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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산일기] 설악산 서북능선
    등산일기 Hiker_deer 2023. 5. 21.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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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5월 20일

    지난주에 이어 이번주에도 계속되는 서북시리즈.
    설악산 서북능선.

    작년, 곰탕곰탕도 이렇게 완벽한 곰탕일 수 없는 설악산 서북능선을 다녀왔었다.
    https://jinnia.tistory.com/m/772

    [등산일기] 설악산 서북능선_20220917

    설악산 일기는 늘 매번 버라이어티 하다. https://jinnia.tistory.com/m/666 [산린이의 등산일기] 드디어, 설악산 걷는다. 따릉이 탄다. 아니면 자차다. 이런식으로 최대한 대중교통 이용을 피하던 내게 고

    jinnia.tistory.com

    주변이 온통 영화관스크린 마냥 하얗기만 했던 심각한 곰탕. 시간이 지나면 영화상영을 시작할 법도 한데 하얗고 또 하얗기만 했던 설악산 서북능선.

    그리하여 집채만 하고 차 채 만한 커다란 바위들의 너머에는 대체 어떤 풍경이 펼쳐지는 것인지 궁금했다.

    오늘은 동생 친구가 가입된 모임에서 함께하는 산행이었다.
    설악산 서북능선이 쉬운 코스가 아닌데 다들
    -갈 수 있어요. 갈 수 있어요~
    하며 으쌰으쌰 하며 인원을 모집했고 버스를 대절했다.
    28명이나 서북능선을 가다니, 정말 대단한 모임이네!!
    살짜쿵 경외심을 가지고, 그리고 늘 그렇듯 긴장을 잔뜩 하고 참가했다.

    설악산 산방이 풀린 지 며칠 안 됐고 털진달래 시즌이라 산악회 버스가 엄청 뜬다고 하여 우리는 11시 10분 서울을 출발했고 한계령휴게소에 도착하니 1시가 좀 넘은 시각이었다.

    아무도 없었다.
    우리만 있었다.
    예전에 혼자 덜렁 버스를 타고 어느 모임의 산행을 나갔을 때와 사뭇 다르게 모두가 참 살갑게 다가와 주었다.
    (그때는 정말 모두가 친밀한 가운데 홀로 떠있는 섬같은 꼴이어서 미친듯이 쉬지않고 산을 올랐었다. 안그러면 어색함에 땅으로 꺼져버릴 것 같았거든)
    그래서 나도 칠렐레 팔렐레 마음을 열고 살가워질 수 있었다.

    칠흑 같은 하늘에 별이 가득했다.
    설악산 올 때마다 봉화 올리듯 헤드렌턴을 켜고 줄지어 올라가는 사람들의 제일 앞에는 누가 있을까 궁금했는데, 버스대절해서 일찌감치 도착한 사람들이더라.

    새벽녘, 설악산을 오르는 긴 행렬의 제일 앞에 서는 사람? 나야나!

    요렇게 우선 가방을 줄을 세웠고 다른 산객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는 줄을 섰다.
    탐방로의 문은 오전 3시 칼같이 열린다는데, 그래서 동영상을 찍으려고 준비까지 했는데 3시에서 몇 분이 더 지나고 나서야 문이 열렸다.
    그 짧은 시간, 원성이 자자했다.

    늘 줄지어 앞사람 엉덩이만 보고 앞사람의 속도에 맞춰 오르던 설악산의 등산로를 제일 앞에서 나의 속도로 갔다.
    - 원래 이렇게 안 쉬고 꾸준히 올라가요?
    비슷한 속도로 오르던 모임의 남자분이 물었다.
    - 저는 무조건 선두를 따라가요. 선두가 쉬어야 쉬죠 ㅠㅠ
    라고 작게 얘기한 것 같았는데 선두님에게 가 닿았는지 잠시 쉴 수 있었다.

    오전 4시 21분. 한계령 삼거리에 올랐다.

    한계령 삼거리에서 일행을 기다렸다.
    30분 정도를 기다리며 추위에 덜덜 떨었지만
    그 와중에 여명이 밝아오는 하늘은 그림 같았다.
    오늘, 날씨 대박이겠어!

