게 종주인가 싶지만 다들 그리 부르는 거중종주 뭐 이런 말랑말랑하고 귀여운 종주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왜...
또 종주를....
우선, 진짜 내 인생 마지막 성중종주라고 생각했다.
더 나이 들면 못할 것 같고(이번에 같이 종주한 언니들... 쏴.. 쏴리) 어찌 될지 모르지만 앞으로 3년간은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니 이번 종주를 마지막으로 생각하자고 마음을 다잡으며 이 고통의 구렁텅이로 기어이 발을 내디뎠다.
국립공원 산불예방기간(산방기간)이 있어 올봄 살방살방 국공을 제외한 다른 산을 다니고 있었다. 산이야 어디든 예쁘고 좋으니 국공에 대한 아쉬움이 없었는데 난 실은 여러 산을 놓고 오늘 등산 어디로 갈래? 하면 주저 없이 국립공원을 고를 정도로 국공러버이다.
성중종주를 신청하고 보니 오늘이 지리산 산방이 끝나고 열리는 날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안내버스 좌석 신청도 엄청 치열했고 서울에서 출발하는 안내산악회버스만 12대가 넘는 것 같았다(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안내버스 사이트에서 확인한 것만 이 정도).
그러니 전국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왔을지는 상상으로 대신해 보자!
라고 하려 했는데 이미 성삼재 올라가는 길 심한 교통체증으로(새벽 3시도 되기 전에 산길.. 교통체증.. 이게 웬 말) 도착하기로 한 시간보다 늦게 도착했다.
내가 탄 차도 좋은사람들 4호(!!!)차 보통 지리산에 버스를 타고 오면 2시 반, 늦어도 2시 45분에는 버스에서 내려 개인정비를 하고 국립공원이 열리는 오전 3시에는 산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부랴부랴 화장실만 다녀와 출발했는데 출발시간이 3시 17분. 우리가 참고하려고 준비한 타임라인에 모두 어긋나는 시간이었다.
원래 간단히 아침을 먹고 시작하려 했는데 아침조차 못 먹고 공복에 달리듯 노고단을 향해 걸었다.리딩 설님의 타임라인
02:50 성삼재탐방지원센터 도착(1,072m)
- 자기소개 및 산행준비 이마트 편의점 (조식)
03:00 [0km] 산행시작
03:20 [1.9km] 노고단대피소
04:50 [8.0km] 삼도봉 (1,499m)
05:10 [8.8km] 화개재
05:40 [10.0km] 토끼봉(1,534m)
07:00 [13.3km] 연하천 대피소 (아침)
08:20 [16.7km] 벽소령 대피소
11:40 [23.0km] 세석대피소(1,590m) (점심)
13:00 [26.4km] 장터목대피소(1,651m)
13:20 [27.0km] 제석봉(1,808m)
14:00 [28.1km] 지리산 정상(1,915.4m) 천왕봉
15:00 [30.2km] 로타리대피소
16:30 [34.1km] 중산리탐방지원센터
이에 비하면 매우 여유로운 나의 거북이 타임라인
2022년 성백종주 타임라인
삼도봉 05:45
연하천 08:00
벽소령 09:45
세석 12:10
장터목 13:50
천왕봉 15:00
2023년 성중종주 타임라인
노고단고개 4시
삼도봉 05:45
화개재 06:05
토끼봉 06:41
연하천대피소 07:45
벽소령대피소 09:42
세석대피소 11:59
장터목대피소 13:53
천왕봉 14:58우선 리딩님을 따라야 하니 설님 타임라인이 기준이 되었는데 나의 두 번의 타임라인을 보면 리딩님의 타임라인은 인간이(...)할 수 있는 타임라인이 아니라고.. 나는 뒤쳐지더라도 나의 타임라인으로 가야겠다며 마음을 다잡았다.
노고단 대피소 도착-3시 50분
모든 사진은 타임라인 체크용이라 발로 찍은 것보다 못함

노고단 대피소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화장실이 대형쇼핑몰 화장실 같은 느낌으로 환골탈태.
우와... 종주하며 이런 화장실 만나면 정말 행벅 찐행복!!
정신없이 걸어온 나는 노고단 고개 진입 직전에 무엇이든 먹고 가겠다고 선언했다.
나는 리딩님 타임라인에 따라 성삼재에서 간단히 식사를 할 줄 알았는데 성삼재 교통체증과 인파 콤보에 밀려 공복에 미친 듯이 걸었던 것이다.
