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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산일기] 지리산 서북능선_바래봉
    등산일기 Hiker_deer 2023. 5. 14.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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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513 토요일

    지리산 서북능선 종주라고 써야 할까?
    같은 날, 모임에서 화대종주 가는 버스가 떴기 때문에 어쩐지 종주라는 이름을 붙이기엔 너무 소프트한 느낌이었던 우리의 코스

    금요일 늦은 밤, 동서울 터미널.
    지리산 가는 버스.
    오늘도 역시나 우리가 타는 11시 버스 전에 임시배정된 버스가 4대였다.
    지리산은 오늘도 인기폭발!

    지리산 가는 밤버스는 4번째이다.
    이제 제일 마지막에 내려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오늘의 멤버는 지난번 도성길 함께 갔던 두 명, 그리고 나머지 세분은 처음 만나는 분들.
    길고 힘든 산행일 테니 어차피 말없이 올라야 할 것이니 혼자여도 상관없을 거란 생각이었다.

    만나서 인사도 나누기 전에 비예보로 들썩들썩했다.
    - 준비도 안 했는데 어쩌지..
    리딩님이 부랴부랴 우비를 사 오겠다고 했다.
    아무 준비도 없었던 나를 포함한 네 명의 우비를 사 왔다.
    나눠준 우비를 받고 무거운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비가 온다면 아예 산행을 시작도 안 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불태우며 가나 했는데 버스 타자마자 기절. 꿀잠.
    나.... 버스에서 너무 잘 잠

    이제는 꽤 익숙한 성삼재에 도착.
    반달이도 잘 있었고 성삼재 벤치도 잘 있었지?

    노고단 올라가는 방향으로 가다가 다른 길로 빠지나 보다 했더니 서북능선은 만복대탐방로라서 아예 들머리부터 다른 곳이었다.
    그래서 노고단 쪽 방향에 있는 화장실에 들러 정비를 하고 길을 나섰다.
    다행히 비가 오지 않았다.

    어두운 밤.
    만복대 탐방로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속도를 높여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고요하고 또 고요한 산길에 울려 퍼지는 말고 청아한 목소리.
    - 평균시속 4.7km
    이게 웬일이야.
    이 컴컴한 밤, 나름 험한 만복대 탐방로를 평지 걷는 속도로 가고 있는 우리.
    점점 숨이 가빠오고 허벅지가 당기는 느낌이라 포기선언을 하고 싶어 지던 순간,
    - 잠시 쉬어가요~
    리딩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한참을 늦던 산동무 한 명이 출발 전 먹은 음식 때문에 복통을 호소하며 올라오고 있음을 알게 됐다.

    이후로 많이는 아니지만 속도가 조금 늦춰졌다.
    아픈 산동무는 허리도 펴지 못하면서도 아주 조금 늦을 뿐 우리를 잘 쫓아왔다.
    그 의지와 근성에 존경의 마음마저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블랙야크 백두대간 - 지리산 고리봉

    첫 번째 봉우리인 고리봉 도착. 오전 4시.
    묘봉치를 지나 만복대로 향하던 중 날이 밝았다.

    산철쭉이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저 멀리 짙게 깔린 운해가 멋지다.
    날은 맑지 않지만 비 안 오는 게 어디냐며 다들 걱정했던 비소식이 비켜갔음에 안심했다.
    이는 우리 리딩님이 우비 4개를 사서 우비공양을 했기 때문이라며

    바쁘게 가던길을 잠시 멈추고 기쁨을 나눴다.

    만복대 도착하기 전 누가 봐도 사진 찍기 좋은 곳임이 틀림없는 장소.
    하지만 하늘은 희뿌옇고 시야가 어둡다.
    날이 좋으면 정말 예쁘고 멋진 곳이라던데.. 아쉬운에 사진 한 장 급하게 남기고 다시 만복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만복대!
    만 가지 복이 있다는 곳.
    곰탕입니다.🐻🐻🐻🐻🐻

    정상석에서 살짝 비켜난 곳에 옹기종기 모여 간식을 나눠먹었다. 리딩님에게 곰탕 기념샷을 남겨달라고 했다.
    오늘 날씨가 흐릴 것은 예상하고 있던 터라, 흐린 날에도 쨍할 수 있는 옷을 입자며 알록달록하게 입었더니 곰탕 속의 이질감 있는 건더기 같은 느낌이다.