    이때 눈치챘어야 했다.
    오늘의 가장 큰 미션은 기다림이 되리라는 것을.
    오늘의 가장 큰 시련은 기다림이 되리라는 것을.

    작년 서북능선은 거북이 산행이어서 11시간이었는데 이번 서북능선은 기다린 시간만 약 2시간이 넘는다.
    그리고 하산을 하고 나서도 2시간을 기다려야겠다.

    처음에는 어떻게 이렇게 수준차이가 심한 사람들을 다 끌고 왔을까 싶다가 다시 생각해 보니 참 용감하고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모임이구나 싶었다.
    내 주위에는 주로 나를 포함해서
    - 내가 갈 수 있을까? 내가 가도 될까?
    하며 조심스러운 사람들만 있는데 이곳에는 산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용감하게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다니 엄청 신선했고 그 마음이 참 사랑스럽게 와닿았다.

    30분이 넘어가자 이가 딱딱 맞부딪히며 온몸이 덜덜 떨렸다.
    그래서 시작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제일 앞에서 길을 나섰다.
    한계령 삼거리까지는 서북능선의 프리퀄이지.

    본격 서북능선 산행이 시작되었다.

    안녕, 오랜만이야👋🏻

    경차만 한 돌들이 사람보다 큰 바위들이 데굴데굴 널려있어야 서북능선이지!

    그리고 설악산의 일출을 만났다.

    해가 떠오른다.
    가자-
    모든 사람들이 너덜길 초입에서 사진을 찍느라고 움직일 줄 몰랐다.
    또 추위가 시작됐다.
    한계령에서부터 선두에서 함께 산을 탔던 멤버들과 눈을 맞추고 우리끼리 다시 산행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 광활한 너덜길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계속 심각한 정체가 시작됐다.
    작년의 서북은 우리밖에 없었는데...
    산방이 풀린 첫 주이기도 했고 털진달래 철이니.... 단풍철의 산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사람이 많은 것 같았다.

    조금 더 올라가니 인파가 흩어져 일출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었다.

    모임의 멤버가 나눠준 태극기

    사진을 찍고 반대편을 보니 운해가 가득 깔려있었다.
    세상에!
    일출과 운해라니!!!
    오늘 계 탔네 계 탔어.

    해가떠오르는 반대편, 자욱하게 깔린 운해

    설악산에서 내려다보이는 하얀 바다.
    구름이 이룬 바다.

    해가 떠오르고 구름이 바다를 이루고, 세상 고요할 것 같은 풍경 속에서 자지러지는 듯한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큰 사고라도 날 것처럼 계속해서 이어지는 비명소리.
    사전에 알아보지도 않고 설악산의 네임밸류에 이끌려 꽃구경을 하러 온 등산러들의 비명이었다.
    (그러니, 가실 분들은 많이 알아보고 가세요! 설악산 유명 등산코스 중 가장 위험할 수도 있는 곳이 설악산 서북능선입니다~~)

    비명을 뒤로하고 얼른 고요한 설악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겹겹이 쌓인 설악산의 산세.
    어느 하나도 평범한 것이 없는 산맥.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뾰족뾰족 날이 선 젊은 설악의 위용.

    걷는 내내, 역시 설악은 이래서 나의 원픽이다~
    지금 이 순간이 너무 감격이고 감동이다!
    울컥할 정도로 행복하고 기뻤다.

    아침을 먹는다.
    오늘의 산동무는 농사를 짓는다며 직접 재배한 채소와 그것으로 담근 장아찌를 가져와서 밥을 잘 안 먹는 나도 산에서 먹는 밥은 꿀맛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뒷배경이 설악산.

    산동무의 쌈밥을 먹으며 깨달은 사실.
    2년 등산을 하면서도 산에서 밥(!)을 먹은 적이 없었다니.. 이 역시 엄청 놀랄만한 사실 아닌가!

    아침을 먹고 일어났는데 우리의 산스토랑이 극적인 빛 내림을 받으며 발길을 잡는다.
    정말 대단한 곳에서 아침을 먹었어!

    귀때기청봉을 향하는 중, 구름이 밀려온다.
    드아이아이스를 쏘아대는 무대처럼 구름이 빠르게 지나가며 산을 가리고 연기처럼 사라지기를 반복하더니 어느 순간 뿌옇게 시야를 가렸다.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하는 와중에도 설악산 서북능선의 털진달래는 반짝반짝 빛이 났다.