머리가 띵했다.
먹이를 줘야 할 때다.
일행들을 보내고 준비해 온 토스트 반쪽을 꺼내 먹었다.
체할 것 같아 천천히 먹다가 노고단 고개에서부터 좁은 길 때문에 줄을 서서 느릿느릿 걷는 사람들을 보고 나도 그 줄에 뛰어들어 느릿느릿 걸으며 먹었다.
지난주 거제도에서는 봄이 가고 여름이 왔네 싶었는데 오늘 지리산은 추웠다.
와!!!! 바람이 정말 하루 종일 미친 듯이 불어 추웠다 더웠다 하는 날씨였다(는 것은 종주하기 좋은 날씨라는 뜻!).
추위에 체할까 봐 백번 씹을 것을 이백번 씹으며 천천히 토스트를 먹었다.
그리고 그사이 우리 일행들은 사라졌다.
게다가 사람이 많아 어쩔 수 없이 인파에 끼여 느릿하게 걸어야 하니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틈이 날 때마다 추월을 했음에도 그림자도 찾을 수 없던 우리 팀 ㅠㅠ
연하천에나 가야 볼 수 있겠구나라고 마음을 접고 내 페이스 대로 걸었다.
잠시잠시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몰라 멈췄지만 산객들이 많으니 길 잃을 걱정 없다.
그러다 My언니를 만났고 언니와 조금 걷다가 언니를 앞서 걸었다. 그렇게 또 혼자가 되었다.
진짜..
좋았다.
요즘 혼산 한지가 꽤 되어 오롯이 혼자 어두컴컴한 산을 걷는 것이 말할 수 없는 만족감을 주었다.
혼자도 좋고 여럿도 좋은 등산이다.
피아골 삼거리 도착 04:47(출발 후 1시간 30분 소요)

노루목 도착 05:17(출발 후 2시간 소요)
지리산과 나만 있는 것 같은 시간이 이어졌다.
나를 스쳐 지나가고 내가 스쳐 지나가는 산객들 역시 나에게는 지리산일 뿐이었다.
노루목을 지나서부터 조금씩 동이 터오기 시작했다.
헤드랜턴을 꺼도 되는 시간이 되었다
푸릇푸릇하게 돋아난 풀 위로 서리가 쌓였다.
지난주, 봄은 끝났다고 이제 여름이라고 했는데 이곳 지리산은 이제 봄이었다.
삼도봉 도착 05:32(2시간 16분 소요)
일행들을 만났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리딩님이 나와 My언니를 만나고 가겠다고 기다리고 있었다.
삼도봉에서 으즈님과 유유님을 스치듯 만나고 나는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몸을 푼 다음에 My언니를 기다리고 가겠다는 설님을 남겨두고 다시 길을 나섰다.
삼도봉을 지나면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과 같은 내리막이 이어진다. 내려간다는 것은 그만큼 혹은 그 이상을 올라가야 한다는 뜻인데... 삼도봉 이후의 길은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쭉... 내려가기만 한다.
그런데 그 내리막길이 다 계단으로 바뀌었다.
계단으로 바뀌니 더 빨리 내려갈 수 있다.
지옥으로 가는 급행열차를 탄 느낌이다.
오랜만의 성중종주 길은 조금씩 달라져있다.

생명이 움트는 지리산.
줄줄이 길게 늘어서 있던 사람들이 어느새 다 사라지고 진짜 혼자 걷는 시간이 찾아왔다.
고요함 속에서 걷는 지리산에서 생명의 태동을 보았다.
올해를 살아낼 초록이들이 움트고 있었다.
화개재 도착 05:49
리딩 설님의 타임라인에 비하면 17분 늦게 출발했다 쳐도 조금 늦은 시간이었고 내 타임라인에 비하면 상당히 빠른 편이었다.
토끼봉 도착 06:15
사진을 공유하다 보니 알겠는 나보다 앞선 일행들의 타임라인. 가장 먼저 출발한 펭수언니가 나보다 3분 앞서 있었다.
화개재를 지나면서 나는 유유님을 앞서 걷게 됐다.
My언니를 기다리던 설님은 늦게 출발했음에도 나를 앞서 간지 한참이었다.
이쯤에서 오늘 종주의 걸음 순서가 대충 정해졌다.
설님 으즈님 펭수언니 나 유유님 My언니.