    물컵에 우유를 부으면 뿌옇고 몽글몽글한 우유가 물속으로 흩어진다.
    오늘의 지리산은 딱 그 모양이었다.

    갤럭시가 구현해 낸 나의 색감!
    흐린 날에 딱이쥬!? ㅋㅋㅋㅋㅋ

    숲길에서 몇 번의 오르내림을 반복하고 마침내 밖으로 나왔을 때 마법이 펼쳐졌다.
    절대 걷힐 것 같지 않던 하늘이 말끔해져 있었다

    비가 안 오니 곰탕이어도 흐려도 좋아!
    내내 긍정적인 마음이었는데 하늘이 열리자 마음이 들썩들썩 신바람이 났다.

    그렇게 우리는 드라마틱하게 변하고 있는 하늘 아래의 정령치에 도착했다.

    지난 두 번의 바래봉행은 모두 정령치에 주차를 하고 출발하는 산행이었다.
    그런 정령치에 걸어서 올랐다.

    나 걸어왔어. 너에게 오는길, 쉽지 않드라아아아아!

    정령치 휴게소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살짝 구름이 덮여있던 하늘은 우리가 아침식사를 하는 동안 깔끔하게 "오늘 날씨 끝내줄 거야"를 예고하는 하늘로 바뀌었다.

    정령치 휴게소는 문을 닫았지만 여전히 깔끔하게 운영되고 있는 화장실에 들러 다시 먼 길을 갈 정비를 한다.
    (화장실, 매우 매우 매우 깔끔!!!!👍🏻👍🏻👍🏻👍🏻)

    세 번째. 정령치 휴게소에서 바래봉으로 가는 길을 세 번째로 걷는다.
    바래봉은 올 때마다 바래봉 근처의 유한 능선길만 기억에 남기는 마법을 부린다.
    그래서 매번 깜짝 놀란다.
    이럼 험한 길이었어?
    이렇게 힘든 길이 있었다고?

    오늘 역시, 정비되지 않은 돌길과 다리를 있는 힘껏 뻗어야 겨우 오르내릴 수 있는 바윗길, 그리고 끝이 없을 것 같은 오르막 내리막이 이어졌다.
    정령치에서 출발하는 바래봉 코스를 어렵고 힘들다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오늘은 정령치에서 출발하던 시각에 이미 3시간 넘게 걸었기 때문인지 길이 더 험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마냥 좋았다.
    이렇게 예쁜걸!!
    역시 지리산은 지리산인걸!!!!
    세 번의 바래봉 중 오늘이 가장 날씨가 좋았다.
    미세먼지 없이 쾌청했다.

    산철쭉과 철쭉이 아름답게 만개한 길을 걸었다.
    하늘이 열리고 해가 높이 떠오르며 기온이 높이 올랐다.
    우리는 짧게 짧게 쉬며 간식을 나눠 먹었고 오래오래 걸었다.

    오늘의 지리산은 역대급으로 예쁜 봄의 지리산이었지만 지난 두 번의 산행에서 원 없이 사진을 찍었던 터라 사진에 미련이 없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지난 2년의 산행에 매우 감사한다.
    2년간 열심히 쫓아다닌 덕에 유명한 산들은 거의 다 가봤고 사진동호회 버금가게 많은 사진을 찍으며 산행을 해서 다시 가는 산에서는 사진을 안 찍어도 아쉽지 않게 되었다.

    눈으로 보고 즐기며 지리산을 걸었다.

    세걸산에 도착하니 파랗게 열린 하늘에 뭉게구름이 떠올랐다.
    제일 예쁜 하늘이 되었다.
    빠른 걸음을 걷던 우리도 세걸산에서는 잠시 쉬며 사진을 찍고 꺄르르 웃음을 나눴다.

    하늘이 예쁘니까 아무 데나 서서 사진을 찍어달라며 깔깔거렸다.
    다시 숲으로 들어가 걸었다.
    오르락내리락 또 끝없이 길이 이어졌다.
    어제 비가 오긴 왔다보다.
    먼지가 자욱하게 날릴 길이었는데 아주 살짝 젖은 덕분에 먼지날림 없이 신명 나게 걸었다.

    세동치를 지난다.
    또다시 숲길.
    부운치를 지나야 꽃길이 나온다.