    커다란 바윗길을 지나 진달래와 수목이 아름답게 내어준 오솔길을 따라 산을 오르면 드디어 귀때기청봉이 나온다.

    출발 전 산동무들이 앞다투어 알려준 날씨정보에 의하면 오늘은 구름하나 없이 맑음! 매우 더움 주의!!!
    였는데 실제로 맞이한 설악산은 매우 추움! 갑작스러운 곰탕!이었다.

    지난주 지리산 갈 때까지만 해도 경량패딩을 한 번도 빼놓은 적이 없었는데 매우 더움 주의에 패딩을 빼놓고 왔더니 -산에는 늘 4계절이 공존한다~~
    라는 산으른들의 말을 무시한 대가로 추위에 떨어야 했다.

    실은 기다림만 적었어도 산행하기 딱 좋은 날씨였는데 기다리는 동안 추위에 시달린 기억이 오래도록 남을 것 같은 그런 산행이었다.

    설악산. 귀때기야!!
    나한테 왜 이래.
    올 때마다 곰탕만 먹여줄 테야?

    점점 곰탕이 되어가는 설악산에서 주저앉아버렸다

    자꾸 이런 식이면 나의 이 힘든 길을 오르는 나의 노력이 너무 억울하다며 다시는 서북능선 안 오겠다는 결심의 X를 그리며 곰탕을 마주했다.

    사진을 찍어주는 산동무들이 미친 듯이 웃었다.
    선두가 아닌 선발대 느낌이 되어버린 5명의 산동무는 기다림의 추위가 심해질수록 내적 친밀감이 깊어졌다.

    이런 고생을 하느니 같은 설악산이면 공룡능선을 가겠다고!
    산동무 한 명이 진저리를 쳤다.
    서북능선은 그런 곳!

    귀때기 청봉을 지나 또다시 거대한 바위가 무섭게 깔린 길을 지나간다.
    엉금엉금 네발로 기어가고, 아크로바틱 하듯 다리를 찢어가며 오르내려야 하는 길을 묵묵히 걷는다.
    점점 하얗게 변해 풍경조차 즐길 수 없는 길을 묵묵히 걸었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가려주는 것 하나 없는 길에 땡볕이 내리쬐었다면 그 역시 힘들지 않았을까-
    로 나의 사랑하는 설악을 계속 사랑해 보기로 한다.

    그런데 말입니다.
    영영 곰탕일 것 같았던 하늘이 슬슬 열릴 것 같지 말입니다.
    - 이쯤 되면 아까 했던 서북능선 다시는 안 오겠다는 다짐 철회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산동무 한 명이 깔깔 웃으며 외친다.
    - 헑!! 그러게요!! 아까 그 장면 편집해 주세요! 나 내년에 또 올래요, 서북능선!

    1408봉을 지나며, 이곳에서 또 30분 이상 일행을 기다렸다.
    리딩님은 이곳에서 28명이 만나 다시 함께 산행을 이어갈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30분이 넘어도 원래의 선발대(선두가 아니라 선발대였다. 우리 5명을 제외한 23명이 후미가 아닌 본대였던 산행 ㅋ)를 포함해 10명 남짓한 사람이 모였다.

    추위가 몰려왔다.
    한 명이 리딩자에게 전화를 해서 거리를 가늠하니 1시간 이상 기다려야 할 것 같은 거리차이였다.
    더 이상 기다리는 것은 무리이고 1408봉을 출발하기로 했다.

    1408봉을 출발하니 본격적으로 하늘이 열리기 시작했다.
    10명 남짓한 인원이 함께 출발했는데 또다시 다섯 명이 산행을 하고 있었다.

    다들 어디에!??!!??

    1408봉을 지나면 더 이상 너덜너덜 어마어마한 바윗길은 나오지 않고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것만 같은 원시림의 숲길이 나온다.
    단... 네발로 기어올라야 하고 엉덩이까지 이용해 내려와야 하는 가파른 길은 여전히 이어지지만.