일행들이 보이지 않아 영영 볼 수 없는 게 아닌가 했는데 선발대와 나는 2-3분, 나를 기준으로 뒤에 있는 일행들은 10-15분 정도의 시간차를 두고 우리는 따로 또 같이 기나긴 종주길을 걸었다.
매번 여지없이 토끼봉에서는 무언가를 먹어야 기운이 난다.
오늘도 토끼봉에 잠시 멈춰 서서 남은 토스트 반쪽을 꺼내 들고 천천히 걸으며 토스트를 먹었다.
모든 길이 생명을 담고 있었다.
모든 생명이 태동하는 길에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생명의 탄생 순간을 걷는 것 같았다.
이 맛에 등산하지!!
연두가 사라지고 짙은 초록이 찾아온다고 아쉬워하던 지난주는 금세 잊혀지고 내 앞에 나타난 봄의 시작을 알리는 연둣빛에 설렜다.
고즈넉한 산길을 걷는 행복을 만끽했다.
일행들을 따라가야 하니 빨리 걷는다고 하는데도 지리산의 모든 것이 나를 향해 쏟아지는 느낌이었다.
사진은 없지만 지리산의 모든 것이 내 눈으로 들어왔다.
감정의 풍요가 잠시 몸의 고단함을 잊게 한다.
연하천 대피소 도착 07:15(3시간 58분 소요)
연하천에 도착해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 일행들을 만났다.
드디어 밥 먹는다!!!
요즘 완전히 꽂혀있는 샌드위치를 싸왔는데.. 먹다 보니 양이 너무 많다.
보통 점심시간에 먹는 이 샌드위치는 늘 양이 적다고 생각했는데 산행 중에 먹으려니 양이 너무 많았다.
등산 중엔 위가 작아지는 걸까.....
매일 등산만 하면 살이 쪽 빠지겠네.
가야 할 길이 한참 남았으니 억지로 끝까지 다 먹었다.
샌드위치는 꼭꼭 씹어먹기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살아있는(?) 재료들을 씹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깨닫는다. 게다가 빵도 치아바타라 오래오래 씹어야 한다.
다음엔 샌드위치를 사더라도 부드러운 식빵으로 된 것을 사야겠다.
꽤 오래 쉬고 일행들과 모두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고 다시 길을 나섰다.
연하천 대피소에는 강풍이 불었다.
너무 추워서 걸음이 빨라졌다.
정말 이가 딱딱 부딪혔고 장갑을 꼈음에도 손끝에 감각이 사라졌다.
5월에 이게 웬일이야.
정말 몇 번을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는 말.산에는 4계절이 있다.
오늘 경량패딩까지 넣어 4계절을 준비한 나! 훌륭하다.
지리산에는 베어벨이 생겼다.
반달가슴곰 주의 알림 종.
꽤 많다.
가방에 달고 다니는 베어벨은 늘 내 신경을 긁는 소음 같았는데 지리산의 종소리는 매우 청량하고 유쾌했다.
늘 사진을 찍던 포인트 여러 곳을 지났다.
혼자 걷고 있으니 사진 찍어달라고 할 사람이 없다.
여러 곳을 지나 딱 한 곳, 여기는 풍경사진이라도 남겨야지.
봄에 종주하는 것은 오랜만이라 봄의 지리산을 남겨본다.
벽소령대피소 도착 08:46(5시간 28분 소요)
벽소령대피소에는 무더위쉼터가 있다.
신발을 벗고 방에 들어가 앉는 순간 이곳이 천국인가 싶다.
편하게 늘어진 상태로 일행들을 기다렸다.
그리고 이제서야 타임라인을 확인했다.
나의 거북이 타임라인보다 확연히 빨라진 도착시간.
오늘 종주는 크게 어렵지 않게, 시간에 쫓기지 않으며 완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굉장히 편해졌다.
이렇게 행복한데 종주 완주하는 게 무슨 의미야-우리 대피소에서 자고 내일 내려갈까?
라며 흔한 종주 농담을 나누며 실컷 쉬었다.
잠깐을 쉬어도 편히 앉아서 쉬니까 오래 쉰 느낌이다.
9시 8분 벽소령 대피소에서 출발했다.
벽소령대피소에도 공사 자재가 잔뜩 쌓여있다.
다음에 오면 벽소령대피소도 싹 바뀌어 있을 것 같다.