    마침내 부운치에 도착했고 꽃길이 펼쳐질 것을 예고하는 꽃터널을 지난다.

    오늘은 정말 많은 버스가 왔던 터라 산행 내내 줄을 서서 이동해야 했다.
    한두 명을 앞세우고 가자~ 싶어 살짝 비켜나면 앞세워야 할 사람이 수십 명이었다.
    다른 것은 다 괜찮았는데 줄지은 인파 속에서 하는 산행이 좀 피곤했다.


    올해도 바래봉 날짜 선정은 기가 막히게 좋았다. 활짝 핀 꽃길, 분홍빛 꽃과 파란 하늘, 흰 뭉게구름은 꿈결 같았다.

    꽃길에 이르러서 뒤를 돌아본다.
    우리가 오랜 시간 걸어온 산들이 주욱 늘어서서 축하를 보내는 듯하다.

    예전에는 바래봉의 절정은 부운치를 지나 펼쳐지는 꽃길이라고 생각했는데, 팔랑치를 지나 바래봉 정상 인근의 오르막이 더 내 취향이더라.
    역시 평지보다는 오르막에 펼쳐진 꽃밭이 더 다이내믹한 매력이 있다.

    팔랑치의 갈림길에 펼쳐진 꽃밭은
    철쭉은 촌스럽다며 꽃산행을 하면서도 늘 거리 두기를 하는 나도 꺄! 하고 탄성을 내지를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바래봉으로 올라가는, 오르막의 꽃밭이 더 예쁘게 느껴지는 이유는 하늘과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길고 힘든 산행이라 수다를 떨기엔 무리였지만 이만큼을 함께 걸었다고 심적으로 가까워지진 B오빠를 잡아 세워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고 산행 내내 앞에서 이끌어주던 M오빠가 어쩐 일로 내 뒤에서 배경이 되어주었다.
    사진을 찍고 나서 셋이 깔깔 웃었다.

    그림 같은 지리산.
    난 너를 정말 좋아해!

    정상성과 사진을 찍기 위해 늘어선 길이 역대급으로 길었던지라 엄두도 못 내고 호로록 지나쳤다.

    빛 내림이 찬란한 정상석 부근에서 내려다보이는 바래봉의 꽃무리.
    오늘의 바래봉은 최고였다.
    몇 번을 다시 온다 해도 오늘같이 예쁜 날씨의 바래봉을 다시 못 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구인월의 하산길이 험하다는 말을 오늘 산행 내내 들었어서 하산하기 전, 간식을 먹으며 마음을 단단히 다졌다.
    그리고 드디어 하산인가 싶었는데, 낙엽이 잔뜩 쌓인 길을 잠시 내려가는가 싶더니 또 가파른 오르막이 나왔다.
    봉우리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 하는 리딩님이 자기 머릿속에 덕두봉은 끝끝내 남아 잊히지 않는 이름이라고 했었는데 나 역시도 잊지 못할 것 같은 이름이었다.

    지리산 서북능선 산행은 바래봉까지가 아니고 덕두봉 까지더라.
    덕두봉까지 올라야 하고 그 다음부터가 본격적인 하산길이었다.

    그리고 덕두봉에서부터가 그 험하디 험한 하산의 시작이었다.
    고도 500미터 정도가 1km도 안 되는 거리에 낮아졌다.
    내리꽂는다는 말이 맞을 정도로 가파른 돌길이었다.

    스틱으로 힘껏 땅을 디디고도 모자라 지형지물에 의존하여 엉금엉금 내려왔다.
    힘들게 내려와 임도에 들어서기 직전 뒤를 돌아봤다.

    마지막까지 예쁜 나의 지리산.
    또 보는 그날까지 안녕



    🎯지리산 서북능선 종주🎯
    ✔️ 산행거리 : 26.6km
    ✔️ 산행시간 : 10시간 30분
    ✔️ 산행코스 : 성삼재 - 고리봉 - 만복대 - 정령치 - 세걸산 - 바래봉 - 덕두봉 - 구인월
    ✔️ 늘 정령치에서 시작해 바래봉을 찍고 허브밸리로 내려왔었는데, 서북능선 종주로 내가 좋아하는 지리산을 원 없이 길게 걸을 수 있어 좋았다
    ✔️ 이제 버스에서 꿀잠은 자신있슴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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