    그런 수풀림 사이에서 가장 많이 보이던 양치식물은....
    명지산 등 원시림이 잘 간직된 산길에서 많이 보이던 친구였는데 활짝 펼쳐지기 전, 돌돌 말려있는 모습은 처음이라 엄청 신기했다.
    신기하긴 했지만 어쩐지 누군가 침 뱉어놓은 것 같은 더럽고 찐득한 느낌이어서 가까이 가고 싶지는 않았다

    나의 첫 '봄의 설악'이 보여준 진풍경으로 하자!

    털진달래와 산철쭉을 가득 품은 설악의 산행이 점점 끝나가고 있다.

    이것이 진정 천국의 계단이지!
    산에서의 계단은 늘 은혜롭고, 계단을 놓아주신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오르지만 설악산, 특히 서북능선에서의 계단은 더더욱 은혜로운 진짜진짜 천국의 계단이었다.

    이 봉우리를 지나면 길고 긴 계단이 나오고, 계단을 내러가면 길도 좀 수월해진다.
    그리고 곧 대승령이지!!!

    대승령에서 점심파티를 했다.
    리딩님이 대승령에서 다시 한번 모두 모이자고 했기 때문에 오래 기다릴 생각을 하고 남은 음식을 모두 꺼냈다.

    설악산에서 비빔밥이라니!!
    잔치로구나!!!

    식사를 하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본대는 오지 않는다.
    해가 쨍하게 내리쬐는 와중에도 칼바람이 불어와 다시 체온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본대는 이번에도 역시나 최소한 1시간 이상을 기다려도 만나기 힘들 만큼 떨어져 있어 선발대는 먼저 하산을 하기로 했다.

    대승령에서 장수대분소까지의 하산길은 꿀이다.
    개꿀!!!🐶🐶🐶🐶🐶
    설악산에서 이런 꿀 같은 하산길은 다시없습니다.

    산중에는 매우 젊은 설악산이지만 끝도 없이 하늘로 뻗어오른 울창한 나무들은 인간의 인생을 기준으로 볼 때, 아주 오랜 세월~~~ 이곳 설악에서 터를 잡고 살았겠지.

    가물고 가물어서 사진으로는 물줄기가 잘 포착되지 않던 대승폭포 였지만 긴 산행을 끝내 가는 우리의 마음은 즐거움과 안심으로 가득했다.
    (서북능선 산행은 길어지기 쉬운 코스인데 중간에 화장실이 없어.. 어느 순간부터는 오매불망 화장실만 바라는 상태가 된다. 산행이 끝나간다는 것을 화장실을 만날 수 있다는 것!!!! 😝😝)

    가녀린 대승폭포의 물줄기가 아쉬울 틈도 없이 멋지고 화려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쉬지 않고 하산하겠다는 나는, 어느새 간절함을(화... 화장실....) 잊고 신나게 사진을 찍고 있었다.

    편하고 또 편하게 조성된 길을 따라 쭉 계단을 내려가면 계곡이 나오고 드디어 하산이 끝나게 된다.
    그런데 길을 가면 갈수록 눈을뗄 수 없이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서 이 산행을 이렇게 끝내도 되는 건가 싶었다
    (아니, 안 끝내면 어쩌겠다는 건데 🤣🤣🤣🤣)

    걸어가면서도 계속 주변을 돌아보고 뒤를 돌아봐도 될 만큼 편안하게 조성된 길이어서 오래오래 설악을 눈에 담았다.

    드디어 장수대분소에 도착!!
    올해 첫 설악산행이 끝났다.

    장수대 분소에서 오늘의 마지막 미션인 본대 기다리기를 두어 시간 더 해야 했지만, 하산을 하고 나서 올려다보는 설악산도 너무너무 사랑스러워서 긴 기다림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설악산 서북능선🎯
    ✔️산행시간 : 10시간 55분(기다리고 또 기다린 시간 포함)
    ✔️산행거리 : 17.93km
    ✔️산행코스 : 한계령휴게소 - 삼거리 - 귀때기청봉 - 1408봉 - 대승령 -대승폭포 - 장수대
    ✔️참을 수 없는 설악산의 아름다움. 벗어날 수 없는 설악산의 마력! 올해도 공룡 가자!! 올해는 봉정암도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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