벽소령대피소에서 세석대피소 가는 길이 늘 제일 힘들다.
아마 길어서 그런 것 같다.
그 길의 중간에 섰다.
벽소령에서부터 한 시간을 왔다.
휴.. 앞으로 한 시간만 더 가면 되겠다.
오르막 내리막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다리를 쭉 뻗고 두 손으로 매달리다시피 하며 돌을 타고 올라야 하는 길들도 많다.
첫 종주 때 나를 질리게 하던 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돌길에서 재미를 느낀다.
그리고 또 한 곳.
매번 빼놓지 않고 사진을 찍는 그곳에서 일행들을 만났다.
잠시 쉬어가라고 한다.
그래서 설님한테 사진을 부탁했다.
우와. 어쩐지 감동이다.
올 때마다 사진을 찍던 곳에서 한 장을 남길 수 있다니.
천하제일봉을 찾아보세요라는 커다란 팻말이 있는 이곳은 나에게 꽤 의미 있는 곳이다.
늘 이쯤 오면 지치고 또 지쳐서
- 우리 그냥 대충 가자. 꼭 천왕봉 찍고 완주해야 하는 것은 아니잖아. 가다가 안되면 장터목에서 하산하자.
매번 종주할 때마다 여기서 이런 얘기를 나눴었고 일행들의 동조를 통해 그제야 마음이 편해지곤 했다.
오늘은??
타임라인 자체가 매우 여유 있어 그런 생각을 안 해도 되는 오늘이었다.
이런 날이 오긴 하네!
그냥 즐겁고 유쾌한 마음으로 사진을 찍고 일행들과 함께 출발했다.
같이 출발해도 으즈님과 설님은 금세 시야에서 사라진다.
이 사람들 나 몰래 팔다리 하나씩 더 숨겨둔 거 아냐?
어쩜 이렇게 빨라 ㅠㅠ
정말 넘사벽이다.
그리고 이즈음부터 하산 때까지 펭수언니는 내 앞에서 함께 걸었다.
물론 대화는 불가능하다.
숨이 턱까지 차서 걷는데 무슨 대화를 해 ㅠㅜ
이렇게 달리기 하고 등산하면 폐활량이 좀 좋아져야 하는 거 아닌가....
폐 기능 장애 직전의 내 폐활량은 의사쌤 조언대로 달리기를 했는데도 좋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나도 거친 숨소리 없는 종주를 하고 싶다.
칠선봉 도착 10:36
오늘 지리산을 걸으며 가장 많이 본 꽃은 얼레지였다.
왜인지 모르지만 산동무 언니들은 얼레지를 참 좋아한다.
오늘의 지리산은 얼레지 밭, 얼레지 농장이 아닐까 싶을 만큼 사방에 얼레지가 피어있었다.
유난히 큰 얼레지가 있어 후딱 사진 하나 찍고 다시 길로 돌아온다.
꽃 찍을 기운이 남아있다니.. 얼레지 사진 찍고 가는 길에 피식 웃음이 난다.
누가 봐도 봄!
봄길을 걷는다.
까마득한 계단을 오른다.

영신봉 도착 11:10
곧 세석 대피소가 나올 것이다.
0.6km.
여기서부터는 오르막이 없다.
기억이 난다
세상에! 기억이 나네.
질릴 만큼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한 벽소령에서 세석 가는 길.
영신봉부터는 완만한 길을 걸으면 세석대피소가 나타난다.
세석대피소 도착 11:19
성중, 거중을 여러 번 하며 요 근래 꽤 여러 번 왔던 세석은 올 때마다 늘 추웠는데 오늘의 세석은 밖에서 식사하기 딱 좋은 날씨였다.
야외테이블에서 식사를 했다.
으즈님이 가져온 돗자리를 테이블 아래 깔고 잠시 등산화를 벗는다.
신고 벗기 힘들어서 웬만하면 신발을 안 벗는 편인데 오늘은 동무들이 하자는 대로 한다.
발이 시원하다.
피로가 풀린다.
행복!
세석대피소의 레고나무들, 봄에 보니 더 예쁘네.
오래 쉬니 마음이 몽글몽글 말랑해졌다.
세석에서 다시 6명이 모두 모였다.
그리고 12시 정각. 모두 함께 길을 나섰다.
장터목까지 3.4km만 가면 된다고 서로에게 응원을 건넨다.
벽소령에서 세석까지 온 길에 비하면 반밖에 안되잖아.
게다가 이 길엔 세석평전도 있도 연하선경도 있잖아.
예쁜애 뒤에 예쁜애 뒤에 예쁜애가 있는건데 힘들게 뭐가 있겠어!
세석평전 가는 길은 언제나 평화롭다.
앞 뒤 사방이 다 예쁜 길.
세석평전이다!
뱅 돌아 한 바퀴 둘러보고 촛대봉에게도 인사를 건넨다.
안녕. 올라갈 시간.. 보다 체력이 없어.
오늘은 패스!
세석평전을 지나면 이제 다시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지만 벽소령-세석에 비하면 예쁜 길이 많아 눈이 호강하는 길이다.

걷다가 잠시 돌아보면 철쭉의 분홍과 어우러진 봄의 산을 눈에 담을 수 있다.

봄의 연하선경.

이쯤 되니 드디어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기 시작했다.
난 누구, 여긴 어디 류의 생각.
다리가 무거웠다.
하지만 연하선경이니까 걸었다.
예쁜 길은 쳐져가는 몸뚱이를 어찌어찌 끌고라도 걷게 한다(feat. 외모지상주의자)

연하봉 도착 1:04
800미터 남은 장터목대피소까지의 길.
슬쩍 오르고 또 내려가길 두어 번 정도 반복해야 한다.
어느 날은 세석에서 장터목까지가 참 수월하고 어느 날은 또 힘들다.
오늘은 벽소령에서 세석까지의 길이 그리 고되지 않았다면 세석에서 장터목까지는 유난히 힘들었다. 3.4km의 길이 벽소령에서 세석까지의 길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
장터목대피소 1:17
장터목 대피소는 몇 년간 공사 자재가 잔뜩 쌓인 모습이었는데 오늘은 자재들이 거의 정리가 돼 있었다.
그런데.. 화장실은 여전한가 봐 ㅠㅠ
들어가 보지 않았지만 냄새만으로도 알 수 있는 장터목대피소 화장실의 상태.
보통 장터목 대피소에 1시 50분 정도에 도착하곤 했던 나였다. 오늘은 진짜 시간적으로 여유롭다.
그리고 보통 5시 반 중산리에서 출발하는 안내버스와 달리 좋은사람들 안내버스는 6시 출발이다. 무려 30분이나 더 주는 것이다!!
시간은 많은데 고행의 길 천왕봉까지 가려니 마음이 거북이가 된다.
1시 반에 출발하기로 하고 털썩 주저앉아 간식을 꺼내먹었다.
짧지만 가장 힘든 천왕봉까지의 길.
우걱우걱 에너지를 채운다.
1시 30분-후발대 일행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 펭수언니와 나는 먼저 출발했다.
으즈님, 설님은 늦게 출발해도 금세 우리를 따라잡을 사람들이라 뒤를 걱정하지 않고 먼저 길을 나선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1.7km, 장터목에서 천왕봉 가는 길.
처음 종주할 때 들어선 이 길에서 엄청 웃었던 게 생각난다.
(너무 웃긴데 몸이 힘들어 웃긴만큼 웃지 못한... 그야말로 울면서 웃었던 그 때.)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가 큰 죄라도 짓고 그것을 사죄하듯 걷고 있었다.
한걸음 한걸음에 인생의 짐을 잔뜩 인 듯 걷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3보 1배도 아닌 1보 3배를 하듯 걷는 나.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모두가 하나 되는 길.
오늘따라 유난히 힘든 나는 중간중간 엄청 쉬면서 걸었다.
몇 걸음 걷다 멈추고 몇 걸음 걷다 멈추고를 반복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이 길은 1시간 짜리였는데 오늘은 1시간이 더 걸리겠다 싶었다.
우리보다 15분 늦게 출발했다던 설님이 나타났다.
당신은 정말... 체력을 어찌 관리해야 저렇게 되는 걸까 ㅠㅜ
부럽다!!!
그리고 내 뒤를 바짝 따라온 으즈님도.
대단 대단.
호로록 앞서간 설님이 계단을 오르는 내 사진과 영상까지 찍었다.
영상에서 느껴지는 짠내.
느릿한 걸음, 거친 숨소리.
그럼에도 멈출 수 없는 나의 걸음.
여기서 멈추면 대안이 없어
무조건 가야 한다.
천왕봉.
천왕봉 도착 2:30
오늘도 길게 늘어선 정상석 사진 줄에 사진 찍을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
사람이 적었던 지리산을 맘껏 즐기고 사진도 실컷 찍을 수 있었던 과거의 경험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장터목에서 천왕봉까지는 어떻게 가도 1시간이 걸린다. 오늘은 정말 많이 쉬면서 걸어서 더 오래 걸렸겠지 했는데 1시간.
불변의 한 시간 코스.
몸을 바로 세울 수 없을 만큼 강풍이 부는 천왕봉에서 내려와 하산길 계단의 초입에서 유유님을 기다렸다.
MY언니는 결국 장터목에서 하산을 결심했다고 한다.
하산해야 할 곳.
바람이 잔다.
확실히 천왕봉 기점으로 날씨가 달라진다.
바람이 불긴 했어도 우리가 지나온 길만큼의 강풍은 아니었다.
2시 40분 하산을 시작했다.
사람이 엄청 많았다.
줄을 서서 내려가야겠다.
산행 시작할 때 줄 서서 걷던 것과 마찬가지로 하산 역시 줄 서서 가야 했다.
긴 줄이 이어지다가 잠시 줄이 사라진다.
그리고 또다시 줄을 서서 걸어야 한다.
너덜길을 사람들 사이에서 걷다 보니 피로가 더했다.
그리고 무릎에 살짝살짝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우와.. 내가 뭐 하자고 이걸 하고 있나.
뭐 하자고 이 길을 또 걷고 있나.
중산리 하산길은 걸을 때마다 이 생각을 하게 하는 길이다.
로타리대피소 도착.
장터목에서 화장실을 건너뛰어서 로타리대피소가 얼마나 반가운지!!
로타리대피소도 드디어 공사가 끝났다.
지리산은 이렇게 변하고 있었다.
로타리대피소에서 유유님을 기다리며 남은 간식을 바리바리 꺼냈다. 으즈님이 무겁게 이고 지고 다니던 얼린 황도가 드디어 세상밖으로 나왔다.
오늘 내내 추워서 엄두도 못 냈던 얼린 황도를 이제야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쉬며 수다를 떨다가 다시 길고 긴... 힘들고 고될(!) 길을 나섰다.
이런 말 저런 말 붙일 것 없이 중산리 하산 길은 정말 싫다!!!!
정말 싫어!!!!!!!!
그렇게 5시, 하산을 완료했다.
휴....
그리고 거북이산장에 모여 다 같이 밥을 먹었다.
우리, 무려 옷을 갈아입고 밥을 먹을 시간까지 있었다.
오늘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야기를 나누며 대체 이걸 왜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을 하고 있는가를 이야기했다.
나는... 가끔 격한 운동을 하고 싶을 때 종주를 한다.
그런데 성중종주는 다른 종주와 다르다.
결이 다르고 차원이 다르다.
많이 먹고 방탕한 나를 정신 차리게 하고 싶을 때 한번씩 할만한 성중종주.
그리고 뜻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14시간을 걷다 보면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되다가도 또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렇게 생각이 정리되고 마음이 정리되며 또다시 살아가야 할 마음을 얻는다.
이것을 위해 종주를 하지는 않지만 종주를 하면 부수적으로 얻을 수 있는 소중한 마음이다.
이래서 죽겠다고, 힘들어 죽겠다고, 이런 종주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치를 떨다가도 결국엔 좋은 기억으로 남겨지는 걸 수도 있겠다.
애플워치11 배터리가 5%밖에 남지 않아
-아.. 진짜 가민으로 바꿔야 할까 봐
생각하며 하산했는데
-맞다! 나 이제 종주 안할꺼지!
하며 혼자 깔깔 웃었다.
나에게 종주란 이런 생각의 흐름과 같다.
🎯260501 지리산 성중종주 타임라인🎯
노고단대피소 03:50
피아골삼거리 04:47
노루목 05:17
삼도봉 05:32
화개재 05:49
토끼봉 06:15
연하천대피소 07:15
벽소령대피소 08:46
칠선봉 10:36
세석대피소 11:19
연하봉 13:04
장터목대피소 13:17
천왕봉 14:30
하산완료 17:00
+) 내가 종주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먹고싶은 것을 죄책감 없이 정말 기쁘게 먹을 수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마냥 즐겁기만 한 화이트와인 한병
종주한 다음날은 와인으로 시작이지!300x250'등산일기 Hiker_deer'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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